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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죽음

송호춘

현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와 같았다. 우리는 죽기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죽음이란두려운 것이면서도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문제이다.플라톤은 이를 꿈없는 잠이나 영혼이 다른 장소로 여행하는 것으로 여겼으며 중세에서는 죽음을 형벌일 수도 있지만 은혜이자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죽음은 자연의 섭리처럼,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는 것 처럼 당연하고 우리들 근처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후 현대사회에서 죽음이란 것은 삶이 끝나는 것, 내가 가진, 이룬 많은 것을 다 잃게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더 이상 죽음이란 것은 삶속에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며 삶과 별개의 것이라는 의식이 만연하다. ‘평상시에 우리는 마치 육체적 불멸을 완전히 믿고 있는 것 처럼 우리의 죽음을 믿지 않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죽음을 지배하는 일에 몰두한다. 물론 어떤 이는 그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제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즐겁게 살고 있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이지적이고 말뿐인 고백이다. 공포의 감정은 억압되어 있다.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허스트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우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사람이다. ‘악마의 아티스트’ 라는 평을 듣는 그는 다양한 동물과 사물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삶은 근본적인 문제를 강렬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도발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그의 극적인 무대장치나 웅장한 제목은 그러나 우아하며 거의 미니멀리즘적이기까지 하다'는 평을받는 많큼 감성적이고 섬세한 생각또한 볼 수 있다. ‘죽음의 춤’이라는 작품은 수천여종의 알약 27,000여개를 거대한 진열장에 순서까지 정해가면서 진열해놓은 작품이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을 의학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죽음을 지배하기위해 처방된 이 색색의 알약들이 결국은 약물에 의해 연명되는 구차한 삶이나, 또다른 죽음으로 가는 길이 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죽음이란 것에 대한 거부를 위해 빼들었던 의학, 알약 이라는 검이 이젠 또 다른 날을 세워 오히려 우리에게 칼날이 겨눠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다른 ‘발륨’ 이라는 작품이있다. ‘발륨’이라는 것은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알약의 이름으로써 작가는 이 여러색의 발륨을 형이상학적인 모형을 이루며 원형으로 배치하였다. 우울증은 감정 변화와 불안감 무기력의 증상이 뒤따르며 그 끝에는 자살에 이르게 하는 현대인의 삶속에서 피할수 없는 질병이다. 하지만 이런 자살이라는 죽음을 치료하기 위한 발륨은 중독성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다량 섭취할 경우 심장박동이 느려서 사망에 이른다. 이처럼 자살을 막기 위한 약조차 현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죽음 허스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써 이것은 ‘보존액이 가득 든 탱크 소게 떠있는 죽은 뱀상어로 구성되어 있다. 상어는 마치 여전히 살아서 본래의 영역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과 꼭 같이 탱크의 중앙에 떠 있도록 균형 잡혀지고 무게가 실려 있다. 이 뱀상어는 모터와 연결되어 마치 실제로 헤엄치는 것 과 같은 모습을 띈다. 이런 박제 용액 속에 움직이는 상어에서 박제라는 죽음과 헤엄이라는 삶의 아이러니함이 느껴진다. 이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상어란 것은 ‘격리되어 있는 대상이 한때 살인 기계에 해당되던 것의 시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초래하는 것도 결국 죽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삶을 확언하는 빌 바이올라 특유의 신비주의에 대한 우울하고도 부정적인 응수를 시도하고 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2156g 백금 8601개의 다이아몬드 1106.18캐럿 이마중심의 핑크 다이아몬드 70억 총제작비 200억 판매가격 940억 1720~1810년 사이에 살았던 35세 유럽 남성의 두개골을 사용해서 만든 작품으로 “죽음의 궁극적 상징인 두개골을 사치와 욕망, 데카당스의 궁극적 상징인 다이아몬드로 덮어버리는 것보다 죽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라는 작가의 말처럼 삶의 덧없음 인생무상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죽음을 거부 하기 보단 그자체를 인정하고 이 삶자체를 즐기라는 작가의 생각이 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 작가는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형상화 했다. 그렇기에 작품을 본 관객들이 희망을 느끼고 고양되기를 바란다” 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삶의 무상과 희망을 동시에 나타낸 작품이다. 참고자료 죽음의 부정 <프로이트의 인간 이해를 넘어서>, Ernest Becker, 2008, 인간사랑 20세기 시각 예술,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예경 THE 20TH CENTURY ART BOOK, 20세기 아트북 /윤옥영, 2009, 마로니에 북스 THE 20TH CENTURY ART BOOK, 20세기 아트북 /윤옥영, 2009, 마로니에 북스

Mon Dec 31 2012 05: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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