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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정치개혁

김규완

역사를 소재로 한 사극 영화인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가 큰 인기를 끌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곧 다가올 대선과 맞물려 광해가 전달하고자하는 바가 대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이상적인 정치와 현실적인 정치 사이의 간극이 상당하며 통치자는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이라고 느꼈는데 많은 분들도 이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한 조선의 15대 통치자 광해군은 왜 그렇게 정치의 난제에 신음하여야 했을까요? 조선시대의 통치자 중 가장 불운했던 통치자는 광해군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국난인 임진왜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선조는 자신이 의주로 피신했기 때문에 조정을 둘로 나누어 분조를 광해군에게 맡기었습니다. 전시에 세자에 책봉된 광해군은 분조의 책임자로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조선군의 군량 및 군기를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많은 장군들이 있었다면 광해군은 숨은 조력자로 이들의 승리를 뒷받침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광해군은 토사구팽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전시라 어쩔 수 없이 적자가 아닌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기는 했으나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광해군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움직임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선조조차도 광해군을 못마땅해 하며 영창대군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그 뜻을 이루기 이전에 승하하였고 결국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광해군은 자신의 불안정한 왕위를 안정시키고 무너진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였습니다. 국가의 개혁은 강력한 왕권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불안한 정세는 광해군의 개혁의지를 실현하는데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광해라는 영화에서는 신하들이 대동법의 시행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납에서는 그 동안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했는데 대동법은 쌀로서 그 특산물을 대신하게 하였습니다. 공납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공납이 말도 안 되는 제도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강원도의 백성들에게 지역 특산물로 전복을 바치라고 하는 거죠. 전복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복을 사서 바쳐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공납을 대신 납부해주고 돈을 요구하는 방납인(防納人)이 등장합니다. 또한 대동법이 시행되면 토지 결수에 비례해 세금을 거두기 때문에 기득권인 대지주들의 반발이 심했고 대신들 역시 대동법에 반대했습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듯이 광해군은 여러 차례 옥사를 일으킵니다. 영창대군 및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계축옥사 대북세력과 소북세력의 대립에서 기인한 해주옥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보게 됩니다. 다른 일들에서는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였던 그가 자신의 왕위와 관련된 일들에서는 유난히 잔인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서서히 대신들의 신임을 잃어가던 그는 강홍립 장군을 후금에 거짓항복하게 하는 일(물론 조선의 국익을 생각한 일이었지만)을 계기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합니다.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은 폐위되고 인조가 새로운 왕으로 옹립됩니다. 정치란 무엇일까요? 영화 속에서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것이 정치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정치개혁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함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개혁은 정치의 큰 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양보하려고 할 때에는 그 뜻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번 대선의 화두가 ‘정치개혁’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염원하는 정치개혁이 이번 대선을 통해 그 시작을 알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Wed Oct 31 2012 08:09: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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