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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환

[나의 조이아, India][2]나는 어디에 있는가

Fri Jan 02 2009 05:0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나의 조이아, India][2]나는 어디에 있는가 [1]바라나시(Varanasi)행 철제기차 속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감격할 무렵이면 우리는 이미 바라나시역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기차는 20분에 한 번꼴로 멈추곤 했고, 급기야는 허허벌판에서 2시간을 쉬기도 하였다.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승무원에게 왜 그러냐고 했더니, 차장이 살던 고향을 지나칠 수 없어서 그가 고향마을에 잠시 갔다 오면 출발한다고 전해주었다. 허허. 며칠째 머리를 감지 못해 자유분방하게 질주하는 머리가닥들에서 풍기는 쉰내와 엄습하는 허기가 나를 체념케 한다. 사실, 인도에 와서 적응이 된 것은 유유히 흐르는 듯한 시간과 2~3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닌 오차한계 속에 포함시키는 느긋한 시간약속에 대한 태도였으니까. [2]결국, 예정도착시각을 14시간이나 넘겨,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뭄바이(Mumbai)에서 짜증이 날 정도의 더위에 힘겨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라나시에서 배낭의 모든 옷가지들을 꺼내 꼭꼭 껴입어도 덜덜 떠는 우리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만의 특이한 교통수단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법. 바라나시에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달라붙은 호객꾼들은 ‘싸이클 릭샤’꾼들이었다. 3륜자전거에 안장을 개조하여 영업용으로 만들고, 운전자가 힘껏 페달을 밟아 목적지까지 이동시켜 주는 수단이다. 말라빠진 인도인이 그 추위에 신발도 없이 힘줄이 울긋풀긋 서도록 페달을 밟는 걸 보니, 고작 한국의 500~600원도 안 되는 돈에 기를 쓰고 흥정했던 내가 미안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앞에 펼쳐진 갠지스의 잔잔한 물결. ‘다샤 슈와메르가트’라는 곳에 도착하여, 우리는 갠지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시타guesthouse라는 곳에 여장을 풀었다. [3]바라나시의 밤을 그대는 아는가. 유유히 보트를 타고, 푸자를 띄우며 소원을 빌었고,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과 만월에 취해 화장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성스러운 곳에서 죽음을 맞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 화장터의 시신들은 차례로 화염 속에 휩싸였다. 배가 고픈 개들은 타다 남은 다리뼈를 물고 광기에 서린 눈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시타르의 몽환적인 선율에 모닥불을 쬐며 나누는 환담. 이따금 터지는 웃음소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겨울의 안개낀 갠지스의 밤은 하늘과 강의 경계를 없애버려 그야말로 공중에 떠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희미한 담배연기만이 상대적 공간감각을 느끼게 해 주는, 게다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를 비추는 만월은 내가 강 위에 떠있는지, 하늘에 떠 있는지 오묘한 신비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4]몽환적 분위기의 3박을 보낸 바라나시도 안녕. 나를 제외한 팀원들 전원은 다음 행선지로 네팔의 히말라야를 택했다. 난 히말라야도 좋지만, 벵골만에 꼭 가야만 했다. 같이 간 벗이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뿌리(Puri)바닷가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 팀의 최연소에 가까운 나의 최초 ‘독립’을 팀원들은 격려해 주었고, 나는 당당히 혼자 배낭과 꾸러미를 들고 캘거타행 기차를 기다렸다. 하지만 캘거타행 기차를 타는 것부터 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Ticket을 볼 줄도 몰랐고, 기차도 16시간째 오지 않았고, Platform도 5분에 한 번씩 바뀌고 있었다. 극도의 짜증감과 분노에 나는 Tourist Office를 점령했고, 거기다가 내 배낭을 체인으로 연결해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캘거타까지 알아서 보내라고! 추위와 허기짐에 탈진해 죽어가던 찰나, 예정시간을 18시간 지난 기차가 왔다. 도대체 이럴 거면 Time Table은 왜 만드는 걸까. 침대칸을 탔지만 아직은 낮이라 6명이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땅콩을 씹고 있었다. 꿀꿀하고 외로운 기분을 털어보려 먼저 말을 건다. “나마스떼~ I know hindi, toratora~(나 인도말 조금 알아요)” 굉장히 즐거워하는 그들. [5]기차를 기다리던 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그들에게 짜이 한 잔씩을 사주었다. 오챠(Orchra)에서 배운 힌두어가 나와 사람들을 끈끈이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 준다. 한국을 떠난 지 2주 만에 처음 갖는 혼자만의 시간. 짜이 한 잔에 맘을 가다듬고,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비상하는 청춘’. 밤이 되어 3단 침대의 중간에 누워 여전히 달리는 창밖을 본다. 괜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누가 말했던가. 고독할 때, 친절과 우정은 고독을 더욱 조장한다고. 한 줌의 고독과 그리움은 물밀 듯 밀려오는 수면에의 욕구와 함께 사그라져 간다. 밤이 지나갔다. 바라나시에서부터 꼭꼭 껴입었던 옷들이 무거워지는 듯한 이 기분. [6]India라는 나라는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 여긴 한여름이다. 캘거타(Calcutta). 대영 제국의 인도 식민수도였던 아픔이 서려 있는 곳. 시끄러운 도회지의 밤엔, 신호등도 없는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그 사이에서 맨발로 인력거를 끄는 노인들이 있다. 내 배낭에 내가 휘청거리는, 그리고 그렇게 더운 밤에 옷을 껴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호객을 하러 뛰어오는 그들. 그들의 발을 보니 성한 곳이 없다. 맨발로 인력거를 끌고 다니면서, 굳은살이 박혀있고, 발톱은 닳아서 없어졌다. 피곤에 잠시 누워 자는 노인들의 발바닥엔 작은 못이 박혔는지 피가 흐르다가 말았는데, 그 발로 또 달렸는지 새카만 때와 함께 진물이 흐른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끼리의 공존은 사람은 얼마나 낯설고 당황하게 하는지. [7]번화가의 뒷골목에 숙소를 정하고, 오랜만에 더운 물로 샤워를 한다. 40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영화배우 김갑수를 빼어박은 듯한 룸보이가 맥주 한 잔을 권한다. 맘 같아서는 인력거 노인들에게 바나나 라시(과일 요구르트의 일종)라도 사주고 싶은데, 내 갈증을 우선하는 이기적 본능은 어쩔 수가 없다. 서울로 치면 신촌이나 명동의 한 구석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푼 것인데, 며칠 묶기에는 고달퍼도, 볼거리는 많은 곳이었다.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의 ‘바자르’에서 느끼는 생동감과는 또 다른 즐거움. 나는 과감히 ‘세계를 간다 - 인도’책을 접고, 직접 지도를 그려나갔다. 펀자비에 썬글라스에 슬리퍼를 신고, 내가 걸어 다닌 곳을 기록하고,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나는 캘거타를 누비는 사진작가였으며, 지도제작자였으며, 살아있는 자유를 느끼는 프리랜서였다. 나.는.어.디.에.있.는.가. [8]캘거타의 여러 기념물들은 그냥 둘러만 보았지, 굳이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한다든가 그러지는 않았다. 인력거꾼의 발바닥이 아른거려서 그런 걸 잡아타지도 않았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Missionary of Charity 건물을 직접 물어물어 찾아간다. 한국을 떠나기 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 47시간짜리 기차를 타고 달려온 곳.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야 할 친구는 없고, 혹시 묶을만한 guesthouse를 다 찾아다녀 보아도 만나지 못한다. 목을 축여줄 짜이 한 잔에 나는 빅토리아 공원 잔디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고, 허탈감을 어느 정도 달래고, 뿌리(Puri)로의 새로운 진전을 구상한다. 이번 여행의 비장한 각오는 뿌리(Puri)를 위한 것이었기에. 벵골만에서 해야 할 일들에 미소 지으며, 내 맘은 벌써 뿌리(Puri)바닷가로 저만치 앞서가 있음을 느낀다. 기사 l 황병욱 기자l 고경환 koto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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