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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연

아무도 모른다

Mon Oct 31 2005 07:4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아무도 모른다 난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칵’하고 울리는 셔터 음이 좋고,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 다닐때, 가벼운 나의 발걸음이 좋고, 카메라 앞에서 한껏 폼을 잡으며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 볼 때가 좋다. 그리고 찍는 순간 ‘니가 어떻게 찍었는지 봐라’ 라고 말하며 바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현상과 인화를 거쳐 드디어 나에게 처녀의 수줍음 마냥 모습을 드러내는 필름 카메라가 더 좋다. 그래서 무겁고 단단한 내 낡은 수동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필름 몇 통을 주머니에 넣고는 여기 저기 골목길을 돌아다닐 때, 난 살아있는 듯 하고, 때론 온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찍기 힘들면서도 또한 가장 즐거운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다. 골목길 여기저기 구석구석마다 그들의 구역이 아닌 곳이 없다. 어른들이 만든 아스팔트 바닥과 벽돌담, 어지럽게 전선이 쳐져 있는 전봇대 사이사이를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뛰어다니는 그들을 사진에 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그들의 순수한 모습을 필름에 담기위해 조심조심 다가가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그들은 이미 저 멀리 뛰어가고 없다. 내 마음대로 아이들의 모습을 연출하여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다른 곳을 보고 만다. 몇 달 전, 그날도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골목길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저 멀리 아이들이 보였다. 봄이 막 시작된 날 이여서 그런지 조금 쌀쌀한 날씨임에도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연신 입에 떠 넣으며 그 달콤함에 서로 미소 짓고 있었다. 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 : 얘들아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내가 사진 찍어줄게. 그대로 있어봐.한 아이 : 아저씨 사진 왜 찍어요?나 : (아저씨란 말에 뜨끔하면서) 어? 그냥. 너희들이 너무 이뻐서.한 아이 : 그래요 그럼 이쁘게 찍어주세요.나 : (아이의 당당함에 또 한 번 놀라면서) 그래 그럼 찍는다. 오른손으로 카메라 몸체를 잡고 왼손으로 포커스와 노출을 맞추고 있으려니까, 그 아이가 또 묻는다. 한 아이 : 아저씨 근데 거기서 찍으면 우리 머리만 찍히는거 아니에요?나 : 응? 왜? 왜? 라고 말하고는 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난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허리를 쫙 펴고 서서 그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카메라를 조작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멍했다. 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던 라면이 내 머리 위로 ‘퍽’하며 떨어진 느낌이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으려니까 그 아이가 ‘빨리 찍어줘요’ 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난 아이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셔터를 눌렀다. 아무도 모른다며칠전 우연히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를 보고는, 또 한 번 멍했다. 몇 달 전 골목길 한 아이를 통해 내 머리 위에 떨어졌던 보글보글 끊던 라면 면발의 뜨거움이 또 한 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엔 곱빼기였다.영화에는 한 어머니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모두 다른 네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들은 여행 가방에 담겨 자그마한 아파트에 이사를 와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넷인 여자에게 방을 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결국 또 다른 남편을 찾아서 떠나고, 남겨진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키라는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고, 교코는 빨래를 하고, 시게루는 베란다에서 키우는 화분에 물을 준다. 그리고 막내 유키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남겨진 아이들은 어른들의 존재를 잊어가며 그들 나름의 생활을 이루어간다. 아무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모른다. 아니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아무도 모른다아키라가 왜 혼자 장을 보러 가는지...네 남매의 행색이 꼬질꼬질해지고, 머리가 웃자라도...아이들의 집에 식량이 동나고, 전기가 끊기고 단수가 된 사실도...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는 것을... 아무도 그들의 눈높이로 그들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사는 것이 힘들고, 시간에 쪼들리고, 해야 할 일이 많고, 가야할 곳도 많기 때문에... 아니면 무릎을 굽히기 힘들고, 내려다보는 것이 좋기 때문에...그래 그럴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우리들이 모르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우리들도 예전에는 시선을 맞추기 위해 어른들을 올려다봤고, 그들과 손을 맞잡기 위해 위로 한껏 손을 뻗쳐야 했으며, 어른들이 만든 아스팔트 바닥에서 뛰어다닐 때가 있었다는 것을...ps. 부끄럽지만... 12월 6일부터 9일까지 남산도서관 1층 목멱전시관에서 사진전을 합니다. 나의 부끄러운 사진들이 소개됩니다.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 들려주시길... 글 l 우보연 cinew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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