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영화보기

우보연

제발 날 좀 봐

Sun Jan 02 2005 13:28: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제발 날 좀 봐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났다.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고향친구와 나누는 구수한 사투리의 정겨움을 알 것이다. 더군다나 타지에서 고향친구를 만나 나누는 사투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몇 안 되는 고향친구 중에서 유독 그 친구와 만나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져 약간은 거리감을 두고 있던 터였다.그러나 오랜만에 전화온 친구의술 한 잔 하자는 말에 마음속 거리감 같은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우리는 만나서 밥을 먹고, 오랜만에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노란 머리의 외국인들 밖에 보이지 않는 타지에서 검정 머리를 한 동양인을 만나고, 그 사람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누는 반가운 한국어처럼 우리들은 그동안 타지에서의 서러움을 한 번에 벗어버리려는 듯 고향의 사투리로 그간 서로의 행적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은 정말 유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답답함이 느껴졌다. 뭔가 술술 잘 뽑아 내다가도 헝클어져버리는 실타래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도 중간 중간 꼬이고 빗나가고 토막 나 버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시끄러운 대화가 계속되어도늘 우리의 대화는 독백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늘 받는 인상이었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친구 : 니, 고향 내려갔다 왔나?나 : 응, 저번 주에 갔다 왔다.니는 방학인데 뭐하노?친구 : 내, 방학하고 이제 고향 내려갈라고.나 : 언제 내려갈라고?친구 : 고향 내려가서 운전면허증이나 딸라고.나 : ........... 운전면허증 아직 못땄나?친구 : 운전면허증 딸라카믄 돈 많이 든다 카던데.나 : ........... 한 7,8십만원은 들껀데... 내가 싸게 하는데 아는데 소개해줄까?친구 : .....그러던지.... 니는 고향 안내려가나? 나하고 같이 내려가자.나 : ....................살가운 고향사투리로 나누는 우리의 대화는 넓게 뻗어가지 못하는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와 혼자만의 독백으로 남게 된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Look at me며칠 전 혼자 영화관에 갔다. 가끔 혼자 거대한 스크린 앞에 앉아 영화보기를 즐겨 했지만 그날따라 영화관을 나오면서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적막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얼마 전 만난 고향친구가 생각났다. 영화 속 아버지와 딸의 대화도 그 친구와 나의 대화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딸 : 난 꽝이야.아버지 : 누구나 그래.딸 : 난 최악이야.아버지 : 그런가보지.영화 ‘룩앳미’ (Look at me, 원제 Comme une Image)에 나오는 아버지와 딸 간의 대화 내용이다. 유명한 작가인 아버지 에티엔은 뚱뚱한 딸 롤리타와의 대화에서 늘 이런 식이다. 깊게 넓게 들어가질 못하고 뱅뱅 맴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에티엔과 대화하지 못하고, 결국은 독백만 할뿐이다.롤리타는 아버지 에티엔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배경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탓한다. 롤리타 뒤에 무심히 서있는 아버지와 삐죽삐죽 튀어나온 자신의 살에 신경 쓰지말고,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자신의 숨소리를 느끼며 자신의 말에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제발 날 좀 봐’ 라고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실상 롤리타 자신도 상대방의 코트에 달린 단추 구멍을 바라보며 대화 할뿐이다. 외로운 동물인간은 외로운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구가 더욱 온난화 되어갈 수록 인간은 더욱 외로워 질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말을 걸지만, 그 말은 때때로 잘못된 번역처럼 전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를 놓친채 허공에 흩어지거나, 난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 마치 외국어로 내 말을 전달할 때의 먹먹한 느낌처럼, 자꾸만 핵심을 뱅뱅 맴돌거나, 적확한 표현의 언어를 찾지 못한채 우물거리거나, 혹은 / 결국은 전혀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을 늘어놓게 된다. 이렇게 대화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혼자말만 늘어놓아 결국은 자기 독백만 하게 된다. 그렇다면 유명한 철학자가 이야기 했듯이 결국은 혼자라는 것인가? 소통 할 수는 없단 말인가?(이렇게 써놓으니 내가 무슨 철학자라도 되는 듯하다. 이런 고민들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늘 하는 것인데 말이다.)아마도 다시 시도해봐야 할 것 같다.무엇을?대화를...소통부재도 결국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얼마전의 술자리로 다시 거리가 생긴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새해인데 복 많이 받으라고, 고향내려가기 전에 술 한잔 더하자고....아마 친구도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글 l 우보연 cinew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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