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노현지

부자유의 자유

Tue Jun 30 2009 11:5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부자유의 자유 가끔 내 앞에펼쳐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길 앞에서공포에 질릴 때가 있습니다.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닌 그야말로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들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감이 안 잡히는 거지요. 그럴 때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내밀지 못하고 그저우두커니 고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누가 대신 선택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요즈음은 가까스로 제 앞에 있던 엄청나게많은 길 중에서 하나를 골라 걷고 있는 중인데,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 절로콧노래가 나온답니다. 다른 가능성들을 전부 버리고 단 하나만을 선택한 셈인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재미있는 구절이 있어 발췌해 봅니다. 생각할 만한 거리가 될 듯 합니다. (...) 아가시즈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다. 백 스물아홉 명의 남학생들이 하얀 셔츠에 밤색 넥타이 차림으로 대리석 계단 위에 서서 햇볕을 받으며 조바심을 내고 있고 그 사이에 교장은 학생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간다. 교정 잔디밭에는 부모와 친척들이 건성으로 들으면서 의자에 앉아 땅을 내려다보고 꾸벅꾸벅 존다. 졸업생 하나가 나와 단조로운 목소리로 고별사를 읽는다. 그는 메달을 받을 때엔 엷게 미소를 짓지만 식이 끝나고 나면 풀숲에 내던져버린다. 아무도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이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암타우스 거리나 아르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거나 반호프 광장 근처로 와서 점심을 먹고 벤치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낮잠을 잔다. 정장은 다음에 입을 수 있도록 잘 개어 보관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들 가운데 일부는 베른이나 취리히에 있는 대학교로 가고, 일부는 아버지의 일을 배우고,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 독일이나 프랑스로 간다. 이런 일들이 모두 앞뒤로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체스 게임에서 외통수로 몰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말을 옮기듯이, 무관심하게, 기계적으로 일어난다. 이 세계는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곳이다. 여기 이 세계에서 시간은, 사건이 일어날 여지를 남겨두는 유동적인 액체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시간은 뼈처럼 단단한 구조물을 이루고 있어서, 앞으로 뒤로 끝없이 뻗어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화석으로 만들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가, 모든 생각이, 모든 바람이, 새들의 날갯짓 하나하나가 영영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 국립극장 무대에서는 발레리나가 무대를 돌며 움직이다가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공중에 잠시 떠 있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 도약, 율동, 도약. 다리를 꼬았다가 폈다가, 팔을 뻗어 커다란 원을 그린다. 이제 회전을 준비한다. 오른발을 뒤로 옮겨 한 발로 바닥을 밀어 돌면서 회전이 빨라지도록 팔을 안으로 모아들인다. 정확하다. 시계 같다. 발레리나는 춤을 추면서 아까 뛰어오를 때에 공중에 좀 더 떠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녀의 동작은 그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녀의 몸과 마룻바닥, 몸과 공간과의 상호작용은 이미 몇 억 분의 1센티미터까지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떠 있을 여지가 없다. 떠 있는다는 것에는 약간 불확실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불확실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대 위에서 시계처럼 필연적으로 움직이면서, 뜻밖의 도약은 감히 생각도 하지 않고, 정해진 자리를 정확하게 내디디며, 계획에 없는 동작은 꿈도 꾸지 않는다. 미래가 고정된 세계에서 인생은 끝없이 방이 늘어서 있는 복도와 같다. 매 순간 방 하나에 불이 들어오고 다음 방은 아직 어둡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한 방에서 다음 방으로 걸어가 불이 켜져 있는 방을, 현재의 순간을 들여다보고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어떤 방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우리는 우리 삶의 구경꾼이다. 코허 거리에 있는 약국에서 일하는 어떤 약사가 오후 휴식시간에 거리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그는 마르크트 거리의 어느 시계방 앞에 잠시 멈췄다가, 그 옆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숲과 강 쪽으로 계속 걸어간다. 친구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그래도 물건을 산다. 새로 산 외투를 입고 기분 좋게 걸어가면서 빚은 내년에 같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갚지 않거나. 그래도 누가 그를 나쁘다고 할 것인가?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옳음도 그름도 있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데 행동이 모두 미리 정해져 있다면 선택의 자유는 없다.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방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약사는 부룽가샬데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숲의 축축한 공기 속을 걸으면서 이 모든 생각을 한다. 자신이 내린 결론이 하도 만족스러워서 거의 미소까지 지을 정도다. 그는 축축한 공기를 들이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앨런 라이트맨, <아인슈타인의 꿈>, 진선출판사, 1993 민초 7기 노현지 ci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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