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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령

리컨스트럭션

Fri Jul 01 2005 01:56: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리컨스트럭션 크리스토퍼 보에 감독/ 니꼴라이 리 코스, 마리아 보네비 주연/ 스웨덴/ 처음부터 내가 이야기 한 건 모두 다 거짓말이었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은 커녕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끝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가능할까, 말이 되는 걸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작부터 의문투성이인 모호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가장 분명한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진작가인 알렉스는 시몬느라는 약혼녀가 있고, 똑같은 얼굴을 가진 아메에게 매혹된다. 아메는 작가인 남편을 따라 잠시 스웨덴에 머물고 있으며, 곧 떠날 예정에 있다. 시몬느와 아메, 둘은 똑같이 생겼지만 안정적이고 귀여운 약혼녀는 붉은 입술의 불안한 그녀보다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알렉스는 너무나 쉽게 어느 까페에서 우연히 만난 아메에게 빠져들고 그 이후로 그의 시간과 공간들은 완전히 뒤섞인다. 알렉스의 은밀한 사랑은 그 자신만이 느끼는 변화였으나 그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살던 방은 사라지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몰라보고, 그의 아버지, 그의 약혼녀까지 그를 모른다. 알렉스를 유일하게 알아보는 건 아메 뿐이지만, 그녀가 아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과연 진짜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아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단편영화는 시에 가깝고, 장편영화는 단편소설에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는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작은 정보’만을 갖는다. 우리가 영화를 본 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운 어떤 이미지(대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장면)이고, 그 이미지들의 환영은 실제로 말로 간추리면 조악하기 짝이 없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사랑은 불륜이고, 절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서사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모든 이야기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불륜의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대체로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잘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행복한 결말, 그것은 훌륭한 이야기로서는 부적합하다.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억지로 얻어지는 감동은 진부할 뿐이다. 신데렐라는 없다. 행복한 왕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갖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사람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욕망을 가지고 있고, 너무나 어리석게도 거기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사랑했을까. 왜 죽게 되는 것일까. 왜 갖고 싶어 하는가. 왜 결말을 알면서 뛰어들게 되는 것인가. 이 영화는 모든 시간이 공존한다. 사실 모든 인간과 그 인간을 담은 모든 영화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시간이 공존한다. 그의 시간은 그의 선택이고, 그의 타이밍 역시 그의 전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내용과 형식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사랑에 빠진 그의 시간은 일순간일 뿐이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2시간이 넘는 영화 러닝타임의 전부가 사랑에 빠진 그의 시간을 담고 있다. 알렉스는 아메에게 뛰어들기를 선택하고 아메 역시 알렉스에게 뛰어들기를 선택한다. 아메의 남편은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에 대해 소홀하여 그 사랑을 아주 쉽게 잃는다. 알렉스와 아메는 다시 그 까페에서 만나 로마로 떠나기로 약속하지만 알렉스가 시간을 지체함으로써 둘의 시간은 영원히 깨진다. 알렉스를 붙잡았던 것은, 이제는 자신을 전혀 모르는 약혼녀 시몬느. 과거는 끊임없이 그의 미래를 붙잡고 아메와 알렉스는 만나긴 하지만 아메는 그가 시간을 어겼다며 떠난다. 아메가 남편과 함께 스웨덴을 떠나는 시간으로 끼어든 알렉스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다고 말하지만 아메는 남편에게 그를 모른다고 말한다. 모든 요소들 안에는 강력한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주인공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보다도 그들을 억누르는 시간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들은 결국 시간으로 인해, 과거로 인해, 현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인 reconstruction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개개인의 기억으로서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리컨스트럭션 안에는 많은 종류의 상징과 은유들이 수많은 이미지로서 들어있다. 겹쳐진 도시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과 전체가 붉은 빛으로 처리된 거리를 걷는 아메의 뒷모습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은 그 자체가 분위기이며 이야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장치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시간 전개나 인물의 감정 변화를 연결하는 내러티브적인 고리로서 쓰이고 있다. 이 영화는 아름답다. 배우도 배경도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보통 우리가 영화를 보고 좋다고 말하고,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름답지만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아름다움에 비해서 저속하기 짝이 없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는 불륜담’이 우리가 말하지 않는 감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적인 시점의 나레이션이 함께 한다. 또한 처음부터 담배를 허공에 띄우는 마술사와 함께 나레이션은 시작된다. 나레이터는 아메의 남편이자 작가인 오거스트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의 소설이고, 마술과 같은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반전을 노린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온통 거짓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허구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아파 하는 걸까. 영화가 질문한다. 민초4기 한국예술종학학교l장혜령 jaineyrejainey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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