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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법(法)스데이

chap19. 정의의 여신상

함현지

정의의 여신, 혹은 법의 여신상이라고 하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를 공통된 심상이 있습니다. 혼란스럽게 정리된 그리스 신들의 계보도에 따라 그녀를 디케 혹은 아스트라이아, 로마식으로 유스티티아 그 무엇이라고 부르든-여신은 한 손에 칼,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눈을 천으로 가리고 당당하게 서 있지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와 달리 신들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정의를 관장합니다. 여신이 들고 있는 칼은 법의 엄격한 집행과 그에 따른 예외 없는 응징을 뜻합니다. 왼손에 든 저울은 형평의 상징이지요.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되기도 하는, 여신의 가린 눈은 편견과 온갖 사사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여신이 눈을 뜨지 않고 가리고 있기에 현실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눈먼 권력의 첨단에 설 칼과 그 위에 금화가 올려질 예정인 저울이 법의 어두움으로써 읽혀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의연 당당하게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법의 여신은 인간을 사랑합니다. 법은 인간이 그 자체로써 존엄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당신을 함부로 내팽개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당신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고 또 무엇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법의 여신은 인간을 불신합니다. 인간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어째서 지상에 법의 지배가 펼쳐져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든 혹은 사회의 부조리함에서 나오는 것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인간은 서로를 속이고, 재산을 빼앗고, 상처입히고, 죽입니다. 법의 여신은 인간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 않기에 인간의 일에 개입합니다. 그녀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새파랗게 날이 선, 불신의 독이 묻은 칼입니다. 슬프다는 말 외에 사랑하는 자들을 믿지 못하는 운명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녀가 눈을 가린 이유는, 세상을 차마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끝없이 흘리는 눈물을 세상에 떨어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세상의 소음 속에 그녀의 울음소리를 보태고 싶지 않아서 입을 굳게 다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을 향해 칼을 겨눕니다. 예비 법조인들은 오늘도 칸막이로 앞과 옆이 막힌 도서관 안에 앉아서 잠자코 무미건조한 법률 문언과 불친절한 판례를 읽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법조인이 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벅찬 서류와 복잡한 사실관계 속에서 허덕이겠지요. 살아 숨쉬는 인간이 순식간에 甲, 乙, 丙이 되고 당사자들의 인생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사건은 짧게 요약됩니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계가 되어 그대로 남아 있는다면 편안할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법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법률가의 길을 향해 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괴롭고 슬프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며, 법의 여신의 옷자락이 스치는 세상의 그을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Sun Dec 25 2011 05:49: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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