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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조이아. 'INDIA'

고경환

나의 사랑 조이아. 'INDIA' [3]존재앓이, 그리고 새로운 시작 [1]덜컹대는 3층 침대칸. 따스한 햇살이 동공을 자극한다. 사람들이 짐을 꾸리는 것을 보니 역이 가까워 온 듯하다. 맘씨 좋은 아저씨에게 말을 던진다. “Bhubaneswar?" 끄덕. 어젯밤 12시에 캘거타의 Howrah역을 출발했던 그 기차가 거의 오차 없이 도착한 것이다. 12시에 출발한다 해도 미덥지 못해 10시부터 역에서 죽치면서 마음대로 변하는 플랫폼에 긴장했던 어젯밤이었는데. 인도 서남부, 오릿샤(Orissa)지방의 주도. 어김없는 릭샤꾼들의 호객. 능숙하게 제지하며 뿌리(Puri)god 버스를 탔고, 그렇게 하여 나는 이번 여행의 분수령인 뿌리로의 입성에 성공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2003.1.25.의 오후였다. [2]뿌리. 내게 예정된 10여일의 독립 일정 중, 5일은 뿌리를 가기 위한 것이었고, 3박 4일은 뿌리와 함께할 것이리라. 벵골만의 강렬한 태양과, 비단을 밟는 듯한 촉감의 백사장. 바로 이곳이었다. 큰 맘 먹고 전망이 수려한 비치호텔에 투숙을 했다. 이제껏 거쳐 왔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 벵골만의 손짓에, 웃통을 벗고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간다. 인도에 와서 고생했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폭염에서 한파까지, 길바닥에서 잠을 청한 일, 오지 않는 기차, 배앓이, 만나지 못한 친구 등등. 신은 내게 뿌리에 가서 하소연하라고 나를 이리로 보내셨나 보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뿌리 바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Rs50에 빌린 파라솔에 누워 오후 4시를 기다린다. 그때쯤이면 썰물 때라고 하였거든. 출국 전에 준비해 둔 편지를 꺼낸다. ‘벵골만에 부치는 편지’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다. 영화 속에서 병 속에 넣은 편지가 바다에 띄워지면, 세계를 돌아 무언가가 이루어진다는 류의 얘기들. 나는 믿었다. 여행이 힘겨울 때마다 벵골만에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꺼내 읽었던 그 편지. 그리고 그 날이 온 것이다. [3]병에 넣어 던진 편지는 30분째 약을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썰물 때라지만, 해풍 때문에 병은 20m를 채우지 못하고 되돌아오곤 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낯선 동양 청년의 30분째 퍼포먼스로 비춰졌음이리라. 바다에 던진 병과 어김없이 되돌아옴의 반복. 벵골만을 찾은 의의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계속된 충격에 병은 일그러져있었고, 물이 스며들어 편지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주둥아리에서 물먹은 편지를 꺼내, 물기를 꼭 짜버렸고, 똘똘 뭉친 종이 그 자체를 마지막으로 힘껏 던진다. 해풍에 이미 부서진 편지는 공중 분해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마지막 퍼포먼스인가’하는 눈길로 박수를, 나는 멋쩍음에 미소로, 떠내려가는 몇 조각의 파편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4]비록 의도한 대로 편지를 띄우지는 못했지만, 뿌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8월의 입대를 앞두고 꾸며나가야 할 나의 비전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가각,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벅차오르는 감동. 김명인 님의 『잠들지 못하는 희망』의 구절들은 뿌리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나의 일정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토닥거림이 된다. “여행은 존재를 익숙한 조건 속에서 낯선 조건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일종의 존재앓이라고 할 수 있다. 경이와 두려움, 호기심과 불안, 자유와 고독, 동경과 노스탤지어, 그리고 낯선 세계로의 열림과 익숙한 내면으로의 닫힘이 모치 조울증처럼 번갈아 찾아드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는 동안 여행지는 환경과의 유기적 관련에서 떨어져 나온 개별자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한 좀 더 궁극적인 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 된다.” [5]오챠에서만 배앓이를 했을 뿐 건강한 여정이었거늘, 뿌리를 떠나는 날 나는 기어이 몸살이 나고야 말았다. 뭄바이의 폭염, 바라나시의 한파, 다시 캘거타와 뿌리의 무더위, 밤 9시에 인도의 수도 뉴델리로 떠나는 뿌리발 기차까지 BuBu[편지의식을 통해 사귄 친구]가 동행해 주었다. 그와의 채 3일도 안 되는 추억은, 오랜 기억으로 이어지리라. 침대칸에 누워있으려니 자꾸 콧물이 난다. 게다가 1월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했던 태양에 그을려 따끔거리는 피부. 약 45시간이 걸리는 기차라서, 다음날도 꼼짝없이 기차에 묶여있다. 과연 이 나라는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 북상하는 기차의 정거장마다 두터워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본다. 다시 추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뉴델리로 가면 헤어졌던 팀원들과의 재회가 있을 것이었다. 참아왔던 어리광을 한꺼번에 뱉어놓기로 다짐하고, 아직은 이를 꽉 깨물고 나는 독립 일정의 마지막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6]뉴델리의 오전. 나는 Decent Hotel을 찾아가야만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었다. 2시간을 헤맨 끝에, 뉴델리 역에서 불과 100m떨어진 곳에 숨어있는 그 호텔을 발견하고 주르르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형! 누나!” “살아왔구나. 짜식 기특하기도 하지. 새카맣게 타서 못 알아볼 뻔했다.” 열흘 간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어린 나에게 환영의 말들이 쏟아졌다. 울컥 눈물이 난다. 오랜만에 맛보는 라면으로 몸을 추스른 뒤, 다시 뉴델리 북부의 다람살라로 향한다.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보인다. 진눈깨비와 함께 트레킹을 하는 이 기분. 다람살라의 밤하늘. 별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새벽 4시. 이번엔 사막이다. 라자스탄 지방의 푸쉬카르. 낙타 사파리를 하며 친구들과 나는 인도의 마지막 행선지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것이다. [7]2월 9일 밤. 뉴델리 공항에서 손을 흔들면서 나는 30여 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인도 중서부로부터 중북부, 그리고 남부에서 다시 북단하여 십자형으로 약 20,000Km가 넘는 여정. ‘존재앓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면 나는 그 말로 대신하련다. 스스로 집어던진 자아가 조금은 성숙되었는가. 내가 지쳐 사랑할 곳, 그러나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며 자문했던 지난 시간들. 허나 아직도 찾을 수 없다. 나는 다시 수첩을 펴서 돌출하는 젊음의 새로운 장으로 넘긴다. 이것은 끊임없는 여행의 시작임을 나는 이제야 깨우쳤기에 2기 졸업생고경환 l kotoro@gmail.com /3기 졸업생 황병욱

Sat Feb 28 2009 15:41: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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