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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생각나눔

Thu Apr 28 2011 02:0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생각나눔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최근 3개월 동안 4명의 학생이 자살을 하였다. 2007년부터 도입된 차등등록금제도와 까다로운 학점 제도가 학생들의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카이스트의 정책이 자살의 원인? 이에 대해 카이스트는 4월 1일 오전 비상특별위원회에서 이 제도들을 포함해 문제점과 대책들을 논의했다. 하지만 학내에선 "논란으로 삼으니까 문제가 된 것이지, 기본적으로 도입 초기 환영 받던 정책이고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박희경 기획처장은 "차등등록금은 매 학기 수백만 원의 국고를 받아 공부하는데도 성실하지 못하고 수년째 졸업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 불가피하게 도입한 제도였다"며 "자살방지 비상대책 등을 강구해 진행하고 있지만 당장 등록금제도를 바꾸는 것이 꼭 정답이라 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 "올해 들어 자살을 택한 세 학생의 자살동기가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마치 하나의 이유, 제도 때문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1월에 숨진 조모(19)씨는 성적고민도 컸지만, 여자 친구와도 결별한 상황이었던 점, 지난달 20일 세상을 등진 김모(19)씨는 성적이 좋았고, 차등등록금 징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 또 지난달 29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장모(25)씨 역시 2004년 입학생이기 때문에 아예 차등등록금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수년간 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곽영출 총학생회장은 "자살을 결심하게 한 방아쇠가 개인적인 일이었을지 몰라도 현재 학교 환경이 자살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단시간에 추진한 차등등록금제도가 100% 영어 수업 등의 다른 제도와 맞물려, 삭막한 경쟁분위기가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등 학생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 공동체 문화도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1학년 K(20)씨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는 차등등록금제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영어로 모든 수업을 듣고 답지도 영어로 써내야 하고 이걸 해내지 못하면 돈을 내라는 식이라 심적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즐거운 학교생활이나, 창의력을 키우는 모험 같은 것을 꿈꾸기 보단 일단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자살 위험률을 높이는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대전생명의전화 최영진 소장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 상황에서 주위 인간관계가 무너진 환경이라면 문제를 타고 넘을 힘도 상실하게 된다."며 "성격 집안 성적 등 무엇으로 고민을 하던 자살 결심에 이르는 수많은 순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나 대상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위기학생 상담 및 지원체계도 미흡한 실정이다. 카이스트 교내 클리닉과 상담센터에서 학생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유일한 상담센터 건물에는 국번도 사라진 옛날 전화번호가 버젓이 매달려있었다. 곽영출 총학생회장은 "2003년에도 3명의 재학생이 연달아 목숨을 끊자 이를 계기로 자살방지책에 관한 논의가 일었으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정책의 핵심인 “경쟁”에 대하여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마치 카이스트의 경쟁적 분위기가 이 젊은이들을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식의 비판이 일고 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함과 동시에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들의 주장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반박할 수 있다. 첫째는 이들이 설정한 경쟁과 자살과의 인과관계가 논리적 타당성을 결여한 무리한 발상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경쟁의 부정은 곧 학교교육체제의 부정이자 현대사회의 삶의 양식의 거부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경쟁을 죄악시하는 논리는 현실도피며 이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경쟁 자체의 유무가 아니라 경쟁의 활용방식이다. 과열된 경쟁의 비인간성과 비교육성을 초래한다. 따라서 소위 ‘무한경쟁’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지나친 경쟁은 과도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며, 참가자들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오로지 승패에만 집착하기가 쉽다. 경쟁은 어디까지나 결과를 위한 과정일 뿐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쟁 자체의 교육적인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경쟁을 회피하려는 군색한 변명임과 아울러 교육적으로도 부당한 주장이다. 적절한 경쟁은 학생뿐 아니라,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까지도 동기화시킬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의의 경쟁’ 혹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금번 카이스트의 비극은 당사자들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책 모색은 우선적으로 학내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한다. 학교에서의 경쟁이 아까운 재능을 지녔던 젊은이들을 불행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식의 주장은 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뿐 아니라 향후 이와 유사한 참사를 예방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경쟁 자체의 유무가 아니라 경쟁의 활용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카이스트의 전면적 영어수업과 차등등록금제도는 문제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전면적 영어수업으로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과학고 출신 아이들보다 조기유학으로 영어가 모국어처럼 된 아이, 이미 영어 수업 경험이 있는 민사고 출신 아이들이 학점을 딸 수밖에 없는, 영어 이해가 핵심이 되는 기형적 카이스트 수업이 되었다. 모국어로 하면서 창의적이며 창조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었던 수업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며, 한국어로 설명하시면 심도 있는 명강의가 가능한 교수님들의 콩글리시 영어로 진행되는 피상적 수업과 그 수업의 결과와 연계된 차등등록금제도는 과연 카이스트라는 이공계 전문대학에서의 올바른 경쟁 활용방법인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실 촉망받던 젊은 인재들의 잇단 자살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대한 심각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능력 있고 촉망받던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절망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다양한 가치관과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무대에 나가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김연아 선수나 수많은 한류(韓流)스타들을 보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큰 능력과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20세기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교육시스템으로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듯이' 지식 주입을 강요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자는 "학문을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과연 학문을 즐기게 될까.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지도했던 미국 교수 한 분은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 "준비는 잘되어 있지만, 발전 가능성에 한계가 보인다."라고 평(評)한 일이 있다. 창의력과 다양함이 무기가 되는 지식기반사회의 이공계 인력을 계속 이렇게 키워도 될까. 이런 문제는 사실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한국에서 학생 교육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대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어, 학생들을 지금의 제도로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미래의 좋은 인재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엄정한 학사관리나 국제적 수준의 교수평가, 치열한 경쟁체제 구축 등은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이런 요건을 갖춘다고 해서 모두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라는 교육철학이 분명하고 이를 실행해야 진정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기에 이러한 요건을 갖추는 것이 대학개혁의 전부인 듯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대학개혁을 이루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르려는 미래 인재상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정립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스러져간 4명의 생명은 우리 대학에 이런 화두(話頭)를 던지고 간 것이 아닐까. 민초인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7기 이창재 기자 참고 : 4월4일자 한국일보 [카이스트 학생 잇단 자살 왜] 오세정(한국연구재단 이사장&서울대 교수)의 아침논단 기고 글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의 특별기고 글 카이스트 학부모의 편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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