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노현지

봄비 내리는 저녁에

Fri Apr 24 2009 10:4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봄비 내리는 저녁에 안녕하세요. 이번 호부터 ‘시간이 머무는 곳’의 연재를 맡게 된 7기 노현지라고 합니다. 그동안은 재학생 인터뷰를 담당했어요. 상미 언니를 대신해서 이 지면을 채우게 되었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왕 시작하게 된 거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머릿속만 어지럽고 갈피를 잡기가 어렵네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이 기사가 실릴 들꽃 웹진은 5월호. 신학기도 반 이상 지나가고 중간고사가 막 끝났을 무렵이네요. 다들 학교생활은 잘들 하시겠지요? 휴학하신 분들도 나름대로 잘 생활해 나가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민초 장학생 여러분들은 다들 킹왕짱이니까요>_<) 교정에 만발했던 벚꽃도 전부 떨어지고 이젠 완연한 봄입니다. 오늘은 봄비가 오네요. 비가 오는 만큼 센치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대학생이 되어서의 네 번째 봄입니다. 말인즉슨 학생으로서 맞는 마지막 봄이라는 뜻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마음이 착잡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우울했던 것은 작년이나 재작년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오히려 미련도 없고 그냥 담담한 기분입니다. 경험적으로, 학년이 거듭될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곱절이 되니까 금년은 KTX정도의 속도로 지나가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올해와 내년, 내후년이 그리 분리되어 생각되지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차, 한 살 더 먹어있겠죠. 부디 내년의 제가 미취업 상태에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시간은 갈수록 빨리 지나갑니다. 혹시 읽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왜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가>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서는 나이와 체감 시간 속도가 비례하는 이유로 기억력의 쇠퇴를 제시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지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죠.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꼬맹이일 때에 비해서 하루하루가 금방이거든요. 어릴 때는 한 시간도 무한히 길었는데 요새는 한 시간쯤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게 된 것 같아요.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 어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고, 지난 주일의 일은 더더욱 새까맣고, 일년 전의 일은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남들에 비해서 좀 심한 편인지는 몰라도요. 어제는 오늘과 같고 오늘은 내일과 같을 겁니다. ‘오늘’은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 중에 가장 젊은 시간이라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차,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데 하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 때 뿐, 언제 그랬냐는 듯 허송세월입니다. 주변에 대학을 매-우 오래 다니고 있는 동기가 있어요. 올해로 서른 살인데 저와 같은 학년입니다. 그분은 저를 부러워하셔요. 한 살만 더 어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나도 한살만 어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더니, 그 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시더군요. 제가 그 분 입장이었어도 그랬겠지요? 저는 그분에 비하면 한참 어리니까요. 하지만 욕심은 한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나에게 일년만 더 시간이 있으면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작년의 제가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분명히 작년의 저는 일년치의 삶을 살았습니다. 문제는 일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지만 일년치의 경험을 쌓지는 못했다는 것이죠. 일상을 영위하느라, 게으름을 피우느라 써버린 시간은 셀 수도 없는데 비해,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기억은 두뇌 저 편으로 가라앉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너무 아까워서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지만 오늘도 저는 스물세살의 삶 중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내고 있네요. 실컷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우울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낼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하면 삶은 순식간에 아름다워집니다. 오늘은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행복한 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생 잊지 못할 악몽같은 날도 아니니까요. 하루가 그저 그렇게 지나갈 정도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지 않으니까요. 따뜻한 밥을 먹었고, 공부도 했고, 친구들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하루였지만 세상에는 이 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불평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죄송하게도 할 말이 없네요. 각자 생각에 달린 것이 아니겠어요? 하루하루 늙어감을 비탄하든지, 아니면 무사히 늙어감을 감사하든지 자기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편이지만 대체로 후자에 속하는 편이네요. 이쪽의 단점은, 마음은 편하지만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것 같아요. 가끔은 최선을 다해서 삶을 완전연소한다는 태도도 필요한데 말이지요^^ 이럭저럭해서 오늘도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저는 지금 학교인데 집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만원지하철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하네요. 어차피 내일 또 학교에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더 집에 가기가 싫어지구요. ㅋㅋ 하지만 오늘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볼까 합니다. 그럼 여기서 이만 줄일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호에서 만나요. 노현지 ci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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