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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말만 하면 쓴소리라고 하니...그래도 비판은 지식인 임무” - 경향신문

신영미

美 프린스턴大 연구활동 떠나는 정운찬 前 서울대총장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아닐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문에 ‘정운찬 장관이 촛불시위 현장에 가다’ 등의 기사가 나는가 하면 모 정당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미국수입 쇠고기 5적’에 선정되는 등 난데없는 뭇매를 맞았다. 기자들까지 현직 장관보다 그의 이름이 귀에 익숙할 만큼 그는 지난 몇년간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서울대 총장 시절엔 서울대 폐지론까지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원들에게 대학자율화와 3불정책 반대 등을 고수해 주목받았고, 황우석 박사 사건 때는 황 박사 지지자들의 협박도 이겨냈다. 또 2007년 4월 출마 포기선언을 하기 전까지 그는 유력한 대통령 예비후보였다. 특기가 ‘물망에 오르는 것’이고 취미가 ‘고사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여러 정권에서 총리, 인수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교육부총리, 선대위원장, 야당 대표, 비례대표 1번 등에 거명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 실시한 한 조사에서도 ‘차기 대권주자 20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대통령 예비후보로 밤낮없이 기자들이 따라다니고, 30평이 넘는 넓은 사무실에 전용승용차와 비서팀들의 보좌를 받던 화려한 총장 시절과 달리 6.8평의 좁은 연구실에서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평교수로 돌아온 정운찬 전 총장의 표정은 오히려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이달부터 모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러 떠나는 정운찬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30년 전인 1978년, 서른 한 살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을 땐 학생으로 오해를 받았을 만큼 풋풋했던 신참교수는 이젠 머리가 희끗한 원로 교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눈빛만은 청년처럼 반짝였다. 프로야구 해설을 맡을 만큼 해박한 야구지식과 애정도 각별한 정운찬 교수. 그는 9회말이 될 때까지 예측할 수 없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야구가 인생과 닮아 야구를 좋아한단다. |박민규기자 건설적 비판은 지식인의 임무다-프린스턴대학에는 왜 가십니까.“올해가 안식년이지만 1학기때는 그동안 바빠서 못했던 외부 강의나 제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사회과학협의회의 일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는 프린스턴대학의 국제문제연구소에서 ‘금융위기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오는 22일엔 ‘불확실성과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주제로 학생이나 교수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특강도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인사들도 참여할 예정이라더군요. 요즘 화두가 ‘지속가능한 성장’이어서 그 분야의 공부도 하려고 합니다.”-최근엔 이름이 비슷한 정운천 전 장관 때문에 오해도 받았지만 그동안 달리 오해를 받아 억울한 점은 없으십니까.“이름이 잘못 나오거나 생년월일이 잘못 알려진 것 등 ‘착오’는 많죠. 그거야 실수로 웃어 넘길 수 있는데 제 정체성이 오해받을 때가 제일 답답합니다. 전 항상 학자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올바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해왔고 제 교육관이나 삶의 철학에도 일관성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한국은행, 전경련 측에서도 한국경제에 대해 언급한 논객 중 가장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답니다. 전 항상 같은 주장을 하는데도 당시 시류나 정부의 색깔에 따라 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더군요. YS때는 좌파취급을 받았고 노무현 정부때는 극보수로 찍혔죠. 황우석 교수 사건 때도 그렇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책임지는 총장으로서 황 교수의 논문에서 왜곡·과장한 점이 증명되었기에 서울대 교수로서 교육윤리에 어긋나니 규정상 사퇴를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CIA가 셰튼 박사와 제게 100만달러를 주면서 황 교수를 그만두게 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나돌아 한동안 곤혹스러웠습니다.”-또 3불정책·서울대 폐지론 등으로 은근히 물러나기를 바라며 정부로부터 각종 압력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사표를 던질 생각은 안하셨나요.“서울대 총장이란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총장임기를 꼭 지키겠다고 했던 총장 취임 때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전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키는 성격입니다. 저를 아끼시는 분들이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총장 그만두고 편히 살라’고도 했지만 그건 약속을 깨는 일이기도 하고 어른답지 못한 처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 교수의 경우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제가 힘들다고 그만두면 그 모든 짐을 차기 총장이 안아야 하고 새 총장도 뽑아야 하는데 그런 부담을 지우기 싫었어요.”-일부에선 ‘정운찬 총장을 키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란 평가를 할 만큼 참여정부에 각을 세웠는데요. 3불정책이나 대학자율론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요.“대통령에게 항거하거나 제 개인적 주장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의 총장으로서, 또 나라를 걱정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한 것인데 언론의 관심이 컸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육성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정부는 평등을 강조했지만 획일적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과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겁니다. 고교평준화가 되었지만 이미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무한경쟁에 들어갔는데 평등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무엇보다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맡기고 정부는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우리 세대의 경우 중·고·대학교 과정마다 실력을 평가받고 재도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대학 입시 하나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게 오히려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평등만 강조하다보니 진짜 평·등, 즉 아파트 평수와 성적 등수만 따지는 세상 아닙니까.” -언젠가부터 강의나 학회 등에서 말씀하시면 ‘정부에 일침’ ‘쓴소리’ 등으로 표현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겐 덕담을 주로 하시면서 정부나 재벌들에게 쓴소리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전 항상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그걸 알리려고 할 뿐인데 언젠가부터 말만 하면 ‘쓴소리’라고 해서 옳은 말을 하기가 꺼려질 정도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지성인이나 지식인이 건설적 비판을 너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3·1운동의 제34인으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가 중학생인 제게 ‘한국인들은 너무 건설적 비판을 하지 않는다, 옳은 일은 소신을 갖고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고 가르치셔서 교육받은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고교때도 한·일회담에 반대했고 대학생 때도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각종 데모에 참여했으며 80년 봄에도 교수 서명에 동참했고 86년엔 개헌 서명을 주도했죠. 나이 들어 사사건건 말이 많다고 욕먹을까봐 자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식인이라면 정부나 재벌이 잘한 일에 만세불러 줄 필요는 없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거나 안되는 일은 지적을 해주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합니다.”-뭔가 개선되고 더 발전되어야 쓴소리도 효과가 있고 보람이 있을텐데요. 아니면 그저 잔소리꾼이란 비난만 받지 않을까요.“건설적 비판은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겁니다. 86년 개헌 서명의 경우에도 개헌의 시동을 걸었고, 금산분리원칙이나 재벌들의 태도변화 역시 제 비판 덕분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개선된 점이 많습니다. 또 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는 절대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란 말은 못하나, 현재론 정치 생각 없다총장퇴임후의 AS가 더 바쁘다 -얼마전 만난 한 서울대 교수는 ‘정치적 이슈가 너무 부각되어 총장으로서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판단하기에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뭡니까.“자랑스럽다기보다 제일 논란이 컸고 아직도 오해받고 있는 것이 ‘지역균형 선발제’일 겁니다. 전국의 고교생들이 고루 서울대학교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지방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 건데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당시 MBC 기자였던 박영선 의원이 찾아왔기에 이런 구상이 있다고 말한 걸 방송에 내보내서 파문이 컸죠. 덕분에 비난도 받았지만 일찍 추진할 수 있어 2004년부터 시행했는데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지역균형 선발제’는 대학 다닐 때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저희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동기 50명 중 17명이 경기고 출신이고 경북고, 서울고 등이 대부분이더군요. 대학 와서도 고교 친구들만 만나니 얼마나 시야가 좁아지겠어요. 강원도나 제주도에서 온 학생 등 다양한 지역과 출신성분의 친구들과 대화하면 간접경험을 통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죠. 미국에선 이미 지역, 인종, 빈부 균형을 고려해 학생들을 선발해오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부자에 엘리트 출신인 정운찬이 형평성을 고려해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다양성’이 목적이에요. 이 제도 시행후 서울대학에 진학한 고교가 700개에서 1000개고로 확대되었습니다. 또 지방에서 고교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대치동, 개포동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고향을 지키며 공부해 경제적 효과도 부차적으로 생겼고 지방 유지들이 지방 특목고에 보내는 대신 일반고에 보내 이 제도를 활용하는 바람도 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성적도 서울대생 평균학점인 2.95보다 높은 3.05랍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결과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면 좋은 성과를 낸다는 형평성에도 부합되니 결과가 만족스럽습니다.”-총장 시절에 서울대 발전기금 등 후원금을 많이 모금하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후원금을 주신 분들과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제가 마신 폭탄주 한 잔 값이 10억원이란 기사도 나왔었죠. 건물 등 시설, 특별예산이 아니라 현금으로 저금해두고 오래오래 쓸 수 있는 돈만 재임 중 1600억원 정도 모았습니다. 대기업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서울대학교를 위해 참 많이 애써주셨죠.”-말이 서울대 발전기금 요청이지 쉽게 말하면 ‘돈 내놓으라’는 건데 어떤 주장을 펼치며 설득하셨나요.“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되지만 돈이 있어야 더 많은 인재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 회사가 잘 되려면 훌륭한 인재가 필요할텐데 그 인재를 키우려면 서울대학교에 무엇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면 들어주시더군요. 그런데 세상엔 공짜가 없어요. 총장시절에 후원금에 도움주신 분들에게 AS(애프터서비스)를 하느라 과로사할 지경입니다. CJ에서 인터내셔널센터를 지어줬는데 당시 손경식 회장의 도움이 커서 그분 아드님 주례도 섰고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포럼에 사회를 봐달라고 해서 제주도까지 갔어요. 아직도 1주일에 2, 3번은 강의나 주례, 행사 참여 등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피곤하긴 하지만 아쉬울 때 손벌려놓고 이제 와서 모르는 척 할 수 없잖습니까. 사람들은 사정도 모르고 ‘총장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바쁘냐’고 하더군요.”-흔히 경기고 3대 천재라고도 하고, 김종인 박사 등은 한때 ‘노벨경제학상을 딸 가능성이 있을 만큼 훌륭한 학자’라고 평가했는데 총장이며 다른 업무에 바빠 학자로서 연구에만 매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진 않습니까.“전 천재 아니에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느라 정작 제 공부는 하루 2시간 이상 한 적이 없는데 성적도 유지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으니 그렇게 보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노벨경제학상은 제가 학자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학위를 따고 컬럼비아대학 교수를 지내고 난 후 서른 한살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서 과분한 기대를 하신 것 같습니다. 학자로서 연구를 하는 대신 사회에 참여하거나 총장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니까요. 다만 한국경제에 관한 연구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주도적 경제학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 그리고 다른 나라에 한국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게 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경제학이란 사회와 과학이 접목되어야 돋보이는 학문이어서 지난 30년 동안 사회와 과학 사이에서 왔다갔다만 한 것 같아 속으로 부끄럽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은 특히 경제현상을 기술하는 것보다는 ‘과학적 이론’에 더 비중을 두고 과학적인 측면으로 분석하고 이론을 정립해야 인정을 해주는데 변화가 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한국 경제를 다루면서 과학적 이론을 접목해 논문을 발표하기는 힘듭니다. 후배들과 더 심도깊은 연구를 하고 이론을 발전시켜 우리 경제를 화두로 한 논문을 미국의 주도적 학회지에 발표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보다 교수가 더 보람 있다-얼마전 케이블TV에 출연해서 인생을 맛으로 비유한다면 가장 단맛은 미국 유학 중 부인에게 500여통의 연애편지를 쓸 때였고 가장 쓴맛은 대통령 불출마 선언 후라고 말씀하셨던데요.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황우석 박사 사건 때보다 정치가 괴롭고 상처를 받으셨나 봅니다.“황 교수 사건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해결되는 일이라 별로 고통스럽진 않았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고 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기회주의자, 우유부단한 선비형이라 정치판에 안어울린다, 비단길 깔아주면 꽃가마 타고 가려고만 한다는 등의 얘기까지 쏟아졌고요. 황당한 유언비어는 또 얼마나 많던지요. 한 지인이 ‘감춰준 애가 있다던데 딸이오, 아들이오?’라고 묻기에 ‘글쎄요, 저도 모르니 아마 중성인가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이 오르내리는 것은 참겠는데 제 가족에 관련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거론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더군요. 출마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 불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확실한 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는데 제가 정치할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은 또 매우 실망을 해서 그 후유증이 참 컸습니다.”-항상 ‘정치에는 관심없다’고 했지만 강연회 등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니 ‘정치를 한다’고 보여졌죠. 또 “정치를 ‘절대로’ 안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등 특유의 화법이 오해를 하게 만들었는데요.“제 스승인 조순 선생님이 인간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절대로’란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런 표현을 한 겁니다. 물론 정치적 꿈이 전혀 없진 않았습니다. 제삿날이나 명절 외엔 제대로 된 쌀밥도 먹어본 적이 없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제가 서울대 총장이 되기까지 주변이나 사회에 너무 신세를 많이 져서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삽니다. 학자로서 연구를 하는 것만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으로 나라에 기여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정치도 고려해봤습니다. 지도자가 너무 거칠게 말을 하고, 수시로 정책이 바뀌는 정부가 아니라 품격있는 정부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제가 예언서 정감록의 ‘정도령’이니 꼭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란 분들에다 각종 정책안들을 만들어 오는 정치지망생들도 많았어요. 언제 시간나면 책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뒷이야기가 많습니다.”-벌써 다음 서울시장이나 차기 대선후보로 거명하는 이들도 많던데 정말 다시는 정치를 안하실 건가요.“언제나처럼 ‘절대로’란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국내 정치풍토에 환멸을 느껴 정치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땐 정치력, 정치자금, 정당 등 모든 것의 부족함을 느껴 포기했습니다. 또 만나지도 않고 만났다고 하거나, 수시로 말을 바꾸는 등의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제겐 맞지 않는 세계로 느껴졌거든요. 아직은 평소 제 소신과 철학을 지키며 정치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뛰어난 경제학자이자 교육전문가, 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함,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점 등으로 DJ 정부부터 현정부까지 끝없는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한은 총재를 맡아달라고 사람을 보내시긴 했는데 거절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이던 2006년 2월에 직접 만나 서울시장 출마를 권하며 ‘같이 일하자, 서울을 국제금융도시로 만들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더군요. 전 국제금융보다 국내금융에 관심이 많아 자신없다고 거절했어요. 그후론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어떤 자리를 맡아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측근이란 분들이 권유하긴 했지만 제 생각엔 그저 한 번 떠보는 수준인 것 같아요. 다른 정당에서도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했는데 저와 이념이 일치하는 정책을 가진 정당이 없어 거절했습니다. 아직은 정치보다 교수, 학자란 신분에 더 만족합니다.”-지인들은 솔직하고 소년스러운 점이 매력이라고 합니다. 환갑 넘은 나이에 소년스러움의 원형질을 유지하는 비결이 뭡니까.“여자들을 보면 철없이(?) ‘참 예쁘십니다’라고 해서 그럴까요?(웃음) 아마 다른 이들에 비해 욕심이 없어서 그렇겠죠. 경제학자면서도 정작 돈에 대한 욕심이 없고 다른 분야엔 게으르고,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실망하거나 속 상할 일이 없어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란 말이 제 인생 철학이기도 해서 솔직하다보니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가슴으로 생각하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보니 끼니를 걱정하고 화장실도 여러 가구가 사용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스코필드 박사를 비롯한 이들의 후원금, 가정교사, 조순 선생 등 은사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대 총장까지 되셨더군요. 그런데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체력이 명문대를 들어가는 비결이라는 요즘 시대에도 제2의 정운찬이 가능할까요.“좀 힘들 겁니다. 집안이 가난한 경우 일찍 성적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철이 들어야 하거든요. 제 경우 도저히 중학교 갈 형편이 아닌데 초등학교때 공부를 잘해서 친구 아버님이 스코필드 박사를 소개시켜줘 장학금을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 교육제도는 대학교를 갈 때가 되어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수시로 자기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기회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30년째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왜 우리 교육제도는 안바뀔까요.” - 경향신문 유인경 선임기자 ▶정운찬은누구인가서울대총장 지낸 대표적 경제학자 … 폭넓은 인맥 마당발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경제비평가. 1947년 음력 2월29일생이어서 호적엔 1946년, 기타 자료엔 1948년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충남 공주 출9신으로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후 한국은행에 잠시 근무하다 스승인 조순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떠나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78년부터 서울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 2002년 서울대 총장에 선출됐다. ‘거시경제학’ ‘화폐금융론’ ‘경제학원론’ 등 경제학도들의 필독서 외에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 등의 칼럼집과 자전적 에세이 ‘가슴으로 생각하라’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제자인 유시민 전 장관이 ‘가장 폭넓은 분야의 사람과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평할 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격의없이 대해 학자들은 물론 정치인, 사업가, 문화예술인들과 친분이 두텁다. DJ정부 시절에 모 기관에서 70여명의 장관 후보감을 조사한 결과 돈문제, 여자문제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총장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관에 각을 세워 교수들 사이에선 ‘소신있는 학자’로, 또 일부에선 ‘엘리트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지난해 대통령 불출마 선언후 평교수로 돌아가 논평과 강의를 통한 ‘사회 봉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심취, 방송에서 야구해설을 할 만큼 애정과 상식이 풍부하다. 화가인 최선주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며 부인과의 연애시절 500통의 러브레터를 보냈을 만큼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유인경 선임기자>

Fri Sep 12 2008 06:11: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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