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해외통신

농민공 샤오왕의 일일

8기 고아영

농민공 샤오왕의 일일 '우아아아하하하아암~~' 모기 한 마리는 거뜬히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입을 쩍 벌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도, 이내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커텐을 연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좁은 후통(북경 특유의 미로처럼 길고 좁게 얽혀 있는 골목길이예요'-')에는 아직도 어둠이 짙게 가라앉아 있지만 7시까지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집 앞 시장 골목에는 이른 새벽부터 지엔빙(북경식 토스트라고 할까요..), 또우쟝(콩국물), 빠오즈(피가 매우 두꺼워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른 왕만두), 훈뚠(물만두국) 등 아침 식사를 만들어 파는 사람과 먹는 사람들로 박신박신하다. 나도 요우탸오(중국식으로 튀긴 꽈배기) 2개와 또우쟝 1컵을 사서 먹으며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듣자하니, 커피와 베이글이 뉴요커 스타일이라던데, 베이징어라면 역시 요우탸오와 또우쟝이지! 이렇게 입에 무언가를 하나씩 물고 하얗게 입김을 뿜으면서, 우물우물 씹으면서, 각자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씩씩하게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북경의 정겨운 아침 풍경이다. 그나저나, 북경에 처음 왔을 때부터 느낀 것인데, 북경 사람들은 참으로 아침형 인간이다. 북방사람과 남방사람의 차이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경 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인 듯 하다. 심지어 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모두 7시까지 모여야 한단다. 오늘이 바로 북경사범대학교 입학식. 그래서인지 평소와 달리 이 시간에 유난히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북경의 아침이 일찍 시작하는 만큼, 밤은 일찍 문을 닫는다. 밤 9시, 10시만 되어도 슈퍼는 물론 술집들도 거의 문을 닫고, 밖에 돌아다니는 행인도 뜸하다. 이 근처에서 밤 문화를 즐기며 올빼미족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대부분 유학생인 것이다. 학교로 걸어가면서 요우탸오와 또우쟝으로 속은 든든하게 채웠고, 드디어 나의 일터에 도착했다. 내 이름은 샤오왕(小王). 올해 22살이다. 나는 여기 북경사범대학교에 새로운 기숙사를 짓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농민공(農民工)이다. 우리 가족은 중국 남서부 귀주성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동굴 마을에서 살고 있고, 나만 홀홀단신 북경으로 올라와서 3년째 혼자서 지내고 있다. 이렇게 지방 농촌에서 올라온 도시 근로자를, 사람들은 농민공이라고 부른다. 나 같은 농민공들이 가족의 품과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이유는 물론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기 위해서다. 부모님과 다섯 동생들이 지내고 있는 우리 동굴 마을에는 내가 떠나올 때만 해도 19가구 8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또 얼마나 줄어들었는 지 모르지만 말이다. 수백 년 전 조상 때부터 우리 동굴 마을 사람들은 동굴 안에 대나무 집을 짓고 살아왔다. 동굴 안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며, 산비탈을 일궈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재배하면 식량 걱정도 없고, 생활 용수로 사용할 식수도 충분하니, 더없이 살기 좋고 정다운 마을이었다. 이랬던 우리 마을에 위기가 찾아든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정부가 동굴 밖에 집을 지어 우리를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동굴 밖에 허술하게 지어진 집에서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마을이 바깥 세상에 알려지고, 동굴에 전기도 들어오고 TV도 들어왔다. 이 즈음 부터였다. 젊은이들은 하나 둘 씩 도시로 떠나가기 시작한 것은. 나도 그 물살에 휩쓸려 동굴 마을을 떠나 북경으로 올라왔다. 허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사장에서 힘을 쓰는 일 뿐이고 임금은 북경의 높은 물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을 뿐이고 나는 다달이 방세를 내기에도 빠듯할 뿐이고 3년동안 일한 결과 현재 통장 잔고는 44위안밖에 안 될 뿐이고 지금 와서 다시 예전의 동굴 마을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그저 한숨만 쉴 뿐인거다. 아무리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지만, 지금 이 상태에선 내일의 태양이 언제 뜰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 철 없이 북경에 막 올라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 처음 도시 구경을 한답시고 넓디넓은 왕푸징 거리도 걸어보고 산봉우리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백화점에도 들어가 보았지. 번쩍번쩍한 북경의 빌딩들을 보며,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일하면, 저만큼은 아닐지라도 가족들과 함께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나 공사중인 북경. 가난한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쭉 뻗은 도로는 자꾸자꾸 늘어나고 초고층 건물은 더 높이높이 올라가고 그렇게 도시는 진화를 거듭하고 끝은 모른다는 듯이 화려해진다. 지금도? 지금도! 벽돌을 한 장 한 장 올리면서 상념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두근두근, 빙고. 점심메뉴는 역시나 만토우(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밀가루 빵이예요..하지만 씹다보면 맛있다는'-'ㅎㅎ)다. 북경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을 정말 많이 먹는 것 같다. 같은 나라인데도 남쪽과 식문화가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이야. 처음에는 소화도 잘 안 되고 뱃속이 더부룩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리고 밀가루 반죽을 어떻게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씹을 수록 맛이 나는 것이, 꽤 먹을 만 하다. 시린 겨울에도 안전모도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일해야하니, 비록 찬은 없지만 든든하게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거지 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오늘 일을 마치고 일당 50위안을 받아들고 학교를 나왔다. 배춧잎처럼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육교 위에서는 쭈구려 앉은 상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악세사리, 가방, DVD 등을 팔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황금색으로 장식한 새빨간 소 인형. 올해가 소의 해라서, 본명년을 맞은 사람들을 겨냥해 거리 곳곳에서 이렇게 소 인형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상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소 띠인 막내 동생에게 이 인형 하나 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아이의 앞날에는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에잇. 오늘따라 괜시리 머릿속이 복잡하니, 아무래도 마라탕(중독성 있는 매운 맛의 꼬치와 비슷한 사천식 주전부리~ )에 칭다오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 네. '이건 뭥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사실, 북경 유학 일기는 이미 지난 달에 마무리를 지었는데, 갑작스레 이번 호에 또 한 번 해외통신을 써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대체 무얼 써야 할 지 고민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팩션을 쓰는 것이었지요. 중국에서 제 이름이 샤오잉이었기 때문에 주인공 이름은 제 이름과 비슷하게 샤오왕으로 지었구요^^ㅋ 북경에서 지낼 때 학교 안에서 매일 스쳐 지나가던 공사장의 인부들을 떠올리며 써 보았어요. 재미있게 쓰려고 했는데, 뒤로 갈 수록 제가 지치는 바람에 슬프게도 딱딱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역시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다른 이의 삶에 공감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봐요>_<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l 8기 고아영 sorbet82@naver.com

Tue Mar 03 2009 11:4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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