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야구장을 가다!

잠실 야구장을 가다!

이동진

안녕하세요, 민초 가족 여러분. 한 학기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와 뒤통수를 덮치는 여름이 계절의 주인이 되어 우리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장마가 늦어지는 탓인지 유난히 더 덥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요즘 프로야구 열기 또한 이에 못지 않게 뜨거운 것 같습니다. 최소 경기 100만, 200만, 300만 그리고 얼마 전인 06월 26일에는 최소 경기(255경기, 종전기록은 지난해 307경기) 400만 관중을 돌파하여 시즌 누적관중 800만명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이러한 프로야구의 인기는 수치 상의 변화뿐 만 아니라 실제로 느끼기에도 상당히 뜨거운 데, 그 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때가 바로 표를 구하는 과정입니다. 요즘은 웬만한 주말 경기는 예매가 시작하는 순간 좋은 자리가 동이 나버리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현장 판매분을 구하기 위하여 일찍 구장을 방문한다고 해도 엄청난 대기줄을 맞이해야 하는, 프로야구 팬으로서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여간 저는 시험이 모두 끝난 뒤인 지난 06월 23일에 열린 LG와 롯데의 양팀 간 10차전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잠실야구장을 방문했습니다.보통 한 야구장은 한 프로팀이 홈 구장으로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잠실야구장의 경우 특이하게도 두산 베어스와 엘지 트윈스가 함께 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잠실야구장은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이나 비가 많이 내려서 야구 경기를 할 수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시즌 내내 함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요. 두산 베어스와 엘지 트윈스, 이 한 지붕 두 가족은 일명 ‘서울 라이벌’로 불리며 전통적인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의 구장을 두고 두 팀이 함께 홈 구장으로 쓰게 된 것일까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두 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그 속에서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두산 베어스원년 우승팀, 대전 개인적으로 현재 마스코트 보다 OB시절 마스코트가 훨씬 귀엽다고 생각합니다.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그 돛을 올렸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 베어스는 1982년 01월 15일 국내 최초의 프로 야구팀으로 창단되었으며 당시 연고지는 대전-충청이었습니다. 모기업인 두산 그룹은 당시 서울 연고지를 희망했지만 이미 MBC청룡(현재의 엘지 트윈스)이 서울을 선점한 상황이었기에 당장에 서울 입성은 유보하고 우선 대전-충청에 뿌리를 내린 뒤 3년 후 서울로 이전할 것을 KBO와 합의하게 됩니다. 그렇게 열린 첫 해 프로야구에서 ‘철인’ 박철순(투수) 선수의 전무후무한 22연승으로 대표되는 활약 덕택에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타이론 우즈 ??타이론 우즈는 팀명과 매치되어 '흑곰'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곰이랑 좀 닮았나요?여러분, 지금 각 프로팀은 모두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국인 선수제도는 언제부터 도입된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선수제도는 IMF의 그림자가 한창 드리우던 1998년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약 15년의 세월 동안 많은 외국인 선수가 거쳐 갔는데 그 중 최고의 선수는 1998년~2002년 동안 OB-두산 베어스에 활약한 타이론 우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즈는 첫 해인 1998년에 한국 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42개)하였으며 외국인으로는 (당연히)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이후 2001년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으며 당시 프로야구팬이라면 기억하실, 이승엽 선수와의 홈런 경쟁으로 프로야구 흥행을 이끌기도 하였습니다.명장 ??김경문 감독님이 선수 시절 박철순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꽃중년이시네요.두산 베어스는 명장으로 알려진 두 명의 감독을 모두 전임 감독으로 모셨던 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도전을 지휘했던 김인식 감독님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의 신화를 써내려 간 김경문 감독님이 바로 그 주인공들 입니다. 김인식 감독님은 1994년~2003년 그리고 그 후임으로 김경문 감독님이 2004년~2010년 까지 두산 베어스의 감독직을 수행하셨는데요, 두 명의 국민감독을 보유(?)했던 두산 베어스 팬들은 조금의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 김경문 감독님은 OB 베어스가 원년 우승을 차지할 당시 박철순 선수와 베터리 조합을 이루었던 OB 베어스의 포수 출신입니다.발야구한편 두산 베어스가 한국 야구발전에 기여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발야구를 들 수 있겠습니다. 과거 프로야구에서는 선수가 스스로 도루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일부 도루에 능한 선수는 제외) 보다는 벤치의 지시 혹은 작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두산과 SK의 치열한 패권 다툼으로 대표되는 2007~2009년, SK에 맞서 두산이 내놓은 해법이 적극적으로 한 베이스를 더 가도록 노력하는 발야구 였으며, 기존의 야구 풍토에 비해 선수 스스로 도루를 할지 말지 결정할 권한을 폭넓게 보장해줌으로써 발야구를 장려하였습니다. 누상에 진출한 주자가 언제 어디로 뛸지 모르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은 아마 이 때를 계기로 해서 한국프로야구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엘지 트윈스MBC, 서울의 주인??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팀 엠블럼입니다.... 마스코트 치고 귀여운 맛이 없네요ㅜㅜ앞서도 언급 되었지만, MBC청룡이라는 팀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MBC청룡은 엘지 트윈스의 전신으로 MBC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MBC가 맞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 MBC는 창사 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구성하고 있었고 야구붐을 일으키고 싶었던 정부 혹은 KBO 측에서는 방송을 참여시켜 프로야구를 홍보-확산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서울을 연고로 한, 역대 프로야구 팀 중에 유일하게 구단 명칭을 한자식(!) 이름으로 사용한 MBC청룡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신바람 야구 한편 1989년 12월 MBC 노사간 합의에 의해 MBC 청룡의 매각이 의결되고 이듬해인 1990년 01월 럭키금성 그룹(현 LG그룹)이 이를 인수하여 엘지 트윈스로 개명,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엘지 트윈스는 개명 첫 해인 1990년 한국 시리즈 패권을 차지하게 되며 이로부터 4년 뒤인 1994년 유지현-김재현-서용빈 트리오의 활약으로 대표되는 ‘신바람 야구’를 통해 압도적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에도 신바람 야구는 엘지 트윈스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한동안 자리잡게 됩니다.투수 분업 시스템 한편 엘지 트윈스 또한 한국 야구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데 1994년 우승 당시 도입했던 투수 분업시스템이 바로 그 핵심입니다. 현재는 크게 선발-중간-마무리로 투수들의 보직이 나누어져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과거에는 크게 보직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소위 특급 에이스(요즘으로 따지자면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 선수)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언제나 어떤 보직에서든 던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고, 팀의 우승은 이러한 특급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엘지 트윈스의 막강 마무리 김용수 선수, 엘지 트윈스 홈경기가 열리는? 날엔 위 현수막이 걸린다고 합니다.하지만 1994년의 엘지는 전년도인 1993년부터 당시 이광환 감독이 ‘스타 시스템’이라 명명한 투수 분업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이 덕택에 안정적인 선발 자원-두터운 계투진-막강 마무리로 이어지는 탄탄한 투수 체계를 완성하여 그 해 우승을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서 각 팀은 특급 에이스가 없이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도자들 또한 한 명의 에이스만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수단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기능하게 하는, 큰 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었다 하겠습니다.10년??엘지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본의 아니게 10년 저주(?)를 만들어 낸 김재박 전 감독 입니다.당시 팀 개명 이후 승승장구 하던 엘지 트윈스의 미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승 당시 주축 선수들은 모두 파릇파릇한 20대였으며 이들이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은 장밋빛 미래가 보장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도 다소 변동은 있었지만 한해 걸러 한 번은 PO에 진출하여 소위 가을 야구를 향유하는 팀이었고 2002년에는 약해진 팀 전력에도 불구하고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4위 안에 들지 못하며 가을 야구가 아닌 가을 훈련을 향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일 팀으로 PO진출하지 못한 최장시즌 기록이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엘지 트윈스가 꼭 PO에 진출하여 가을녘 잠실 구장에 “사랑한다 LG~”라는 응원가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잠실야구장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야구장 ??대전한밭야구장은 '대전탁구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두 팀이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잠실야구장은 홈 플레이트를 기준으로 가운데 담장이 125m, 좌우 담장이 100m거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야구장입니다. 담장이 멀다는 사실은 그만큼 타자들이 홈런을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투수들은 다른 구장에 비해 잠실 구장에서 등판할 경우에는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겠죠? 한편 한화 이글스가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밭야구장의 경우 홈 플레이트로부터 가운데 담장까지의 거리가 114m로 국내 프로야구단이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장 중 가장 짧은 편인데, 잠실구장과 무려 11m나 차이가 납니다. ??잠실야구장의 전무후무한 장외홈런 기록입니다.잠실야구장에서 홈런을 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잠실야구장이 위치한 2호선 종합운동장 역 5번 출구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기념비가 서있다고 합니다. 바로 잠실 구장의 주인인 두산 베어스의 두목곰, 김동주 선수가 2000년 05월 04일 좌측 담장이 아닌 좌측 구장(?)을 넘긴 홈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인데요, 당시 타구가 떨어진 지점이 5번 출구 부근이라고 합니다. 다들 구경 한 번 가보세요! 150m.. 도보로 2분...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상 첫 국제 대회 우승의 현장 ???일본 선수가 의도적으로 걸러내는 공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번트를 대는 모습이 개구리와 비슷한가요?사실 잠실야구장은 1982년 열린 제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1982 Amateur World Series, 흔히 월드컵이라고 부름)를 개최하기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이 대회는 1982년 09월 04일부터 09월 14일까지 잠실야구장, (현재는 없어진)동대문 야구장 그리고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펼쳐졌는데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는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숙적(?)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김재박 선수(위에서도 언급되었었죠?)의 기막힌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 선수(현 한화 이글스 감독)의 역전 3점 홈런에 힘입어 5대 2로 승리하였는데, 관련 영상을 링크해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잠시 짬을 내서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김재박 선수의 기상천외한 개구리 번트는 1분 45초,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은 2분 24초경 등장합니다.http://youtu.be/f2TG5I0UunI

Mon Jul 02 2012 03:53: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06143)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322, 9층  TEL. 02-508-2168 FAX. 02-3452-2439 

COPYRIGHT 2019 ALTWELL MINCHO SCHOLARSHIP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