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맛보기

염지연

나비효과, 그리고 광활한 우주

Fri Dec 17 2004 16:2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나비효과, 그리고 광활한 우주 나비효과.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이 ‘나비효과’를 제목으로 하는 영화가 작년 말 개봉했었다. 유명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 대형 블록버스터도 아니기 때문에 흥행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만큼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 안에 살짝 숨어있는 흥미진진한 우주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우주라고 하면 IT나 NT, BT처럼 ST(Space Technology)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자리 관측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천문학을 조금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복잡한 물리 공식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위 모두와 거리가 있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고대 철학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니 무리는 아니리라 본다. 오히려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영화를 보다보면, 온통 이해 안가는 것들뿐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어떻게 주인공이 한 모든 선택의 경우가 다 실재할 수가 있는가?’이다. 즉, 영화에서는 에반이 켈리를 만난 후의 미래와 만나지 않은 후의 미래를 모두 겪게 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것이다. 에반이 켈리를 만나서 아는 사이가 됐다면 이제 그 일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되는 건데 말이다. 여기에 ‘평행우주론(The parallel universe theory)’이라는 최근 주목받은 이론이 있어 소개한다. 선배가 미팅하러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선택의 순간이다. 여기서 평행우주론에 따르면 우리가 결정할 때마다 우주는 둘로 갈라진다. 이 경우, 한 우주는 미팅에 나가는 미래를 담고 있고, 또 다른 한 우주는 미팅을 나가지 않는 미래를 담고 있다. 두 세계는 똑같이 실재적이며, 그리고 둘 다 인간 이라는 관찰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관찰자는 오로지 자기가 존재하는 세계만을 지각할 뿐이다. 우주가 갈라질 때, 인간의 의식도 갈라지고, 그가 속하는 쪽에 존재하는 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의식이 갈라지는 걸 느껴본 적 없다고..? 어디, 세상에 우리가 느끼는 것만 존재하던가?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 주위의 수많은 분자와 원자,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작은 입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 우주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 우주는 매 순간 갈라지고 있고, 갈라진 우주는 또다시 갈라지고, 갈라지고, 갈라져나간다. 매 초마다 무한한 우주가 복제된다. 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내가 입고 있는 이 옷도, 내 얼굴도,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복제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복제되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상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노자나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던 <대립하는 것은 하나다>라는 말 정도가 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고나 할까?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전자’라는 것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는 것은 양자역학에서는 기본적인 사실이다.(양자역학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체계로, '양자'라는 것은 전자와 같이 작은 입자를 뜻하며, 양자의 기본 성질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띤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양자에 속하는 전자 역시 입자이면서 파동인 것이다.) 이 평행우주론도 바로 양자역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년 초에 NASA에서 우주 전파망원경을 통해 우주 곳곳에서 나오는 특수 전자기파를 탐색하였는데, 거기서 나온 결과가 우주는 무한하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미국의 한 과학자는 "우주가 무한하다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한계 너머 어딘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똑같은 다른 우주, 심지어 나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다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나는 물론이고,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까지도 아주 쉽게 일어날 수도 있다. 복권에 백 번 연속 당첨될 수도 있고, 10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천둥번개가 칠 수도 있다. 무한한 경우의 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행우주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무한한 우주에는 내가 미팅을 나간 미래가 담긴 우주와 나가지 않은 미래가 담긴 우주가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매 순간 분화되는 우주 모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아마도 에반은 평행하게 돌아가고 있는 몇 개의 우주를 왔다 갔다 한 듯하다. 이 쯤 되면, ‘과학이 철학인가, 철학이 과학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과학이라는 학문이 늘 정량적인 것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철저한 논리적 사고에 따라 진행되며, 측정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해서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건 아니다. 과학이란 것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오늘의 글은 성공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이 평행우주론은 안타깝게도 증명할 길이 없다. 양자역학에 따라서,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를 관찰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도 할 수 없겠으나, 해결되었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과학’으로만 세상의 문제를 ‘정확하게’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의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오늘날에도 완치할 수 있는 병은 손에 꼽힌다고 하듯이, 과학은 세상의 일을 해결하는데 극히 미숙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혹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아주 작은 것은 아닐까? 고려대컴퓨터학과3학년 l 염지연 mksal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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