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economicus

이동진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일까?

Sun Jan 09 2011 10:1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어느 새 2010년은 과거란 이름의 추억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2011년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2010년을 뒤돌아보니, 그 당시에는 매일이 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란 책에 2010년이란 책갈피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저는 여러 일들 중에 서점가에서 일어난 인문학 서적의 열풍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중심에는 아마도 많은 분 들이 읽어보셨을 ‘정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모 인터넷 서점의 기록에 따르면 이 책은 인문학 서적으로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이례적인 인기몰이의 이유는 우리 사회의 현 모습과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난히 사회 고위층의 부정이 이슈가 많이 되었던 터에, 우리 사회에서 잊혀졌던 ‘정의’, ‘공정’이라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한 편에서는 ‘하버드’ 브랜드가 주는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학벌 콤플렉스가 발현된 결과라고도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의 여러 부분 중 이마누엘 칸트에 관해 다룬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뜻 당연하게 보이는 이 말이 현실에서 도덕적 가치를 따지는 방법과는 많이 달라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까지 등장하여 고등학교 윤리시간을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서 칸트의 독특한 도덕 감별법에 대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지난 3일 열린 그룹 신년하례회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에 관해 말하면서 말미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영세, 중소기업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을 돕는 것이다.” 국내 최고기업의 회장이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발언 자체에 대해서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칸트가 보기에 위 발언은 도덕적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행동의 동기가 영세, 중소기업을 돕는 데 있지 않고 궁극적으로 대기업 스스로의 이익을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칸트의 주장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칸트가 말하길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이성’이 있으며, 이 ‘이성’을 통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성’과 ‘자유’는 평소에 자주 듣는 단어라 그런지 칸트의 주장에 새로울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이성’과 ‘자유’의 개념은 좀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만, 칸트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외부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받은 취향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위는 취향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며, 진정한 ‘자유’는 외부요인들의 영향을 떠나 “이성을 통해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도구적 이성 순수실천 이성 습득의 형태 후천적 선험적 명령의 형태 가언명령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정언명령 (무조건적, 이 자체가 목적) 한편, 이성에는 위의 표에 볼 수 있듯 2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구적 이성, 다른 하나는 순수실천 이성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성적’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성’에 가까운 것은 도구적 이성입니다. 이는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습득되며, 가언명령의 형태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가령 “A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B라는 행동을 해라”고 말이죠. 이미 주어진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도구라는 의미에서 도구적 이성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성은 바로 순수실천 이성입니다. 이해관계나 취향 등과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습득되는 것으로 외부요인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 때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자유를 맛보는 것 입니다. 순수실천 이성은 정언명령의 형태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A라는 행동을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A라는 행동을 해라”고 말이죠. 좀 황당하게도 느껴집니다. 옳기 때문에 행하라니, 그렇다면 그 옳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면 결국은 “무엇이 옳으냐”라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 해지는 것 아닐까요? 칸트에 따르면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도구적 이성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선험적인 순수실천 이성은 사람마다 다를 수 없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순수실천 이성은 하나의 이념형 인 셈이지요. 그리고 순수실천 이성이 명령하는 방식인 정언명령은 다음과 같은 도덕 판단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겁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조금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칸트는 그 어떤 이익이나 목적도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면서, “존재만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안에는, 그리고 오로지 그것 안에만 정언명령의 토대가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 이겁니다. 결국 칸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령을 따라 행동할 때 만이 그 행동의 도덕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며, 또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롭게 행동하기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는 같은 의미였네요. 물론, 지금까지 논의에서 사용된 ‘도덕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쓰는 의미보다 훨씬 좁게 사용되었으니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접한 일본드라마가 한 편 있는데, 칸트의 주장에 곁들여 참고할 만한 좋은 이야기 인 것 같아 소개하겠습니다. ‘감사법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 인데 프롤로그를 인용하여 간단한 소개를 대체하겠습니다. “총 4000개를 웃도는 일본의 상장기업. 이 곳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하루 평균 2조 엔이 넘는 돈이 거래된다. 어떤 주식을 사야 할 지, 투자자의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이 결산서. 그 결산서를 체크하는 집단이 감사법인이다. 감사법인은 공인회계사 그룹으로 직접 기업현장을 찾아가 재무 데이터를 철저하게 조사한다. 만에 하나 분식회계가 발견되면 기업에 수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기업이 이를 거부한다면 상장폐지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이야기는 방대한 서류와 막중한 책임 사이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젊은 회계사들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와카스키 켄지는 JP감사법인에 소속된 젊은 회계사로서 엄격감사를 고수하는 원칙주의자로 그려집니다. 엄격감사란 의뢰를 요청한 기업에게 일체의 분식회계도 용납하지 않는 감사를 말하는 것으로, 기업에게 큰 수임료를 받고 일하는 감사법인이 이를 적당히 눈 감아주는 기존 관행에 반하는 것입니다. 모든 직업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이 있듯, 회계사에겐 엄격감사가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엄격감사로 해당 기업이 도산하게 되어 관련 임직원 및 가족들의 생활이 피폐해지는 것을 보며 주인공은 자신의 길이 옳은지 갈등합니다. 무엇이 옳을까요? 분식회계는 특정인의 이익을 위하여 시장(타인)을 속이고, 이는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므로 도덕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엄격감사는 어떨까요? 비록 엄격감사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것이 현실이지만, 이 결과와는 별개로 주인공의 의도는 타인을 속이지 않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합니다.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가 결과가 아닌 동기에 있다 해도 현실에서 결과를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니까요. 또, 엄격감사가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가치가 일정부분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가치의 중심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치가 인간으로부터 유리되어 홀로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엄격감사를 통한 무조건적인 기업도산을 방조하기 보다는, 냉정한 기업평가를 하되 기업의 체질개선을 돕는 방향으로 자신의 역할을 조정해나가게 됩니다. 기업은 법적으로 별개의 인격을 가지지만, 현실적으론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존중을 고려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드라마는 끝을 맺습니다. 이제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이건희 회장의 신년사와 관련한 칸트의 도덕적 감별법에 수긍이 가시겠지요? 물론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상생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상생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중소기업들이 우리나라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앞에서는 좋은 말만 늘어놓고 뒤통수 치는 행태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 지라도 칸트 식의 해석을 거쳐서는 도덕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기가 힘든데,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도 많이 행해줬으면 하는 게 새해 바람입니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장 김난도 교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2011년에 어떤 제품이 성공할 지’에 대한 예측을 부탁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품목이라고 짚어 말할 순 없지만, 소비자들의 신뢰를 사는데 성공한 제품이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과 자유롭게 사는 것을 동일하게 본 칸트. 새해에는 도덕적으로 사는 삶들이 많아져서, 서로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요? 민초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칸트에 관한 부분은 본문에서도 언급된 책 "정의"에서 많은 부분 참고하였습니다. "감사법인"은 2008년 일본 방송사 NHK 에서 방송 된 경제드라마이며 이를 참고 했습니다. 또, 글에 언급된 라디오 프로그램은 MBC의 "박혜진이 만난 사람" 2011년 01월 03일 편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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