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해외통신

신동민

[민초인의 영국 유학기 7] 런던 폭동, 그 이유는?

Wed Aug 31 2011 11:58: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런던의 8월은 일년 중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 런던의 날씨는 비가 많이 오고, 음산하며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날씨로 종종 묘사되고는 하지만, 여름, 8월만큼은 뜨겁기 그지없다. 런던의 높은 위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때로는 탬즈강변의 햇살이 서울의 그것보다 더 따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금년 8월 런던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뜨거웠다. 안타까운 점은, 런던의 여름이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긍정적 의미의 뜨거움이라면, 금년의 뜨거움은 분노와 악의가 폭발해버린, ‘슬픈 뜨거움’이었다는 점이다. 그 화염 때문에 런던의 곳곳은 불타고, 약탈당했다. 다름 아닌 런던 폭동이야기다. 갑자기 닥친 런던 폭동은 이역만리 땅에서 온 유학생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라. 빼앗긴 것도 없었으며 다친 곳도 없었다. 다만 런던 폭동 때문에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간 축구 친선경기가 취소되어서,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를 방문해볼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린, ‘사소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피해였으니까. 런던 폭동, 그 시발은? 런던 폭동은 8월 4일 한 흑인의 죽음에서 시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마크 더건이라는 한 흑인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애초 평화시위의의 성격을 띠던 시위는 폭동으로 ‘진화’해버렸다는 것이다.‘화이트 하트레인’ 축구장으로 유명한 토트넘 지역에서 시작된 폭동은, 이튿날 런던 동북부 해크니, 월섬포레스트 등으로 확대되더니, 몇 일이 지나자 남부 루샴, 클램튼, 페컴 지역에서도 약탈과 폭동이 발생하였다. 이어 런던을 지나 영국 중부 버밍엄, 북서부 맨체스터의 거리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이 전파를 탔다. ? <런던이라고 다 예쁜 동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동 초기 불타는 토트넘, 뒤집히는 페컴의 경찰차 등 자극적인 장면을 전달하던 언론은, 점차 폭동의 원인에 대해서 주목하는 논조로 변해갔다. “왜 일어났나?” 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영방송 BBC에, 권위지 텔레그래프에 그리고 무가지 이브닝 스탠다드 등 각종 화면과 지면을 통해서 그 이유를 열거해댔다. 작은 것도 크게 이야기하는데 세계 수위권 안에드는 영국인들이 이번 폭동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수다스러운 영국인들의 의견을 모두 읽고 청취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본인의 영어실력이 이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많은 말이 오가버렸다. 영국의 끼리끼리 오가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때로는 ‘느낌이 중요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이 밀어보며, 보고 겪었던것을 바탕으로 폭동의 이유를 생각해보자. 런던의 거리를 지나본 그 누구든 한번은 ‘과연 여기가 영국인가? 영화 ’공작부인‘, ’쉐익스피어 인 러브‘으로 접했던, 금발의 여인네들이 엘리자베스 카라를 목에 두른 채 허리를 있는대로 동여맨 드레스를 입고활보했던영국이, 런던이 그 런던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해볼 것이다. 런던의 거리에는 흑인 혹은 유색인종이 넘쳐나고, 또 ‘신사’의 이미지 보다는 낮부터 맥주에 취해있는 백인 친구들도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와서 보고 느낀 적어도 런던은, 세계 그 어느 도시 뺨칠 정도의 다인종, 다민족 사회다. 문제는 그들간 서로 섞이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 운동장을 가보면, 놀라는 하나는 영국사람들이 정말 운동을 많이 하고 즐긴다는 점이며, 놀라는 다른 점은, 인종간에 섞여서 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미니 축구장 세 개가 나란히 있는데, 한 축구장은 흑인만, 또 한곳은 아랍계가 또 한곳은 백인들만이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물과 기름이 한 컵 속에 담겨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공존은 하되, 조화는 되지 않는 그 모습 말이다. 결국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어서 흑인은 흑인대로 백인은 백인대로 그룹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또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룹은 그 그룹하고만 부대낀다. 사는 지역도 다르게 형성된다. 부자 동네 첼시 지역에는 멋들어진 빅토리아식 건물사이를 오가는 맵시있는 백인들이 눈에 띠지만, 그 유명한 런던 동부 해크니 지역에는 우울해 보이는 건물이 가득하다. 당연히 그 거리에는 유색인종이나 먹고 살기 바빠 보이는 거친 백인들의 수가 늘어난다. 이 상황에서 이민자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민자들은 집값이 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유입된다. 딱딱해서 통계를 제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년 영국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 4명 중 한명의 어머니의 국적이 외국이라는 사실도 놀라운 수치인데, 못사는 동부 런던지역의 경우는 그 숫자가 4명중 3명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은, 이민과 경제상황과 관련한 현 런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간, 계층간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저런 사람들, 노팅힐 카니발에서> 이 상황에서 영국의 경제는 침체일로를 겪고 있다. 올 상반기 런던의 경제 성장률이 1% 정도라고 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정체나 마이너스 성장인 것이다. 자연히 빈부차이가 확대되고, 일자리 없는 청년의 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통계를 제시하면 16세에서 24세 사이 청년 중 백만명이 실업상태라고 한다. 학교를 다니는 숫자를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영국의 등록금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돈이 있어야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결국 실업 상태의 청년 중 대다수는 유색인종, 혹은 하층 백인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한국 복잡한 길을 돌아왔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집에서 15분거리에 있는 약탈의 현장을 가보니, ‘털린’ 가게 중 스포츠 용품을 사는 ‘JD'가 눈에 들어왔다. 같이 간 거주민 일본 친구는 “애들이 나이키 아디다스 다 털어갔다”고 했다. 건너편 식료품 가게 모리슨에서는 음식을 그리고 베팅 업체에서는 현금을 가져갔다고 했다. 조금 어이없지 않은가? 마치 런던에 혁명이라도 닥친 양 생각했는데, 털린 것은 고급 신발과 먹을 것, 그리고 돈이었다. 어쩌면 이번 런던의 폭동은 정치적 의미를 크게 갖고 시작된 것이라기 보다는, ‘어 혼란이 났네. 나 먹고 살기도 힘드네. 저것 가지고 싶네. 좀 정신없는 모양인데? 다른 동네에서도 한다는데, 애들아 한번 털까?’의 과정으로 진행된 말초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물론 그 욕망의 발현은 영국사회의 깊어가는 문제와 깊이 관련된 것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국을 보게된다. 철지난 사회 진화론도 아닐진데, 다른 사회를 일렬의 발전선상에서 놓고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현 영국 사회의 단면은 다음 혹은 다다음 세대 정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일부 담아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정도 사회인프라가 완성되고, 계층간의 유동성이 떨어진 형태 측면에서 말이다. 여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점증하고 있는이슈인 이민자들의 문제가, 더나아가 남북 통합 국면에서 경제적 격차가 큰 남북 주민간의 갈등가능성도 더해진다. 한국은 영국보다 속도가 더 빠르고, 변화의 스케일이 크다. 자연히 사람들의 공격성은 더 크고 타인에 대한 용인 수준은 떨어진다. 금전에 대한 맹신은 더 강하다. 과연 이런 한국 사회의 특성이, 지금의 영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과 만날 때, 어떠한 반응을 일으킬까? 웸블리 구장을 앗아간 런던의 폭동이, 결코 이역만리 땅의 한바탕 난리로만 그쳐 보이지 않는 이유다. 민초 3기 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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