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신동민

삼국지연의 시리즈 7 : 천하삼분지계, 유길준, 그리고......?

Sun Aug 30 2009 05:28: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삼국지연의 시리즈7 : 천하삼분지계, 유길준, 그리고......? 금번에는 다소 자조적인 내용으로 삼국지연의 시리즈 그일곱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회한이 들거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거나......그래도 삼국지연의는 계속되니, 얼마 전 일간지 칼럼란을 통해 대학 스승을 만날 수 있었는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069724), 교수의 글은 마치 요즈음 모습을 거울로 비쳐주는 듯 했다. 하는 일이 마치 하루벌어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것과 같다는 초년 외교관의 푸념으로 시작하는 “61세 대한민국 외교의 미래를 설계하자”라는 다소 거시적인 제목의 글의 요지는, 결국 의전이나 행사 위주의 단기 외교가 아닌,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치밀하게 실천해나가는, 중장기적 외교에이제 대한민국도 역량을 투입할 때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같은 노력을 부여하더라도, 어디에 힘을 쓰느냐, 또 같은 인물을 쓰더라도, 그를 어떤 역할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집단의, 조직의, 국가의 발전을 위해선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제시하고, 비전을 설정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심심하지만, 바쁜 일상과 조직의 관성에 묻히기 쉬운 진리는 삼국지연의에서도 드러나니, 그것을 바로 유비가 제갈공명을 만나 그의 천하삼분지계를 듣는 대목이다. 천하삼분지계, 유비의 눈을 띠우다 중원에서 조조에게 연전연패, 형주의 유표(劉表)에 의탁해 겨우 신야라는 작은 고을에 자리 잡은 유비. 유비는 천하의 변화가 일어나 움직일 정치적 공간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일상을 소일한다. 한때 그래도 황건적을 토벌하고, 천자를 알현해 황숙 소리까지 들었던 그가, 다시금 천하에 나오기전 누상촌에서 했던, 돗자리 치는 일을 하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머 같지도 않은 채모(蔡謨)와 같은 유표 수하 인물의 시기를 사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니 유비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했던지, 시골길의 한 목동을 보고는 “실로 내 신세가 너만 못하구나”라고 탄식을 내쉬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유비 인생의 서광은 그의 자조석인 탄식에서 비추기 시작했더니, 그 목동이 수경선생 사마휘를 소개했고, 사마휘는 천하의 기재 제갈공명을 만나볼 것을 천거했던 것이다. 삼고초려와 같은 다소 소설적인 내용이 가미된 이 드라마를 지나, 유비는 드디어 건안 12년(207년) 깡촌 중의 깡촌 융중에 누워있던 용, 와룡(臥龍) 제갈량을 만나 그의전략관, 천하삼분지계를 듣게 된다. 중원을 이미 차지한 조조와 강동의 손권을 고려할 때, 유비가 자립하려면 익주와 형주를 차지하여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요지의 천하삼분책은, 오늘날 국제정치학으로 치면 세력균형(balance of power)론에 입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빨리 형주라는 조조와 손권의 힘이 닿지 못하는 완충지역을 손에 넣고, 주인이 변변치 못한 서천을 빨리 점령해, 조조와 손권과 균세(均勢)를 이룬 후, 천하에 변고가 생기길 기다리고 준비하자는 논의였다. 그리고 제갈공명은 중국전도를 가져와 유비에게 브리핑, 마치 사장에게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듯 시각적 묘사로 그의 계획 발표를 마무리한다. 사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국제정치학 현실주의의 기초 중 기초개념인 세력균형을 담아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비에게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30년 세월을 싸우면 싸우고, 도망가면 도망가고, 땅을 얻으면 얻고 잃으면 잃는 등, 단기적인 대응만을 하며 굴러왔는데, 드디어 자신에게도 전략개념에 기반한 중기적 비전이 제시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제 드디어 홀로 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용장을제대로 쓸 수 있는, 그리고 손건이나 미축과 같은 백면서생을 넘어서는, 천하를 경영하고 세상을 다스릴 만한, 자신만의 군사(軍師)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중립론, 서유견문.......유길준 천하삼분지계의 정치학적 기본개념을 반추하니, 1880년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일본 근대화의 시조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밑에서 수학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구미유학생 유길준이 떠오른다. 이하에서는 유길준의 친일 행각 등의 문제가 그의 삶과 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논외로 하자. 천하삼분지계와 유길준의 연관성에 찾는 것에만 그 목적을 두어보자는 것이다. 위정척사파, 동도서기론파 등이 논박을 벌이고 있던 혼란한 구한말, 시무가 유길준은 1884년 조선 조정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나 때마침 발생한 갑신정변 때문에 청나라 원세개가 실질적으로 한양의 권력을 잡자 남촌골 취운정에 유폐된다. 그 유폐가, 그 정치적 사형선고가 7년이라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으니, 막 서른이 넘은, 구미와 일본에서 신문물을 접하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본 유길준의 마음은 불탈만도 했다. 유길준의 수많은 저작 중 중립론(1885), 서유견문(1889)가 집필된 것도 이 때다. 돌아돌아 온 삼국지연의의 천하삼분지계와 맞닿는 내용은 바로 이 두 저서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은 구한말 조선의 생존전략으로 중립론에서 “불가리아를 중립으로 삼은 조약은 유럽 대국들이 러시아를 막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오, 벨기에를 중립으로 삼은 조약은 유럽 대국들이 서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책이다. 이로써 논하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되는 것은 실로 러시아를 막는 큰 계기이며, 또한 아시아 대국들이 서로를 지키는 정략이 된다”고 언급하였으며, 서유견문에서는 그 유명한 양절체제론을 언급하며, 조선 스스로 강해지는 자강의 현실적 제약 속에서 청과는 속국이 아닌 증공국과 수공국의 관계를 유지하여 평화를 유지하고, 기타 일본 등 서구 열강 국가들과는 균세의 원리와 오늘날 국제법의 근간을 이루는 만국공법을 바탕으로 관계 설정을 할 것을 제시한다. 청나라가 이미 한성 남산골에 병력을 주둔하며 감국정치를 펼치고 있어 자강의 수단이 제약된 현실 하, 유길준은 조선의 생존방법으로 오늘날 권력정치의 개념을 그 전략 구성에 산입한, 강대국간 균세와 강대국의 권력을 통한 조선의 생존방식 국제정치전략을 고민했던 것이다. 물론 유길준의 그 방법론이 옳았던 것인지, 시대적으로 적절했던 것인지는 판단유보이자, 개인의 영역에 맞길 문제다. 다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1880년대 유길준은 삼국지연의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당시의 학문수준에서 중장기적 한국 외교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고, 그것이 당시 구미열강 등의 형세에 대한 비교적 최신의 정보에 입각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비록 조금은 기초적 수준의 관념이라고 하더라도,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초년 외교관들과 같은 ‘하루빌어 먹고 사는’ 수준의 논의는 훨씬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천하삼분지계, 그것은? 유길준의 중장기적 계획은 급변하는 당시 동북아 정세와, 조선의 자구적 능력미비로 결국 빛을 보지 못한다. 반면 삼국지연의의 유비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받들어, 부침은 있었지만 형주를 접수하고 익주를 손에 넣어, 향후 삼국정립의 기틀을 닦는다. 비록 유비 사후 근 30여년만에 촉한이 멸망하기는 했지만, 형주와 익주를 기반으로 유비는 한중왕에 오르고, 이후에 한 제후국에 불과하긴 했지만 황제에까지 즉위한다. 제갈량을 만나기전 30년간 열심히 싸웠으나 발 붙일 땅한 쪽 얻지 못했던 그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그의 인생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방향을 설정하고 있느냐, 비전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유현덕처럼 성공하건, 유길준처럼 현실의 영역에서 좌초하건, 우리 각자가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 자체에 급급한 것이 아닌, 스스로 인생의 천하삼분지계를 고민해봐야하는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20대는 짧고, 어제 무심코 흘러간 기회는 지나고 보면 오늘은 아쉬우며 내일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차이를 낳았던 그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의미 없이 헛힘만 쓰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반추하고, 반추하고, 또 반추하는 이유다. 졸업생l신동민 10bir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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