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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영화관

'이야기'에 관한 영화, 로맨스 조

백채원

기사를 쓰기에 앞서, 첫 기사를 쓰게 된 만큼 제 소개부터 간단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민초 10기 백채원이라고 합니다. 이번 호부터 ‘들꽃 영화관’ 코너에서 영화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한 영화에 대한 리뷰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 인물, 소재, 장소에 관한 이야기, 여러 가지 영화를 비교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실 첫 기사를 무엇에 관해 쓸까에 대해 아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 백편이 넘는 새로운 영화들이 출시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매년, 최소 열 편씩은 올해의 영화, 혹은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오고 있는 탓에 오히려 기삿거리가 가장 풍부할 것만 같은 영화기사에서 소재를 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영화’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일단 가장 최근에 본 영화부터 시작해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가장 감명 깊게 본 라스트 씬(scene) 등 수 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있다는 것이겠죠. 게다가 요새는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더라도 DVD나 인터넷을 통해 더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점점 더 영화라는 매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영화가 많은 대중들의 보편적인 문화생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는가?’ 물론, 사람들마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조금씩 다를 것이고, 또 반대로 영화감독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보편적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영화 속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것이 영화 속 이야기의 흐름, 즉 줄거리잖아요. 누군가가 “ㅇㅇㅇ 영화 봤어?” “그 영화 어때?”라고 물었을 때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그 영화의 줄거리일 테고, 또 영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서사를 다루는 매체인 만큼 ‘이야기’는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겠지요. 그래서 첫 기사로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제가 얼마 전에 본 이광국 감독님의 ‘로맨스 조’ 라는 영화입니다. 감독님 이름과 영화 제목이 생소한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이 이광국 감독님의 첫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또 ‘로맨스 조’는 독립영화입니다. 그러다보니 상영하는 영화관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큼 ‘이야기’에 관해 매력 있게 담아내고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첫 영화로 ‘로맨스 조’를 꼽게 되었습니다. 사실, ‘로맨스 조’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이면서 또 동시에 ‘이야기하기’에 관한 영화입니다. 제가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감독님께서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시더라구요. “오랜 조감독 생활을 마치고 영화를 한 편 찍긴 찍어야겠는데 무슨 이야기를 담아야할지 몰라 아예 나같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기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그만큼, 이 영화에는 총 ‘네 개’나 되는 서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영화감독의 친구가 사라진 감독의 부모님께 들려주는 영화 줄거리 이야기, 다방 종업원이 시골로 보내져 작품을 써야하는 처지에 놓인 감독에게 하는 이야기, 엄마를 찾아 다방에 온 아이가 다방 종업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로맨스 조가 다방종업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로맨스 조’는 이 네 ‘이야기’를 ‘액자 속의 액자’ 구성을 통해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네 이야기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죠. 먼저, 이 영화에서는 한 가지 이야기를 특정시기에 네 사람의 화자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본 것처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만든 것처럼 얘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들은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보는 내내 네 화자가 얘기하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오리고 붙여내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와 환상, 그리고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 관객들이 올바른 길을 찾느냐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끝끝내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이고 실제로 네 화자가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영화는 우리에게 아무런 실마리를 제공해주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관객들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뿐이죠.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접하는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소문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 실제 우리 생활에서처럼 영화 속에서 말하고 듣는 사이의 관계가 중간에 자꾸 역전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이 영화의 신선한 대목 중의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보통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아니, 아예 화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보통은 전지적 감독시점에서 숨은 화자가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로맨스 조’는 ‘이야기하기’에 관해 그 어느 영화보다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이 영화의 첫 씬(scene)이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화가 첫 장면에 모텔의 핑크빛 벽면에 말이 그려져 있는 액자가 등장합니다. 꽤 오랫동안 이 액자를 카메라가 비추고 있죠. 이는 이 씬(Scene)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아주 강력히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그려진 액자. 즉, ‘말(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하겠다는 것이죠. 이 첫 Scene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이야기’에 관한 영화는 이 영화 이외에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전에 개봉했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기적’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역시 대표적인 이야기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조’를 택한 것은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야기’ 자체뿐만 아니라 ‘이야기하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영화이기 때문에 새로운 영화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로맨스 조’를 첫 영화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번엔 좀 더 재밌고 신선한 소재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Wed May 09 2012 17:4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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