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김제동의 똑똑똑](1) 소설가 이외수 -경향신문

신영미

ㆍ“연예인이건 작가건 시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별’을 보러 갔다. 밤길을 달려 강원도 화천땅으로 갔다. 가는 길에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하늘엔 별, 화천땅에는 이외수가 있다’라고. ‘함께 가자’, 순식간에 팔로어-댓글 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랬다. 젊은시절 젓가락을 던져 벽에 꽂고, 몇날 며칠 잠도 안자고 술을 마셨다는, 잘 씻지도 않았다는 기인. 방송 때문에 스치듯 뵌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마주앉아 보고 싶었다. 김태원, 김C, 윤도현 형이 ‘싸부’로 모신다고 자랑할 때 ‘나도 끼워줘’라고 칭얼댔다. 나에게 소설가 이외수는 마치 ‘담을 없앤 한옥’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그랬다. - 트위터에 선생님께 질문할 것을 올려놓으면, ‘꽃씨 옮기듯 옮기겠다’고 했더니 질문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꽃씨 옮기듯 옮긴다고? 어허, 시인일세. 내가 처음 트위터를 올렸을 때 순식간에 1만명이 들어왔어요. 트위터계의 신화지. 엊그제 미장원 갔다온 사진 찍어서 올리면서 농담으로 ‘김태원 CF를 뺏어오게 됐다’고 썼지. 태원이는 여기 와서 술도 많이 마셨어요. 아주 순수하더라고.” - 태원이 형도 술 끊었어요. 왜 끊었냐고 했더니 ‘술을 먹으면 숨을 못 쉬겠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술을 끊으셨나요. “계속 마시면 죽겠더라고. 거의 원없이 마셨어. 알코올 중독으로 13년간 고생을 했어요.” - 처음 뵌 게 7년 전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사전 MC로 장내 정리를 할 때였어요. 젊은 시절에 젓가락을 표창처럼 던져서, 건달들이 형님이라고 불렀다면서요. “옛날에, 아주 싼 술집이었는데, 짠 콩조림이 유일한 안주야. 20원이면 막걸리 두 사발을 줬어요. 담배가 피우고 싶은데 마침 젊은 친구 4명이 앉아 있었지. 한 개비로 끝났어야 했는데 네 개비째 빌리니 ‘저 새끼, 아작을 내’ 하더라고. 얼른 젓가락을 뽑아 ‘오늘 7일이지’ 하면서 달력에 던졌는데 정확하게 그 자리에 꽂혔어요. 3개를 더 던지고 ‘난 눈 하면 눈이야’라고 말하고 나왔지. 나중에 보니 그중 한 명이 춘천에서 청량리까지 장악한 건달이더라고. 나중에 친구가 됐어요. 건달들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데가 있어요.” - 트위터들이 요즘 젊은이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을 들어보라고 주문했어요. “책을 읽어야죠. 책을 안 읽으면 가슴이 삭막해져. 요즘 청소년들은 삭막하고 메말라 있어요.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시험, 취업, 결혼…. 다 공포예요. 그걸 잊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는 수밖에. ‘녹색성장’ 얘기 많이 하는데, 청소년과 젊은이가 ‘녹색’이오. 그들이 갈색이 돼버렸으니 늦지 않게 녹색으로 회복시켜 줘야지.” 나는 <환상의 짝꿍>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다. ‘사촌이 논 사면?’이라고 물으면 ‘보러 간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 싱싱함에 덧씌워 ‘배가 아프다’고 가르치는 사회다. 함께 산에 갔던 윤도현 형의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던 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푸름을 어른들이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나라에 맹모(孟母)가 너무 많아요. 다 강남으로 가요. 현 정부가 교육개혁 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개혁의지가 없어. 내가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작태들이 다시 벌어지고 있지. 어른들이 창의력, 잠재력을 하나 하나 제거시켜요. 그래서 결국 사회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거지.”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탤런트 정보석씨가 전화를 했다. 트위터를 보니 ‘제동이가 거기 간 거 같다’면서. 산골과 도시의 시공간을 초월한 ‘리얼타임’이 무섭고도 신기했다. ‘트위터의 선구자’로 불리는 선생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감성마을에는 아직도 은하수가 보인다./ 맑은 날,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떨어진다./ 몇 개 주워서 문하생들 목걸이 만들어 주고, 몇 개는 술 담가 놓고….’ 아날로그의 맨 앞쪽에 있던 이외수가 아니었던가. “트위터, 재미 있어요. 산길 걸어 가다가 개미를 밟았는데 개미 거동이 불편해 보여. 그럴 때 개미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제 네가 나를 밟을 차례야’라고 쓰지. 그런데 세상엔 의외로 행간을 못읽는 사람이 많아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자기와 상반된 의견은 무시하고…. 좌빨이니, 노빠라느니. 연예인이건 작가건 정부의 정책이나 시대에 대해서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상하게 집권세력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촛불, 집회, 인터넷 등의 단어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 저도 4개월 전에 ‘쌍용차를 잊지 맙시다’라고 글을 올렸다가 초토화됐죠. 제 팔자려니 하고 요즘은 좀 뜸합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오셨으면서, 또 끊임없이 사람들을 찾아 나서시는 것 같아요. “체질적으로 세속을 싫어해요. 그러나 권력, 금력 같은 것보다 끊임없이 사람이 그리워요. 가까운 소설가 김성동씨가 ‘절에 있으면 속이 그립고, 속에 있으면 절이 그립고’라고 했어요.” - 트위터로 토크쇼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트위터는 무한히 변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난 이미 트위터 문학교실을 개설했지. 6만7000명 중에서 4명 뽑았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써보려는 의욕이 넘치고, 암에 걸린 엄마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사람 등이지. 나쁜 놈은 좋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해요. 한글판 트위터를 만든 이찬진 대표한테 문학교실, 미술교실 이런 것을 할 수 있도록 부가기능을 개발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어. 김제동씨가 하차할 때도 트위터에 비판이 많았어요. 언론탄압의 시작이라고.” - 제가 4년 했으니까 많이 했어요. 잘했다고 피디연합회에서 상까지 주셨으니 기쁘죠. “문제는 KBS나 MBC 사태든, 이번에 SBS 스포츠중계 독점 문제든 언론에 대해서 긍정적 시각을 갖기 힘들다는 거죠. 세인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나는 어쨌든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얘기를 안 할 작정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얼마든지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정치적인 것과 예술가로서 일침을 가하는 것은 틀림없이 구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정당, 정파의 이익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분명 선이 그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비극과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의 되풀이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되풀이니까 백성이 참으면 안돼요. 그건 정치적 성향이 아니에요. 그런 것을 작가가 일깨워 준다고 기분 나빠하면 문제가 심각해요. 작가들에게 집회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라고 정부가 통보나 하고. 말이 안돼요.” 편하게 왔던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마침 사모님이 내가 상탄 것을 기념한다며 잔치국수를 끓여내 오셨다. 미모로 소문난 그분이시다. 이 선생님은 당신이 여복이 많다면서 은근히 사모님을 치켜세우신다. “내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유독 미녀 팔로어들이 많아요.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라면서…. 그래서 대답하죠. 이외수 글을 읽어서 예뻐진 거라고.” -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선생님도 외모를 보시는 것 같은데요. 저도 글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 팔로어들을 만나고 싶은데….(웃음) “두 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이 난다는 걸 잘 이해를 못해요.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 여자들이 다 예뻐보일지도 몰라. 나에게 우리 집사람은 늘 엄마 같아요. 내 머리를 빗겨줄 때도 모성을 느껴.” - 저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잘 모릅니다.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외로우면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지금 아빠라고 부를까, 아님 아버지라고 부를까 하고 말이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제가 포경수술을 못했거든요. 하하. 밤이 깊어갔다. 선생이 산중생활에서 깨우친 진리를 훔치고 싶었다. 그냥,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실력과 인성을 같이 갖춰야 한다고 얘기하죠. 가령 불의와 결탁했을 때 내 삶이 편해지고, 정의를 선택했을 때 내 삶이 불편해진다면 어느 편을 택하겠느냐? 젊은이들이 불의를 택할 수도 있다고 하면 나는 반문하거든요. 제일 큰 희망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봐요. 별게 아니야. 짐승처럼 살지 말라는 거지. 온고이지신, 이게 순리에 맞는 거지.” 그 새벽, 감성마을을 나서면서 산골과 도시의 아득한 거리를 생각했다. 또 텅 빈 내 자취방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난 그저 한 마리 짐승처럼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으므로. 에이, 짐승을 닮지 말라 했거늘.

Fri Apr 16 2010 06:4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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