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신동민

삼국지연의 시리즈 5: 백제성에서의 종말, 그리고 오늘의 쓸쓸함

Sun Apr 26 2009 06:4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삼국지연의 시리즈 5: 백제성에서의 종말, 그리고 오늘의 쓸쓸함 봄은 또 한번 화려하게 우리네 마음의 꽃불을 지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또한번 지고 말았다. 5월, 그 신록의 계절에 4월 형형색색의 꽃들을 추억하는 것은 계절의 여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만, 화려했던 노오란 개나리, 빠알간 진달래가, 그리고 연분홍빛 벚꽃잎이 아직도 마음 속에 흩날리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일 듯 싶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영원히 세상을 불태울 것 같던 꽃빛이 근 한달만에 푸르른 신록에 그 자리를 내어주듯이, 한 시대 모든 것을 대변할듯한 정치권력도 시기가 지나면 떨어진 꽃잎처럼 처량하기 그지없다. 삼국지연의도 마찬가지다.연의의 주인공 중, 주인공, 한평생 중국대륙을 뜨겁게 달궜던 유비도 말년, 백제(白帝)성에서 차가운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백제성에서의 종말 장무 2년(222) 정월, 오나라에 패해 죽은 아우 관우의 원혼을 풀고자 유비는 동정(東征)을 떠난다. 그러나 원정 준비 도중 둘째아우 장비마저 살해 당하는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결국 유비는 이릉(夷陵) 대전에서 오나라의 떠오르는 스타 육손에게 대패, 현 사천(四川)성 중경(重京)시에 위치한 백제성으로 퇴각한다. 패배의 아픔과 동생들을 잃은 슬픔에 병을 얻은 유비는 결국 장무 3년(223), 63세를 일기로 눈을 감는다. 죽기 전 유비는 아끼는 신하, 승상 제갈량을 불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며 화려했던 삼국지 일세대의 종언을 고한다. “짐은 경과 더불어 역적 조조를 쳐없애고 함께 한실을 떠받치려 했으나, 불행히도 도중에서 헤어지게 되었소. 짐은 승상을 얻어 다행히도 제업을 이룰 수 있었오. 그러하되 아는 게 얕고 모자라 승상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같이 패하였구료. 번거롭게 승상께 태자 선(禪)을 당부하는 바이니, 모든 일을 승상께서 옳게 가르치고 이끌어 주시오.” 비록 초년에는 누상촌에서 돗자리나 짰던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한때는 한 황실로부터 좌장군 칭호를 받았으며, 후에는 촉한의 황제까지 올랐던 유비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동생들을 잃고, 전쟁에서 대패했으며, 아직은 어린, 그리고 연의 끝까지 미숙한 모습만 보였던 어린 황제 유선만을 남겨둔 채 승상이지만 부하인, 제갈량에게 후사를 어렵게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고검을 휘두르며 황건적을 토벌했던, 여포, 원술 원소, 조조 등 당대의 인물들과 좌웅을 겨뤘던 모습은커녕, 의지할 사람 몇 남지 않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백제성의 쓸쓸함이...... 정치권력 뒷모습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슬픔은, 삼국지연의 백제성의 모습이나 오늘의 그것이나 크게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 그리고 큰 의미에서의 신진정치세력의 사실상, 그리고 상징적 수장이었던 정치인이 지난 4월 30일 재임시 발생한 금전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에 출두했다. 그리고 그 정치인은 출두 몇일 전 본인의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프고도 아픈 글을 올려버렸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2000년 초반 대학에 입학했으며, 그리고 지금 20대 중반, 그리고 후반에 접어들은 세대에게 이 정치인은 그들이 투표에 참여했던 선거에서 선출된 첫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넓게는 삼김(三金) 정치 이후 한국정치를 대변할 것 같았던 신진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정당도 일단 수십년간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지역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그래도 비교적 민주주의와 참여에 가까웠다고 평가받는 자신의 이미지를 더 이상 대변할 수 없다고 자백해버렸다. 유비의 종말도 쓸쓸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겠지만, 이 정치인의 퇴임 후 모습, 그리고 풍지박산 나버린 그가 이끌던 정당 그리고 그 대통령과 함께 좋든 싫든 20대 초중반을 보냈던 우리의 모습도 너무나 쓸쓸하기 그지없다. 지난 봄 화려하게 피다 순식간에 져버린 윤중로의 꽃들의 뒷모습처럼, 정치권력도 그리고 그가 대변한다고 주장했던 시대정신의 끝은 그렇게도 쓸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역사는 계속되니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점은, 유비가 죽고나서도 삼국지연의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제갈량의 북벌도, 사마의의 대두도, 그리고 강유, 등애 등 또 다른 명장의 등장도 모두 유비 사후에 일어난 일이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친구는 심심하게 한마디 한다. “그래도 역사는 계속된다.” 그 정치인은 함께 수렁에 빠지지 말자며 자신을 버리라고 했다. 백제성에서 죽은 것은 삼국지연의 전체가 아니니까. 유비의 죽음은 그가 대변했던 삼국지 전반기 세대만의 상징적 종말인지도, 동시에 새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시발인지도 모르니까. 버림이, 파멸이 그리고 죽음이 또 다른 창조를 의미하듯이 말이다. . 졸업생l신동민 stooco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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