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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그라쿠스 형제의 숭고한 뜻

Thu Aug 30 2012 16:56: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무명의 배우가 갑자기 인기를 얻었을 때 처음에는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그 인기에 도취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장난스럽게 ‘배우병’에 걸렸다고 표현합니다. 이름모를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지중해의 패권을 손에 쥐게 되면서 배우병에 걸리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로마는 갑작스럽게 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착실히 기반을 닦으면서 강대국이 된 경우죠. 그렇지만 로마에게도 지중해의 패권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포에니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로마의 시민들이 순국하였고 전쟁이 스쳐간 자리들은 지난 전쟁의 가혹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살아남은 시민들도 참전하기 위해 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틈타 부를 축적한 세력들이 있었고 기득권층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결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열중합니다. 전쟁 직후의 혼란함은 적절히 해결되지 못했고 빈부격차라는 거대한 사회문제의 조류로 로마 사회를 뒤흔듭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 사진 속의그라쿠스 형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이름일 것 같은데요. 그들은 여러 가문 중에서도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로 앞으로 로마 사회를 이끌 집정관의 후보로 거론되는 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부패한 권력을 거부하고 로마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로 결심하죠. 참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권리를 포기하고 이 권리를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지만 실천한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라쿠스 형제는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이라는 자리를 선택하면서 고생길을 걷게 됩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토지개혁입니다. 그 당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자들의 횡포로 인해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시민들의 수가 급감하죠. 그래서 그라쿠스 형제는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개혁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는 로마 시민으로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상한선을 설정하고 상한선을 넘는 토지는 국가에서 몰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대농장 소유자들은 이러한 개혁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그 당시 호민관이었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를 암살합니다.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이고 싶었던 티베리우스 가이우스는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며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아직 살아있었고 그는 형의 뜻을 잇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형의 뜻이었던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곡물배급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이 역시도 기득권 세력에 의해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쫓겨나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 이후 마리우스가 등장하며 기득권 세력에 대항했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합니다.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그 당시에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은 실패로끝난 것이지만 이를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들은당시 로마사회에 문제가 무엇이며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어쩌면 그들도 그들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릅니다. 직감을 하면서도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뒷세대를 믿은 것은 아닐까요? 역사 속에서 옳은 뜻을 품었으나 그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의인들을 보며 우리는 좌절이라는 감정보다는 그 숭고한 뜻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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