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큰 세계 속에서의 작은 삶 -경향신문

sym1713@한멜

신영미

[김우창 칼럼]큰 세계 속에서의 작은 삶 - 경향신문 금융 위기의 태풍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여파가 이르러 여기저기에 무너지는 것들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 경우에 우선 금융기관이나 큰 기업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이 이 태풍이 미치지 않는 곳에 사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 없어도 금융과 경제가 이루는 구조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도정일 교수의 용어로는 우리는 모두 시장전체주의의 지배 속에 산다. 금융위기의 태풍에 좀더 가까이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금융기구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직원이 2만5000명이었다니, 그 대부분은 직장을 잃었거나 잃게 될 것이다. 금융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의 실업자는 내내 늘어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바짝 그 수가 증가하여, 9월 한 달에만 늘어난 수가 16만명이라고 한다.영국의 근착 주간 가디언지에는 이번 일과 관계하여 영국의 젊은 소설가 나오미 올더만의 글이 실려 있다. 직장을 잃은 금융업계 종사자들에게 그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글이다. 실직의 충격은, 장기적으로는, 금융 파산의 직격탄이 아니라 그 파급효과에 희생되는 중간계층과 노동계층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터이나, 올더만의 글은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전체주의 또는 돈의 전체주의의-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흥미롭고 아이로니컬한 심리 드라마를 엿보게 한다. 큰 것에 줄을 대야 편한 시대금융회사에 들어가는 사람이 꾸는 것은 큰돈의 꿈이다. 영국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금융 투기시장에서 10년이나 15년을 일하고 그 열매를 모아 일찌감치 퇴직한 다음 돈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에서 뜻을 펴보겠다는 것이다. 거금을 모아 또는 일확천금하여 노동의 삶으로부터 해방되자는 것이다. 리먼 브라더스가 2년 전에 1년분의 보너스로 지급한 것만도 1인당 30만달러였다. 그러나 돈 모으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대학 시절에 생각한 것과는 달리 올라가는 생활수준은 생활비 부담을 부풀린다. 빡빡한 근무시간 때문에 회사 가까운 비싼 지역에 살며 비싼 집세를 내야 한다. 그리하여 입사 후 5년에 입사 시보다 더 많은 빚을 지게 되는 젊은이들도 있다. 올더만이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또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해진 한계가 없는 근무 시간, 변덕스러운 금융시장의 오르내림을 쉬지 않고 지켜보아야 하는 정신의 피로 등으로 자신의 삶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다. 올더만은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의 금융가에서 근무하다가 뉴욕의 맨해튼에 파견되어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9·11 사건을 경험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금융가의 직업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영국으로 돌아가 대학의 문예창작 과정에 들어가고 얼마 후에는 소설가로서 성공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올더만은 금융 위기로 실직하게 된 사람들에게도 이번의 실직이 새로운 길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삶에 충실한 게 좋은 삶올더만도 그랬겠지만, 영국의 젊은이들이 금융계에 들어가는 것은 일확천금의 꿈에 못지않게 그 직업이 무엇인가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직업의 길로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매진하게 마련이다. 좋다고 하는 쪽을 향하여 휩쓸려 가는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은 안정성 있는 다양한 직장을 보장하지 못하는 세상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를 돌아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의 큰 흐름을 따름으로써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푹 빠지고 휩쓸리고 하는 것을 권하는 우리 문화의 특성도 여기에 관계될 것이다. 올더만은 10대 소녀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9·11 사건이 그녀를 돈의 꿈으로부터 깨어나 어린 시절의 꿈으로 돌아가게 했다.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보람을 느끼는 일에 정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소설가가 되기는 쉬운 일인가?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화포럼에서 일본의 중견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는, 작가는 이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캐릭터’로 변했다는 말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사람이라기보다 세상의 눈치 속에서 자신을 성형(成形)해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진실된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독자층보다 독서 시장의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글을 써야 한다. 시마다의 말에는 오늘의 작품에서는 판타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있었다. 대중적 독서 시장에 넓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는 관찰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작가가 시장과 돈에 지나치게 노출된다는 것을 말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익명의 독자들이 작가에게 가해오는 압력일 것이다. 이러한 압력에 거의 전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연예인이지만, 일반적으로 오늘의 인간은 어느 시대에서보다도 거대한 힘들의 영향에 노출되어 산다. 물론 큰 것에 줄을 대어 자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 마음의 움직임은 예로부터 인간의 한 특정이다. 다만 그것이 더 거대화하고 더 익명화된 힘이 된 것이다.올더만의 글이 실려 있는 가디언지에는 큰 세계에의 귀속을 원한, 다른 젊은이의 더 처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비트는 파키스탄 펀자브 출신의 스물 한 살의 빵 굽는 기술자이다. 그는 친구를 따라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탈레반의 훈련을 받는다. 이교도들로부터 이슬람을 수호하려는 성전(聖戰)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라는 것을 심어주는 교육을 받고, 아비트는 폭탄자살 테러리스트가 되어 폭탄차를 미군기지를 향해 몰고 간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군의 검문을 받고 체포되어 순교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만다.이름 없는 빵 굽는 사람으로서의 삶보다는 순교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택하는-적어도 국외자의 눈에는 부풀려진 광신에 희생되는-아비트의 이야기에서,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가 말한 개인적인 것에 관계된 믿음과 소망들이다. 폭탄을 실은 트럭을 몰고 갈 때에 그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알라는 죽는 순간에도 순교자에게 고통이 없도록 살펴 주신다. 순교자는 천국에 간다. 그것은 순교자의 가족에게도 베풀어지는 은혜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일들이었다. 되풀이 하건대, 사람은 자신의 삶이 큰 것에 의하여 정당화되고 의미 있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큰 것에로의 탈출이 절실해지는 것은 자신의 작은 삶이 괴로운 것이 되고, 그것을 지배하는 큰 것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삶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지 않을 때이다. 이때 탈출과 도약을 약속하는 것이 광신이고 이데올로기이고 돈이고 판타지이다. 세계에 열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인지할 만한 세계 속에서 진정한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작은 삶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좋은 삶일 것이다. 오늘의 문제의 하나는 넓어져 가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의 삶과 그것을 의미있게 하는 작은 삶의 사회적 단위를 방위하느냐 하는 것이다.<고려대 명예교수>

Sun Oct 12 2008 12:31: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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