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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해외통신

[민초인의 영국유학기 8] Prime Minister's Question

신동민

10월 끝자락, 우리는 또 한번 재미있는 정치현상을 목도했다. 10월 26일에 열린 재보궐선거, 그 중에서도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다. 물론 그간 공천받으면 당선되는 지역구도 속에서도 드물게 눈길을 끄는 선거는 수번 있어왔지만, 금번 서울시장 재보선은 사실상 양자대결 속에서 후보간 여러 수준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그 흥미를 더했다. 전통매체, 온라인, 트위터 등 각 종 루트를 통해서 가일층 되는 후보간 공방 중에서도, 그 ‘선거전투’의 백미는 일대일 대결의 ‘생방송’판이라고 할 수 있는 TV토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5차례 TV토론이 끝날때마다, 양 후보가 안고있는 새로운 ‘쟁점’이 제기되었고, 지지율이 상당수준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른바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계속되어 채널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에게 익숙한, ‘그’ TV토론은 일단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5차례 벌어진 TV토론은 내용상 결코 양질의 토론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느슨해보이는 해학과 여유 속에, 논리의 날카로움이 살아 숨쉬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듣고보면 어느새 그가 침몰되고 마는, 그리고 청중들은 그것이 가공된 것이든 아니든, 화자가 ‘보여주려 하는’ 진실성에 동화되버리는, 이른바 말싸움과 연설의 ‘미학’을 담고 있는 토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학은 커녕 오히려 정책에 대한 논의는 추상적 단어로 점쳘되고, 후보들의 관심사는 민초들의 일상다반사와는 유리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꼬투리잡기로 점철된, 싸움구경은 재미가 있었으나 싸움의 내용은 다소 빈약했던, 아쉬운 수준에 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수상질의 (Prime Minister's Question) 전제를 달고 출발하자. 남의 것이 무조건 좋다는 70-80년대 사고는 배격하자. 그리고 필자가 영국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은 커녕 장삼이사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가자. 다라서 하기 기술할 내용이 견해일수는 있어도, 권위적 주장이나 사실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의회 정치, 민주주의의 선구적인 국가이니만큼, 영국 정치에서는 일단 겉으로는 토론 문화가 상당히 잘 발달된 듯하다. 그 토론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매주 수요일 열리는 수상질의(Prime Minister's Question: PMQ)가 아닌가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PMQ는 매주 영국 수상이 하원(House of Common)에 나와서 30분간 야당 당수 및 여야 의원들과 한주간 국가 대소사와 각 의원 지역구 현안들에대해서 자유로운 토론을 벌이는 시간을 의미한다. 영국 최고직위의 정치인이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속에서 매주 TV에서 방영되는, 30분간의 정치 토크쇼를 벌이는 것이다. 시스템이 달라서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 대통령이 매주 국회에 나와서 여당 당수및 의원들과 주어진 형식 속에서 겪의 없는 토론을 벌이는, 상상의 장면을 떠올려 보이면되겠다.?PMQ의 역사와 형태 이러한 PMQ는 군주제 아래서 꽃을 피운 영국 의회주의의 오랜 전통과 맥을 함께한다. 지금처럼 ‘매주 수요일’ ‘30분’, ‘야당 당수의 질문은 6개’ 등, 일정의 형식미가 갖추어지기 전에도, 내각을 이끄는 수상이 종종 의회에 나와서 국가 대소사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응답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처럼 수상이 ‘일대다’의 대응형태로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는 마가렛 대처 재임 시절에 굳혀졌다고 한다. 그전에는 수상이 필요시 연단 각부처 장관들에게 대답을 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9년에는 드디어 수상질의가 TV 중계가 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15분간 일주일에 두 번 나누어하던 것을 토니 블레어 때, 질의 시간을 하나로 통합, ‘수요일 30분’의 형태를 갖추기에 이른다. 자, 서설이 길었으니 일단 한번 수상질의 장면을 보시라 (http://www.youtube.com/watch?v=4O8iqtOn6r0). 'Speaker'의 개회 선언아래, 최초 질의자로 뽑힌 의원이 “Question "Number One, Mr Speaker"이라고 말한다. 이후 수상은 “ This morning I had meetings with ministerial colleagues and others. In addition to my duties in the House, I shall have further such meetings later today.”라고 언급하며 PMQ의 시작을 알린다. 한편 장면에서 보이듯이, 현 보수당 카메론 수상 뒤에는 내각제 특성답게 좌측에는 현 부수상이면서 연립정권의 자유당의 당수인 닉 클렉이, 우측에는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앉아있다. 그밖 부처의 장관들도 벤치(bench)에 모두 출석해있다.?몇분 영상이 지나다보면 카메론 수상 연단 맞은 편으로 반대쪽 벤치의 젊은 의원 하나가 연단에서 선다. 그가 바로 현 남 요크셔의 의원이자 노동당의 당수, 69년생의 젊은 에드 밀리반드다. 이제 PMQ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수상과 야당당수가 설전을 벌일 시간이다 PMQ 영국정치의 오늘과 미래 PMQ의 주제는 다양하다. 야당당수나 의원들은 시점에 적절하에 유럽 경제위기, 영국의 대유럽 포지셔닝 문제, 리비아 사태, 영국의 아프간 파병, 영미동맹, 폭동문제 등 국내외 시사문제부터 복지제도, 국가의료제도(NHS), 실업문제 등, 영국사회의 고질적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질의를 쏟아낸다. 또한 야당 당수 질의 이후 의원들의 질의에서는 각 지역구의 미시적인 주제들도 제기된다. 예컨대 요크셔 주의 A의 의원은 현 지역에 살인사건이 났는데, 가족들이 슬퍼하고 있으므로 수상이 위로를 전달해주길 기대하며, 나아가 수상이 법정 증인제도를 개혁해주길 희망한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지역대표성을 띠고 있는대의제의 본질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의 본질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 답게 야당은 PMQ를 여당을 공격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의장의 제재에 순응하기는 하지만, 수상과 의원들간의 발언이 야유와 고성이 오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물론 보좌진이 도와는 주겠지만 PMQ는 수상과 야당당수에게 있어서 상당수준의국가 대소사에 대한 지식과 정치적 센스, 그리고 토론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방어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곧 영국 국민들에게 영국 정치의 오늘을 통해서 미래를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상을 공격하는 사람이 훗날 정권이 바뀌면 영국 수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수상이 능력이 발휘하지 못하면 여당 쪽 벤치에 앉은 사람이 언제든지 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PMQ에서 오가는 설전을 통해서, 주요 정치인들의 역량이 TV전파를 통해 그대로 노출됨은 물론이다. 실제 토니블레어 수상 재임시절 고든 브라운은 재무장관을 역임했었으며, 그 시절 야당 당수는 현 수상인 카메론이었다. 오늘 카메론과 밀리반드가 토론을 벌이듯이, 10여년전에는 블레어와 카메론이 자리를 바꾸어 맞대응했던 것이다. 존 메이저 시절 토니블레어도 그리하였다. 국민은 오늘과 내일의 리더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토니블레어는 존 메이저 시절 막판, PMQ에서 “나는 내가 당을 이끌지만, 당신은 당에 따라가고 있다 (I lead my party, he follows his)”는 유명한 멘트로, 자신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전영에 알리기도 하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QpZhugomNJE).??동북아 남북한은 어떠한가? 남의 이야기를 하면 재미는 있으나, 그 이야기의 쓰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지적유희에 머무르고 만다. 도대체 유럽축구의 정치학은 한국에 어떤 의미를 제시하는가? 아시다시피, 동북아는 경제적으로는 국가들간 북한을 제외하고는 불가분의 관게를 형성하고 있지만 정치적, 정체성적으로는 불신과 미움의 정서가 남아있다. 요새 탈북자 송환문제를 두고 나타나고 있는 한국과 중국간, 또 한미와 북중간의 관계는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시대이기 때문에 갈등을 봉합하려면 이해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사가 꼭 MC=MR로만 진행되고 있겠는가. 동북아 갈등의 해법은, 수학적인 계산과 함께 유럽 축구의 사례처럼 서로간에 부담이 공유하고, 또 부담없이 만나고, 또 그래서 부담없이 상호간 이해할 수 있는 기제가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4.25 축구팀이 K-리그와 함께한다면, 그들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나와 전북의 닥공축구와 겨뤄본다면, 그래서 어느날 조선중앙TV의 촌스러운 그 MC 아줌마가 이동국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 대결 소식을 전한다면, 권력을 쥔 북한의 장군들도 K-리그 선수들을 줄줄 외게 된다면...... 북한의 뻣뻣한 자세를 고려할 때, 이는 정말로 아직은 오뉴월의 개꿈 같은 일이겠다만, 이를 실현해보기 위해서 국가적 자원을 투자해보는 것이 단기적 차원에서 해법에 매달리는 것보다 어쩌면 긴 시간 속에서 더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선수가 유럽을 무대의 주역이 된다는 상상을 현실로바꿔 준박지성의 경기 출전을 기대하면서, 유럽 축구가 주는 정치적 상상력을 한번더 생각해보는 이유다. 신동민 졸업생

Sun Mar 04 2012 00:4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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