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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유행에 따른 결혼

송호춘

얼마 전 어느 변호사 부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정말 특이한 결혼식이었다. 40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서 진행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하객들을 위한 음식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하객들에게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신부는 원래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으려 했으나, 지인들의 만류로 웨딩드레스를 사서 입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였다. 신랑분께 들은 이야기로는 양가 부모님들 사이에 상견례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결혼식날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양가 부모님들은 결혼을 ‘허락’만 하셨다고 한다. 총 결혼식 비용은 120만원이다. 비용 중의 대부분이 하객들에게 나누어준 선물이라고 한다. 40평 남짓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비록 돈으로 치장한 화려한 꽃들과 흔해 빠진 뷔페음식이나 과장된 호텔식 코스요리는 없었지만 신랑신부를 축하하는 진실한 마음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 필자에게 감동을 준 결혼과는 달리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운 결혼도 존재하는 것 같다.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에도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운 결혼이 존재했었는데 당대의 화가인 호가스는 그의 작품 <유행에 따른 결혼>을 통해서 사치스러운 결혼을풍자하고 있다. <유행에 따른 결혼>이라는 작품명에서 엿볼수 있듯이아래 그림들은 사치스럽고 진실된 사랑이 없는 결혼을 비꼬는 작품이다. 호가스는 다섯 점의 회화를 통해서 서사적으로 유행에 따른 결혼을 표현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그 중 두 점의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려고 한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을 보자.호가스 <유행에 따른 결혼>첫 번째 이야기, 1743-1745, 캔버스에 유채, 70 x 91cm 런던, 국립미술관 사치로 재산을 소진한 귀족이 자신의 아들을 부유한 상인의 딸과 정략 결혼시키려 한다. 오른쪽에 앉은 귀족은 짐짓 위엄을 가장하고 있으며, 돈은 많지만 교양 없는 상인의 모습으로 희화되어 있다. 창 밖에는 팔라이도식 별장을 짓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서 왜 정략결혼이 필요했는지 암시한다. 왼쪽의 귀족의 손에는 자신의 혈통과 가문을 자랑하려는 족보가 들려져있다. 그리고 상인은 그 귀족의 책상 위에 계약금조로 금 덩이들을 풀어 놓았다. 결혼을 위한 계약금은 얼마일지 궁금해진다. 한편 귀족과 상인 사이에서는 회계사가 귀족에게 미지급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아마도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을 짓는데 비용을 쓰느라고 빚을 많이 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략결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왼쪽으로 옮겨 보자. 가장 왼쪽에는 신랑이 당시 유행하던 멋진 옷을 입고 앉아 있다. 그런데 어째 앉아 있는 자세가 품위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 신랑은 결혼에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신부가 있는 쪽의 정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하지만 두번째 작품에서 남자의 허튼생각이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이제 신부쪽을 보자. 신부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변호사이다. 이 변호사는 이 결혼이 성사되도록 중매를 해 준 인물이다. 신부도 신랑에게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오히려 변호사와 친밀하게 느껴진다. 사실 호가스는 신부와 변호사의 대화장면을 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암시하고 있다. 신부와 신랑 사이의 벽에 걸린 그림은 비명을 지르는 고르곤을 묘사한 것으로 카라바조의 메두사를 연상시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머리카락 대신 뱀이 돋아난 메두사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한쌍의 남녀에게 닥칠 무서운 미래를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메두사의 놀라는 표정이 참 인상 깊다.호가스 <유행에 따른 결혼>두 번째 이야기, 1743-1745, 캔버스에 유채, 70 x 91cm 런던, 국립미술관 두번째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한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첫번째 그림에서 암시했듯이 이 부부의 결혼생활은 참혹하다. 부부는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다. 남자는 패배감에 젖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자 옆의 강아지가 남자의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는 것을 보니 지난 밤에 남자는 자기 멋대로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한편 여자는 마치 술에 취한 듯한 표정이다. 식탁 위에 카드를 올려 놓고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지쳐서 힘들어 하고 있는 남편에게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결혼은 했지만 사랑은 없다. 방종과 사치만이 느껴질 뿐이다.이런 상황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집사들이다. 앞쪽에 있는 집사의 왼쪽 귀에 볼펜이 꼽아져 있고, 그의 손에는 여러장의 종이들이 들려져 있는데 아마 각종 청구서인 듯 하다. 발을 동동구르는 집사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벽난로 위에 놓여져 있는 중국풍의 장식품들도 이들의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이 작품들을 통해서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호가스의 <유행에 따른 결혼> 이라는 작품의 다섯점의 작품중 두 점을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나머지 세 작품을 살펴보며 호가스의 풍자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Thu Oct 31 2013 13:5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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