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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로마가 카르타고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Sun Jul 01 2012 13:21: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로마가 카르타고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 나라에 대한 사랑 요즘 많은 사람들이 비몽사몽 한밤중에 유로 2012 경기를 생중계로 보고 있습니다. 최고의 이슈는 우승의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유로 2012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국가는 자타공인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은 2008 유로 우승,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 그리고 2012 유로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승부차기 끝에 이겼던 스페인이 이렇게까지 강력했던 팀이었는지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들은 궁금해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스페인이 절대강자의 지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2008 유로에서 우승한 이후입니다. 신기하게도 로마가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과 스페인의 그 과정에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축구 열기는 매우 뜨겁습니다. 세계 축구의 3대 리그가 모두 유럽에 있는데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가 그것이고 독일의 분데리스가까지 포함해서 4대 리그라 칭합니다. 이렇게 자국 리그가 세계적인 국가들은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경험이 있고 항상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죠. 스페인은 가장 뒤늦게 우승컵을 들어올린 국가이지만 그 기세는 가장 강력합니다. 스페인이 그렇게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프리메라리가 팀들의 유소년 축구 정책 그리고 수많은 유명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축구 환경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과 스페인 국가대표 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니에스타, 사비, 알론소, 파브레가스, 부스케츠, 라모스, 카시야스, 비야 등등 각 포지션에서 거의 최고라 불리는 선수들입니다. 스페인은 결코 우연으로 이런 선수들을 키워낸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클럽(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이 존재하는 자국 리그의 축구 환경과 이들의 축구에 대한 투자 덕분이었습니다. 로마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자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무장 보병의 육성이었습니다. 로마가 약소국으로 출발해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중무장 보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맹 국가들에게 군대를 차출해달라는 요구보다는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힘을 키우고 이탈리아 반도 모두를 세력권에 둔 로마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바로 시칠리아라는 섬으로의 진출이죠. 그리고 시칠리아를 두고 당시 해상무역을 주도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카르타고와의 전쟁-포에니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해군이 강력했던 카르타고였지만 군대의 대부분이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는 카르타고의 조직력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카르타고의 조직력은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이는 로마에게 카르타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내줍니다. 그리고 카르타고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과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르타고 본국의 의사결정 역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세력 다툼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 중 한명인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도 참전했지만 그러한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는 에스파냐에 카르타고와는 독자적으로 세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니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력을 확장하고 로마의 동맹 국가를 공격합니다. 로마는 동맹 국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했고 한니발은 이를 거절하여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해 선전포고합니다. 이렇게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됩니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쟁과 전술을 남깁니다.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을 당황하게 했고 칸나이 전투에서는 자신의 군보다 많은 상대방의 군을 포위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칸나이 전투 때문에 로마는 큰 피해를 입으며 동맹 국가들 사이에서도 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단기전으로 끝내고 싶었던 한니발이었지만 전쟁은 장기전의 양상으로 갔고 로마의 동맹 국가들도 로마와의 협력을 더욱 굳건히 하며 한니발의 세력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또 한니발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에스파냐, 로마, 카르타고 이 세 지역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로마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장군과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한니발을 로마군이 두려워해야 하는데도 로마군은 한니발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이겨야 할 존재로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지구전을 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키피오라는 젊은 장군은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하는 시도를 합니다.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전쟁을 지속할 수 없던 한니발이었고 이는 한니발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한니발은 결국 카르타고로 돌아가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의 군대를 상대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렇게 로마는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하고 제 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라는 나라의 이름은 사라지게 됩니다. 로마에는 뛰어난 장군 여럿이 있었고 카르타고에는 한니발 하나만이 있었습니다. 한니발이 이들을 개별적으로 압도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힘을 합친 로마의 장군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장군이 패전을 해도 그 장군이 다음 전쟁에서 승리하여 패전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고 시간을 벌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단결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카르타고의 군대는 대부분이 용병이고 장군들이 패전을 하면 크게 죄를 묻는 등 내부에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군은 로마를 사랑하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6월 6일이 현충일이었습니다. 그리고 6월 25일은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6.25 전쟁에서 호국선열 분들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참전했던 것도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터전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끔은 스스로가 주권을 가지고 투표를 할 수 있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호국선열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현충일과 6월 25일에는 거리의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호국선열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하며 묵념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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