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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연

꿈꾸는 피터팬

Sat Feb 19 2005 17:0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꿈꾸는 피터팬 졸업한 선배를 만났다. 얼마 전, 졸업한 학교 선배를 만났다. 거의 1년 만에 처음 본 그에게서 옛날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큰 키에 바람에 날리던 긴 머리카락, 흰 피부, 곱상하게 생긴 얼굴로 학교 여자애들의 우상이었던 선배는 1년 만에 완전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큰 키는 여전했지만, 살이 쪄서 예전의 늘씬한 이미지는 사라졌고, 곱상한 얼굴에는 어느새 주름이 끼어있었으며, 흰 피부 또한 울긋불긋 잡티가 나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학교 앞 잘 가던 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 선배가 학교 다닐때 난 그를 잘 따랐다. 호감을 주는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후배들 사이에서 피터팬으로 불렸었다.언제나 순수한 얼굴로 영화를 대했고, 영화를 사랑했다. 그와 함께하면 언제나 웬디가 된 듯했고, 그와 함께 네버랜드 하늘을 날고 있는 듯 했다. 조금 과장했지만 말이다.그런 그가 졸업을 할 때쯤 느닷없이 대기업에 취직을 해버렸다. 계속 영화를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리라 생각했던 나는 약간은 실망했지만, 한편으론 피터팬도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서글픈 현실에 그 선배의 선택을 축하해주었다. 그런 선배가 1년 만에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피터팬이 아니었다. 오히려 후크선장과 닮아있었다.그는 술자리에서 현실의 고단함과 미래의 불투명함에 대해 말했다. ‘1년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예전의 순수하고 꿈꾸는 피터팬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현실적인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아니다... 그는 어른이 되어있었다.난 이제 어른이야!‘난 이제 어른이야!’ 라고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첫 아르바이트 봉급날, 한 달간의 노동의 대가로 두둑한 봉투를 받았을때? 처음 사랑이란 것을 깨닫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때?하기 싫은 일을 꿋꿋이 참아내며 다 해내었을때 느끼는 뿌듯함을 경험했을때?혹은 더 이상 김치가 싫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게 되었을때? 아니면 빨간 딱지가 붙은 비디오를 아무 거리낌 없이 비디오가게에서 빌릴때? 그렇다 어쩌면 정말 그때 우리들은 어른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견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을 것이다.그러나... 그러나.... 그 순간, ‘이제 어른이 되었어!’ 라고 속으로 희열을 외치던 그 순간, 우리들에게 소년, 소녀라는 타이틀은 사라지고, 대신 어른이라는 빡빡한 타이틀이 새겨지고 만다.그리고 그 타이틀에 걸맞는 옷을 갈아입고,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가 아닌 빡빡하고, 숨가뿐 세상에 던져진다. 그리고 다시는 네버랜드의 하늘을 날 수 없게 된다.이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그러나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영화 <피터팬>에서는 특별히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피터팬도 웬디도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 그러나 <피터팬>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슬픔이 몰려온다. 그건 아마 ‘이미’ 혹은 ‘곧’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나의 심정이 반영되어서 일지도 모른다. 난 그저 피터팬과 웬디가 뛰어놀던 네버랜드는 더 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몸을 떨며, 영화 보는 내내 부러운 눈길로 피터팬만을 바라볼 뿐이다. 꿈꾸는 피터팬다시 선배와의 술자리 얘기로 넘어가겠다.술자리 마지막, 변한 선배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고 술만 마시고 있던 나에게 그는 말한다.사표를 냈다고...내가 꿈꾸는 것을 하고 싶다고...다시 영화를 하고 싶다고...그는 아직 꿈꾸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다시 예전의 그 꿈꾸는 피터팬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그의 형체와 말투, 생각은 어른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피터팬이었다.우리는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아니 이미 어른이 되었다. 우린 피터팬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먹지 않는 약이 개발된다면 얘기는 틀려지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기 싫다고 피터팬인척 언제나 네버랜드 속에서 평생을 보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피터팬처럼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술집에 아무 제약 없이 들어가 소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어도, 눈이 큰 순정만화 주인공이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게 되었어도, 웬만한 일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어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게 되었어도 우리는...여전히 피터팬처럼 꿈꿀 수 있다. 글 l 우보연 cinew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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