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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장혜령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모르는 남자가 잠들어 있는 여자의 하이힐을 벗겨준다. 어머니 말씀이, 미인은 구두가 더럽혀지면 안 된다고 했다 한다. 이 상황을 나는 충격적인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다. 평소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던 여자는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아마 한 번도 그렇게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중경삼림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그리고 이것은 홍콩에서 자라난 왕가위의, 반환 전인 홍콩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중경(chungking)는 그가 애착을 갖는 홍콩의 작은 지역이다. 침사추이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이 가고 싶어하지만 가짜 롤렉스를 파는 인도인들과 마약밀매를 하는 아랍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 여행자에게는 위험한 지역이다. 남자는 5월 1일에 헤어진, 돌아오지 않은 애인을 기다리면서 유통기한이 may 1로 찍혀져 있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다. 그는 꾸역꾸역 파인애플을 다 먹으면서 결국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하고나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유치하지만 술집의 문을 처음 열고 들어오는 낯선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공교롭게도 청부살인이 직업인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이미 밤이 깊었는데도 검은 썬글라스를 쓰고 있다. 그녀는 블론드의 가발을 쓰고 빨간 하이힐을 신었으며 비가 오지 않는데도 베이지색 레인코트를 입었다. 아마 이미 사람을 죽였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다. 남자는 말하지 않는 여자를 향해 혼자서, 실연을 당한 것과 내일이 생일이라는 말과 호출기를 샀지만 한 번도 문자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얘기들을 주절거린다. 술에 취한 여자를 데리고 호텔에 들어간 남자는 여자의 구두를 벗겨주고 날이 밝기 전에 호텔을 나온다. 다음 날 그는 생일축하 한다는 문자를 받는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중경의 또 다른 이야기는 편의점에서 의미없이 처음 이야기의 주인공과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서로 지나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매일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며 햄버거를 파는 여자와 점심마다 그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경찰의 이야기다. 경찰에게는 스튜어디스인 애인이 있지만 그녀는 남자를 떠난다. 남자는 어느 날 햄버거를 사 먹으러 오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궁금하게 여기고 그 다음부터 남자의 집을 몰래 찾아가 청소를 해 놓기 시작한다. 경찰은 햄버거 파는 여자가 자기 집 청소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은 정식으로 데이트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장소에 서로 나왔지만 만나지 못한다. 남자는 캘리포니아란 이름의 술집에서 기다렸고 여자는 진짜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지만 어긋난다. 1년 후 남자는 햄버거를 팔고있고 여자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돌아온다. 청부살인업자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어버린 상황과 서로 다른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렸다는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중경의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즐겁게 만든다. 또한, 이 영화는 스타일이 전부가 아니다.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사람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쫓아가는 기법)와 사물을 왜곡시키는 광각 렌즈(가까이 있는 사물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하는 렌즈)의 사용만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많은 왕가위의 아류들이 카메라를 흔들어대고 도시의 불빛을 춤추듯이 흘러가게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하지는 못했다. 왕가위는 이후의 작품인 화양연화, 2046, eros에서는 좀 더 과거로 방향을 틀어 자신에게 감동적 이었던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실연의 상처를 가진 과거형의 오래된 여자와 남자가 나온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풍의 여자와 남자들도 현대 영화의 여자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로 괴로워하고 즐거워한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부르던 왕 페이와 2046의 혼잣말을 하던 왕 페이, 2046의 연인인 공리와 eros의 창부인 공리, 화양연화의 유약한 양조위와 2046의 잔인해진 양조위. 그의 영화 안에서는 거의 매번 비슷한 배우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를 다 꺼내보며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연기한 배우들을 찾아 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홍콩은 높은 건물이 빽빽하게 솟아올라 세계에서 가장 비행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깊게 각인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그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름답든 더러운 것이든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건물들 위로 하늘을 낮게 날아오르던 중경의 비행기 소음을 그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것 같아 보인다. 전축을 통해 흘러나오는 올드팝이나, 런닝셔츠를 입은 기름진 머리의 남자나 꼭 끼는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서글픈 표정의 홍콩 여자의 뒷모습도 그가 절대로 버리지 못하는 그런 기억 중의 하나일 것이다. 민초 4기 한국예술종합학교l 장혜령 jaineyre@hanmail.net

Wed Aug 31 2005 06:3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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