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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에 대한 민초인들의 생각

김찬송

나눔에 대한 민초인들의 생각 <지하철 역 바닥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 갑자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늦여름 같이 따뜻했던 날씨가 가을이 아닌, 시리도록 추운 겨울 날씨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탓에 겨울 날 준비를 하지 못한 노숙자 한 명이 동사로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10월 25일에 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와 최빈계층에서 벗어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슈퍼스타K2 허각의 우승의 의미 얼마 전에 절찬리에 종영된 슈퍼스타K2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회 시청률이 20%를 넘었는데 이는 공중파로 치면 70%의 시청률을 의미할 정도로 놀라운 수치라고 합니다. 서바이벌 내용의 이 프로그램에서 허각씨가 존박씨(이하 허각, 존박)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왼쪽이 존박, 오른쪽이 허각 슈퍼스타K2에서의 모습> 제가 직접 슈퍼스타K2를 보지는 못했지만 일부 기사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들이 미국에서 자라고 명문대를 나와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의 존박이 아닌 중졸의 학력에 환풍기 수리공이라는 직업, 작은 키와 통통한 체형, 잘생기지 않은 외모 어려운 가정환경을 가진 허각에게 문자 투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리만족심리, 88만원 세대의 자기방어기조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에 대한 작은 나눔(하다못해 유료문자투표), 작은 격려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눔, 선택인가 필수인가 요즘 나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에서도 다양한 나눔 활동(연탄나르기, 기초수급대상자 자녀들의 공부방, ...)이나 농촌봉사활동, 인권문화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의 강조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 또한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실천되고 있는가는 별론 이지만요. 물론 많이 가진 자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넝마주이 일을 하시면서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들을 가끔씩 이지만 뉴스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아닌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활동도 활발한 것을 볼 때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먼저 살고, 나눠야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산다는 것은 정확히, 구체적으로, 솔직히 어떤 의미인가요. 먼저 산다는 것을 내가 만족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인간의 본성은 욕심이 너무나 커서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수학적으로 표현해 볼 때 만족은 “내가 가진 것 / 욕심”인데 분모가 무한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분모를 줄여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욕심이라는 분모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바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배제하고서도 어쨌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눔은 선택이기 보다는 필수로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역시 실천되고 있는가의 문제는 별론이지요.) 필수라면 정도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정도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가수 김장훈씨는 자신의 수입의 거의 전부를 기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김장훈씨처럼 생활유지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재산을 나누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며, 강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김장훈씨의 나눔을 단순히 정도의 문제라고 치부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비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정도보단 마음의 문제는 아닐까 소위 기부 천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나누지 않거나 조금 나눈 사람들을 비판, 비난하기보단 더욱더 기부를 실천하며 나아갑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남을 변화시키려거든 남을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비유해 보자면 수직선상에서 1이 올바름(나눔이 반드시 올바름이란 뜻은 아니고 단지 비유일 뿐)이고 0이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 할 때 자신의 위치가 0.75라고 해서 자신보다 0에 가까운 사람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욱더 1을 향해 나아가면 다른 사람들도 변화될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얼마 전 네팔로 등산을 다녀온 지인에게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골목에 현지 아이들이 한국 사람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이 편지를 한국에 있는 이분에게 전해주세요. 저 정말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제발요. 네?! 제발요.”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여러 구호단체들을 통해 외국의 어려운 아이들과 1 : 1 결연을 맺어 후원을 하다가 후원자가 후원이 갑자기 끊어 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고 이렇게 길에 나와 한국 관광객들에게 후원자에게 후원을 계속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자신의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연이 맺어졌다가 갑자기 끊긴 아이들은 아직 결연을 한 번도 맺지 못한 아이들보다 후순위에 있게 될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학교 다닐 시기를 놓쳐(일정나이 이상이 되면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됨) 결국 학교를 다닐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후원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마음의 상처도 입게 되지요. 후원금이 아이들의 생계비로 쓰일 경우에는 아이들의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후원을 끊은 후원자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의무적 나눔은 지속되기가 힘듭니다. 또한 나눔의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나눔의 정도는 자기 자신의 진실된 마음만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지금 나눔을 전혀 하고 있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에 전혀 찔림(?)이 없다면(마음속으로 변명을 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진실하게 생각해보아야 하겠죠?!) 나누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도 할 수 있고, 나눔의 정도 또한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마 나눔을 하고 있더라도 아직 나눔에 대한 마음의 찔림(?)이 있다면 더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나눔에 있어 나누는 사람의 진실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눔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좋은 가면을 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상 나눔에 대한 짧은 제 생각들을 토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민초인 여러분들이 조금 더 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제 생각을 오버해서 썼습니다. 그럼 나눔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들을 말해주세요. cf) 알뜰과 검소의 차이를 아시나요? 알뜰과 검소 모두 돈을 아낀다는 뜻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는데요. 알뜰은 돈을 아껴 자신을 위해 좀 더 다양한 곳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검소는 돈을 아껴 나눔을 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cf) 위에서 꼭 물질로만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요. 자신이 해보거나 아는 것 중에 알려주고 싶은 좋은 나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선생님, 트위터 미니홈피 블로그를 통한 나눔,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한 나눔 등 cf) 사회적 기업에 대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추천할 만한 사이트나 서적 등을 추천해주세요 민초 7기 이창재

Sun Oct 31 2010 15:53: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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