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투 히STORY

웰컴투 히스토리를 시작하며

김규완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은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상미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진 해품달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 방송을 손꼽아 기다리게끔 하였습니다. 저 또한 애청자로서 해품달을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극 중에서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왕세자 이훤은 성균관 장의로 하여금 밤중에 몰래 자신을 알현하도록 하명합니다. 왕세자는 무릇 학문을 하면 배운 대로 도를 행한다고 들었다며 성균관 장의에게 근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세자빈 간택에 있어서 내정자가 있음을 알고 있는지 묻습니다. 왕세자가 성균관 장의를 부른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규수가 외척의 내정자로 인해 간택을 받지 못함을 우려해 공정한 간택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왕세자의 사사로운 감정을 위해 성균관 유생들을 움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역학을 이용하여 외척의 권력을 슬기롭게 견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듯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배움을 행하는 성균관 유생들이 국가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나라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모습이 오늘날에 있어서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최근에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려고 했지만 많은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해품달의 시대상이 부러웠습니다. 해품달 4화에서 성균관 유생들이 권당(학생데모)을 하며 상소를 올리는 장면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먼 과거의 일로 보일지는 몰라도 역사를 살펴보면 깨닫는 바가 큽니다. 현재와 과거가 많은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읽다 보면 현재의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많은 시사점들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세 개의 기사를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로 다룰 것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로마사를 택하고자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는 총 15권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1, 2, 3권을 읽으며 느꼈던 바를 앞으로 세 편의 기사에서 연재할 것입니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 역사를 미화했다는 지적(예를 들어 노예제도) 그리고 전쟁을 기술하는 데에 있어서 역사의 잔인함을 배우게 한다기보다는 전쟁 역시 미화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지적들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기사를 보면서 비판적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시각은 수용적 시각이 아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1권의 제목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입니다. 역사 속의 가장 강성했던 제국 중 하나로 꼽히는 로마도 처음에는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이름 모를 도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이 당시 크게 세를 구축했던 세력은 에트루리아와 그리스계 도시국가였고 이 두 세력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트루리아는 기술력이 좋았고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은 무역을 통해 축적한 경제적인 부가 장점이었습니다. 로마인이 여타 민족에 비해 뛰어난 지성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무역에 밝아 부의 축적에 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753년 이 틈 사이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로마는 몇백 년이 흐른 뒤 어떻게 지중해를 호령할 수 있었을까요? 로마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되는 시기에 도달하려면 500년 정도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500년이라면 한 국가의 흥망을 다룰 수 있는 기간입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정복하겠다는 생각으로 500년의 청사진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가 긴 시간 동안 쇠퇴하지 않고 도리어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로마의 정치체제와 이민족들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로마는 이민족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로마는 다른 민족에 비해 기술력이 뛰어나지도 못했고 다른 부분에서 특출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로마는 이러한 단점을 능력 있는 이민족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에트루리아인들은 로마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로마에 동화됩니다. 로마는 이민족들에게 차별을 하지 않고 로마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후에 나오겠지만 포용 정책의 결실로 이민족들이 그들 스스로 로마 시민으로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바탕에서 로마는 시민들로 구성된 중무장 보병들을 구성합니다. 시민들이 선뜻 중무장 보병을 한다고 했을까요? 이는 로마의 정치체제가 시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정치체제를 살펴보면 로마는 건국되었을 때 왕정으로 시작했습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로마의 건국신화 대로라면 늑대와 같이 살았다던 로물루스가 초대 왕이죠. 왕정의 로마가 잘나가다가 왕정 체제가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로마의 마지막 7대 왕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라고 불리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를 끝으로 로마는 공화정으로 전환을 맞이합니다. 이때부터 집정관 2명을 시민들이 선출합니다. 이후의 시기는 로마 시민들이 귀족들의 기득권에 투쟁하면서 권력이 조정됩니다. 거의 모든 역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권력을 누군가가 독점할 때는 바람직한 상황이 연출되기 어렵고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엘리트주의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한 의사결정이 다수에 의한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사회에 이롭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주장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차근차근 주변세력들을 정복해나가는데 로마에게 정복당하는 세력들은 대부분 엘리트주의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왕 혹은 소수 인사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로마는 매해 시민들이 선출하는 집정관 2명과 많은 수의 귀족들이 모여 있는 원로원이 서로 견제를 하거나 협력을 하여 의사결정을 하였습니다. 로마는 체제의 안정성 덕분에 다른 도시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른 도시국가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을 때에도 시민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로마와 다른 국가들의 차이이며 로마는 체제를 정비하는 데에 시간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4월에 지역구와 전국구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습니다. 선거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투표율이 얼마가 될지는 중요한 이슈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지난 총선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60%도 안 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절대적 기준으로는 높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간접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회는 ‘선거’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거에 참가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로마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이 국가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여 공론이 형성되고 이러한 공론이 국정에 반영되는 것이 국가의 정치체제가 안정적으로 그리고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인 것 같습니다. 총선에 이어 12월에 열리는 대선에서는 높은 투표율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Wed May 09 2012 14:3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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