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신동민

삼국지시리즈 9: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Sun Nov 01 2009 03:3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삼국지시리즈 9: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번에는 좀 멀리서 삼국지연의 이야기를 다루어보자. 다른 논의를 하다가 삼국지를 논해보자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 심심하지만 무시무시한 약 연식 1650년의 홉스의 어구 하나는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기원을 연다. 정치적 본성과 권력욕을 내재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때로는 살기 위해, 때로는 지배를 위해 타인과 싸울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사회는 언제나 무정부의 혼란 상태다. 이런 “아나키(anarchy)"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일거에 정리해줄 수 있는 강력한 괴물,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국에 사회계약론의 1번타자 홉스 주장의 귀결이다. 고전(classic) 국제정치학의 세계는 여기서 더 나간다. 신(god), 절대자 등 국가 상위의 초권위체가 없는 순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국가들은 매일매일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살기 위한 투쟁(struggle for survival),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세계에서는 이것이야 말로 국가의 본질이다. 무질서를 해결해보고자 1920년대 이상주의(idealism)의 본류, 당시 미 대통령 우드로 윌슨 등은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을 만들어 국제정치판 리바이어던을 실현, 아나키를 극복해보고자 하였으나 돌아온 결과는 약 15년후 세계 제2차 대전이라는 인간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참상뿐이었다. 중동문제.......그 모습은 그렇다면 오늘날 고전 국제정치학의 모습이 그나마 “보전(?)”되어 있는 곳은 어디일까. 비록 한반도 허리는 기백만의 병력이 대치하고, 수십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며, 상대방의 인구밀집지역에 수분만에 수만개의 포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준비된” 화력이 항시 대기한, 역사 최고의 중무장 지역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이 홉스식의 만인 투쟁의 국제정치 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제든지 고만고만한 애들이 모여있어 내가 남을 때릴 수 있고, 남이 나를 때릴 수 있는 상호의 긴장상태가 조성되어야만 아나키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이 중국을, 미국을, 일본을 때리기에는 국력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정부를 극복해고보자 하는 인간의 덧없는 콜로서스가 낳은 2차대전의 비극 홀로코스트(Holocaust)의 피해자, 이스라엘을 위시한 중동지역이 오늘날 무정부상태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지역에 성서에 의거해 유태인들이 새나라를 건국한 것에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 안의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 지역의 하마스(Hamas), 파타(Fatah)세력이 부대끼고 있는 지중해 동안은 그야말로 상호 명시적인 그리고 내재된 투쟁상태를 보이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간에는 평화협정은 체결되었으나 저멀리 1967년 중동전쟁에서부터 이스라엘-시리아-레바논간의 계속되고 있는 크고 작은 충돌, 이스라엘 안에서의 대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장벽건설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유혈사태는 홉스식 세계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항시적인 포위의식과 상대방이 나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공포의식 그리고 스스로를 2등국민으로 자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망감, 종교, 인종, 역사......모든 것이 복합되어 보이는 중동문제의 본질은 어쩌면 주변국가, 세력간 힘이 비등하고 살기위해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순수 정치 상태인, 아나키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동문제와 삼국지 그리고 우리 너무 많이 돌아왔다. 이제 삼국지 이야기를 할 차례다. 포함한 범인들은 왜 삼국지 주인공들은 그렇게 수십년을 싸울 수 밖에 없었냐고 묻는다. 동탁, 조조, 원소, 원술 유비, 유표, 손견 등 수많은 군웅들은, 그리고 삼국정립이후에는 조조, 유비, 손권은 서로 세력권을 나눠 할거했으면 되었지 왜 서로를 죽이고 죽여야만 했냐는 것이다. 이는 당시 후한(後漢)이라는 리바이어던과 같던 천자권력의 상위권위체가 몰락했기 때문이겠지만,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는 정치책략, 전쟁과정, 권모술수를 담은 연의가 무슨 고전으로서의 교육적 의미를 지니고 있냐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그렇다. 어쩌면 강대국에 막혀, 분단에 막혀 국제정치학 본류의 정치적 상상력이 제한되어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삼국지에서의 끊임없는 투쟁과정은 어쩌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경제성장이 제1의 가치로 자리잡은 오늘날, 평화를 추구하고 인간다움을 전파하는 내용의 책이 우리나라 상황에는 고전부류로 더 알맞은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정치환경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앉은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별다른 인사말 없이 하나하나 주변국 정세와 그들의 관계를 세시간 동안 브리핑해버리는 나라를 안고 있는 중동. 항시적인 포위의식 속에서 내일의 번영이 아닌 오늘의 생존문제를 우선 고민하는 지역. 살기 위해 남을 쓰러뜨리는 좋은 방법을 이야기로 전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이 그야말로 고전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중동지역의 각박한 국제정치환경이 그 수준과 범위가 같을 수 없겠지만, 겉보이는 안정 속에 거대한 현상변경 요소를 안고 있는 동북아에 나타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가능한 현상변경 회오리의 주역이 될 운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반도 이남지역의 환경상, 와인과 샴페인, 행사와 말잔치 넘어 중동지역의 국제정치환경과 그리고 삼국지연의를 상기해볼 필요성은 바로 여기서 싹트는 것일 수도 있다. 그네들이 나라를 건설해 오늘날 중동분쟁의 싹을 틔운 그 시점, 이 땅에서는 주변국가와 바다건너 미국이 참여한 수백만 죽고 다쳐나간 열전이 한창이었다는 것도, 또다른 역사 진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졸업생 신신동민 stooco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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