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해외통신

김신애

가장 한심하고, 가장 찬란한 22살의 행복 여행

Tue Oct 04 2005 05:4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가장 한심하고, 가장 찬란한 22살의 행복 여행 <아르헨티나인디오 푸른샘 마을> 1) 인디오 여자는 아야아야, 서울 촌사람은 덜덜덜. “아야아야.” 안드레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내질렀다. 나도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안드레아의 손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괜찮아, 금방 도착할거야.” 그 흔한 가로등도 없는 이 곳. 칠 흙처럼 어두운 밤이 뭉근하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우리는 120km가 넘나드는 속도로 달리는 차 속에서 어서 빨리 병원에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곧이어 안드레아의 양수가 터졌다. 차 바닥에 깔아 둔 담요가 흥건히 젖었다. 아기가 곧 나올 것 같다고 맨발로 우리 집까지 뛰어온 남편도 초조한 모습이었다. 중.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대학교 교양 시간에 난 도통 뭘 배운 건지. 산모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연신 침만 몰아 삼켰다. 1시간 거리의 시립 병원을 30분 만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 병원에서 어떻게 몇 십 분을 초조하게 앉아 있다, 서있다, 돌아다니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 참을 안절부절 한 후에야 너무나 듣고 싶던 말, 너무나 기다리던 말 한마디 들을 수 있었다. “아기를 낳았어요.” 남편 실비오는 웃고 있었다. 아기 이름은 리차르, 건강한 사내 아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아버지가 된 실비오는17살, 어머니 안드레아는 16살이었다. 2) 내가 한 일 ① 미용교육 기관장님의 후원으로 난생 처음 ‘미용’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엘도라도 시내의 미용실에서 개인 교습을 일주일에 한번 씩 받는다. 인디오 아이들을 모델로 데리고 가서, 매우 실질적인 머리 자르는 법(남성커트와 여성커트)을 배우게 되었다. 배운 것은 바로 바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머리가 지저분한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을 불러 모아 열심히 잘라 주고 있다. 기관장님 사택에는 이발 도구들이 모두 갖춰져 있으니 참 다행이다. 그래도 아직은 미숙하다. 몇 몇 아이들의 머리에 없던 땜빵을 댓 번 넘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머리 자르는 것을 좋아하고, 나 역시 실력이 차츰 느는 것을 느낄 때 기쁘다. 그러고 보면 머리 잘라 주는 것이 단순하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업무임에는 분명하다. ② 미술, 영어, 수학교육 일주일에 세 번 씩 오전. 오후반을 나누어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오전반은 오전 9시~12시까지로 12세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오후반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로 주로 7~12세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영어, 수학 교육을 하고 있다. 오전. 오후반 가릴 것 없이 인디오 아이들의 경우에는 모두 기초 실력이 부족한 편이다. 사실 이 아이들은 학교에 비가 오면 안 간다. 옷을 안 빨았다고 안가고, 춥다고 안 간다. 학교에 안 가는 이유도 정말 가지가지다. 공립학교의 경우 학비가 무료라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이들의 부모들 또한 교육의 중요성 내지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된 간단한 문장조차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10살이라지만 1~10까지의 숫자들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지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특별히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교육용 교재 및 교구들이 부족한 편이다. 현재는 수도에서 어렵게 구한 스페인어 교재들을 복사해서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면서도, 꼭 필요한 내용들을 쉽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3) 푸른샘 마을 도서관을 꿈꾸며. 7월이면 이곳은 한국과 반대로 겨울에 접어든다. 정글이라지만, 비만 한 번 내리고 나면 어찌나 추운지, 나는 꼭 오금이 저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추위에 옷도 변변치 않게 입고 맨발로 잘도 뛰어 다닌다. 아이들의 집은 모두 비슷하다. 열 대어명의 식구들이 흙바닥에서 불만 피워두고 잠이 든다. 먹을 것도 마땅히 없다.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없고, 물도 귀하다. 아이들은 항상 제대로 씻지 못해 옷이며 얼굴이며 가릴 것 없이 흙먼지가 엉겨 붙어 있다. 5살도 채 안될 것 같은 꼬맹이들만 보자. 이 꼬맹이들만 보더라도 옆구리에는 항상 애기 하나씩 달려있다. 누구냐고 물으면 동생이란다. 이 곳에서는 15살 밖에 안 된 애가 애를 낳고, 5살 밖에 안 된 애기가 애기를 본다. 편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집도 많고, 그 것도 여의치 않으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다른 친척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꽤 된다. 사실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이러하다 보니, 교육환경 또한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 집에 읽을 만한 동화책 한권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목각 인형을 만들어 팔고,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삶의 고단함부터 배우는 것은 아닌지 안쓰럽다. 그러나 비록 이 아이들을 둘러 싼 환경이 열악할지라도,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기쁨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푸른샘 마을 도서관!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그래서 부기관장님과 뜻을 모아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내려가 중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동화책을 20여권 구입했다. 푸른샘 마을에 방문한 코피온 현지 코디네이터 또한 약 15권의 그림 동화책을 기증해 주었다. 이제 책들에 번호표를 붙이고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선보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직접 그리고 만들어서 나눠줄 계획도 가지고 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른 뒤, 책장 가득 꽂혀질 책들을 부푼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기쁨과 지혜를 발견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쿵.쿵.쿵.’ 이렇게.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l 김신애 sa25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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