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강민경

천사의 모습을 가진 민초 5기 유하린 선배님!

Wed Nov 03 2010 11:23: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 천사의 모습을 가진 민초 5기 유하린 선배님!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껴보자. Q. 안녕하세요, 선배님. 먼저 이 기사를 읽고 있을 민초 가족 여러분께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A. 5기 장학생 유하린입니다. 부족한 저를 인터뷰 자리에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이 시대의 참교사, ‘유하린’을 만나다. Q. 장학생 모임 등에서 선배님의 모습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선배님께서 요즘 선망의 대상이라고 불리는 ‘교사’로 근무하신다고만 알고 있고요.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소개 부탁드려요! A. 저는 지체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3년차 교사에요. 임용고시도 봤구요. 요즘은 교사를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교사를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취업시장이 워낙 불안하고 다른 직장은 다니면서도 언제 퇴직을 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에 비해 길~게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물론 교사도 월급을 받는 근로자입니다만, 교사는 돈보다 사명이 우선되는 직장이라고 생각해요-지루한 말일지 모르지만-현장에 서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안정도 중요하지만, 교육은 성과가 수치로 드러나기 어려운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보다 마인드가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Q. 지체장애 특수학교라면 제 편견인지는 몰라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반학교보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분으로서는 어떠세요? A. 일반학생들과 장애학생들이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통합교육’이 예전보다는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래도 교실에 문제행동이 많은 장애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담임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힘들어 하거든요. 그런 학생들을 여러 명 모아놓고 한 반에서 수업을 하는 게 특수학교입니다. 그것도 일반학교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학생들만 모아놓았어요.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일 테고, 저는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는 지체장애학교는 뇌성마비, 그 외 희귀질환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랍니다. 신체장애뿐 아니라 심각한 지적장애를 동반해요. 아이들은 실제로 ‘수업’이라는 것이 이뤄지기가 어렵고 착탈의, 식사, 용변까지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때로 숨만 쉬다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자녀로 둔 학부모님들의 마음의 상처는 크고 깊어서 때로는 학생보다 학부모와의 소통이 너무 힘들어요. 다독이다가도 화가 나고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교원평가’라고 해서 수업을 동료교사와 학부모가 참관하게 하고 채점까지 하도록 했는데 그런 평가는 일반학교라면 모를까, 저희 학교의 경우 한 학급에 ‘말을 할 줄 아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앞이 막막하였다가 엄청난 고민 끝에 결국 수업을 끝냈을 때, ‘선생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많이 배웠네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국 몸살로 며칠 고생했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얻고-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최대한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건 특수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업이 끝나고 깨달았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도 나를 가르쳤구나. 내가 잘난 줄 알았는데, 이 선생님도 하나님 앞에선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구나.’하는 것을요. Q. 선배님 말씀을 들어보니, 지체장애 특수학교가 힘들겠다는 편견을 가진 제가 부끄러워 지는데요. 임용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보시면서까지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저는 사실 00학번인데 수능을 다시 치고 04학번으로 특수교육과를 다시 전공했어요. 특수교육을 전공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수능을 다시 친 것은 아니었어요. 사실 이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잠시 했었는데, 가정과 학교에서 가족과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서 사회운동을 말한다는 것이 회의가 생겼고, 또 제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교사란 일에 대한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교대를 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수능점수가 의도했던 대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동생이 먼저 특수교육을 전공했는데 졸업하자마자 제가 후배로 입학을 하게 되었네요, 하하. 지금은 그 때 이 길을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운동 때 배웠던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 지금도 함께 하고 있고, 순수하고 예쁜 우리 아이들이 저를 무척 힘나게 하거든요. 가끔 학부모들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고, 똘똘한 아이들을 제자로 두었으면 하는 욕심도 나지만^^. 임용을 공부하면서 저는 또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저도 사실 ‘백수’가 된다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어요. 나이도 좀 있는 편인데다가 남들의 시선도 두렵고, 장학재단도 졸업까지만 도와주실 수 있잖아요. 하지만 임용을 준비하면서 저는 취업을 소원하지 않았어요. 내가 만날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로서 꼭 필요한 것들 공부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를 만날 친구들과 그 교실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고 간절함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종이장의 객관식?논술 문제가 나의 진가를 얼마나 평가해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죠. 하지만 세상은 진심을 외면하지 못해요. 이런 시험을 통해서도 나는 내 자신의 순수한 진심을 평가받았고, 시험 준비하는 기간의 그 외로움과도 친구가 되었어요. 무엇보다 시험장에서는 제가 세상에 나갈 힘이 ‘사람들의 시선’이나 ‘물질’, ‘명예로움’이 아니라 그저 제가 믿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걸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Q.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후회가 되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반대로 보람 있었던 적은요? A.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제가 근무하는 환경에서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이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불러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더 생각을 하게 될 텐데. 또 상처 많은 학부모님들을 대할 때,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다 공감하고 안아주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힘이 듭니다. 물론 교사가 너무 감정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무한하게 퍼줄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서 충전과 공급이 필요하답니다. 그렇지만 어떤 아이들이건 지금 제게 맡겨진 순간과 조건에 충실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요. 이번 스승의 날에 두 해전 맡았던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카드를 받았습니다. ‘베풀어 주신 사랑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거구에 엄청난 힘을 가진 문제행동을 가진- 나를 정말 힘들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방학만 되면 가장 생각이 나던 녀석^^. 진심을 주면 진심이 돌아옵니다. 그게 가장 보람 아닐까요. * 꿈을 향해 달려가던 대학생, ‘유하린’을 만나다. Q.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선배님은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천직이신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저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고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꿈을 이루신 선배님 모습을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행복하신 선배님의 대학시절이 궁금한데요. 선배님께서는 어떤 대학생이셨나요? A. 처음 다니던 대학에서는 학점은 보통에다 열심히 학생회 일에 매달리는 나름 운동권 학생이었고^^, 특수교육을 배우면서부터는 교회가 생활의 가운데 있어서 학교에서의 활동은 활발하지 못했어요. 지각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교수님들한테 찍힐 법한 학생이었는데, 저는 리포트를 쓸 때 여러 권의 책을 참고해서 조금 늦더라도 고민하고 다듬어 제출하는 것이 즐거워했고 그런 부분에서 교수님들이 독특하고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임용을 칠 때도 그 때 그런 저의 모든 고민의 과정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학재단에서 용돈을 주셨지만 저는 집에서 받는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생활을 꾸려가야 해서 과외도 퍽 많이 했어요^^.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한 다스쯤 될 것 같은데, 하하.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학습된 무기력함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 친구들 모두 제가 교사로서 서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저를 통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뿌듯함도 느꼈구요. 또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매해 여름마다 다녀왔는데, 몽골,태국,미얀마,라오스,중국 등 세계를 보는 기회를 가졌던 것도 넓은 세상을 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Q. 대학생이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A. 앨트웰 민초장학재단을 만나고 좋은 장학생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나게 된 것은 가장 좋은 기억 중 하나지요. 무엇보다 저 이후로 우리 학교(부산대학교) 민초 후배들이 계속 생겨나는 기쁨도 있었구요~ 단기선교를 더 큰 세상을 보고 느끼고, 또 임용을 준비하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 그런데 사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루어진 거랍니다. Q. 민초장학재단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그리고 지원(면접) 당시 기억나는 모습이 있다면요? A. 학교 내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처음 알았지요. 왠지 저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정말요. 그런데 1차 지원할 때 필요한 서류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있었는데, 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모범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내역 란에는 ‘수상내역 없음’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아, 정말 난 내세울 게 없는 인간이로구나.’ 자책감이 밀려오는데, 문득 드는 생각.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나였으니까, 지금 나의 자격은 하나님이란 생각. 그리고 내 삶에 대해 내 스스로 가져야 하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1차를 통과하고 2차 논술을 준비하는데 무엇이 나올지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대로 준비를 했고, 비슷한 문제가 나왔죠. 저는 제가 잘했기 때문에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만심이었죠. 똑! 떨어졌거든요. 그 해는 장학생 수가 좀 줄어들었더군요. 당장 등록금과 생활비 등으로 막막했지만 저는 곧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에게 2차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재단, 그리고 참 많은 도전이 되는 친구들을 보았고, 내 자신의 자격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2학년 1학기 등록금 준비로 버거워할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추가로 장학생을 뽑아주셨다고. 첫 장학생 연수 때 다들 웃으며 쑥스러워 했는데^^ 저는 지금도 저를 처음부터 뽑지 않고 추가로 뽑아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어요. Q. 선배님께 ‘민초’란 어떤 존재였나요? A. 일단은 ‘감사함’이지요. 제 것을 나눈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겉으로는 밝지만 사실 경제적 문제로 힘겨워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학재단의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 저는 말로다 표현 못했지만 그들에게 연수를 갈 때마다 많이 느끼고 배웠답니다. 한 마디로- ‘도전’이지요. 여기서 멈추지 말자, 만족하지 말자,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을 더 가지자. 하는 마음을 갖게 했거든요. Q. 혹시 장학재단 내 소모임 활동은 하셨었나요? A. 제가 지방에 있다 보니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많지 않았습니다. 웹진에서 기자로 한 학기 정도 활동했는데 얼굴보기도 쉽지 않았고 제가 또 이리저리 삶에 치여서^^;; 열심히 못하게 되어 미안했어요. 그 때는 제가 살던 곳을 떠나 이렇게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워요. * 미래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그녀, ‘유하린’을 만나다. Q. 웹진 기자 선배님이시네요. ^^ 선배님과 저는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것 같아요. 민초 후배들에게 ‘대학생일 때, 이거 꼭 해봐라!’ 하고 추천해주실 만한 일이 있으시다면요? A. 직장에 묶이면서 너무 아쉬운 것 하나가 있어요~ 해외자원봉사를 꼭 해보고 싶은데요. 기아대책이나 월드비전 같은 구호단체에서 하는 해외단기자원봉사가 대학생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아요. 건강만 허락된다면 꼭 지원해보았으면 합니다. 더 큰 세상을 보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고,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순수할 때 나누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저도 대학생 때부터 1,000원으로 시작했던 후원을 이제 금액을 늘여서 더 하고 있답니다. 저도 계획 중인 공부를 마치면 잠시 직장을 내려놓고 해외자원봉사단으로 다녀오고 싶어요. Q. 선배님은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시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분이신 것 같아요. 그런 선배님의 꿈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A. 꿈.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이제 곧 이십대를 마무리하지만 제 마음 속의 꿈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제 꿈은 우리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고 그에 따른 현실적이고 다양한 교수방법을 고민하는, 고이지 않은 교사이고 싶습니다. 또 우리 아이들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게 그 교량으로서의 능력 또한 필요하겠지요. 이건 앞으로의 공부계획과 연관이 되는 건데 아직은 말로 하고 싶지 않고 기도가 필요하답니다^^. Q. 마지막으로 민초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건강하세요. 저는 제가 가진 아픔을 이제 이겨낼 수 있게 되었지만, 건강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가 없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시길. 삶을 즐기고 사는 여유를 꼭 가지세요. 꿈이 많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옭아매어 피곤하게 하기 쉬워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사시길. 요즘 저는 걷기에 빠져 있는데,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은 사색의 여유를 주고, 이리 저리 묶여 분주하던 마음에 자유를 준답니다.(다이어트는 덤^^!) 따뜻한 마음씨로 다른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그녀. 모두 자기만 살아가기 바쁜 요즘 시대에서 찾아 보기 드문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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