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동화책을 보다

정상미

어디까지지? 대체 언제지? 어떻게 되지? 양갈래 머리를 한 납짝코 계집아이가 마루바닥에쪼그려 앉아 동화책을 본다.체리맛 사탕을 빨면서 수 없이 책장을 뒤적거려본다. 영웅은 죽고 여행은 끝나고 연은 끊어지게 마련. 모험을 떠난 주근깨 소녀가 대체 언제 어떻게 활을 맞아 심장이 무참하게 짓이겨질지, 혹은 아주 통속적으로 두 동강 날지, 또는 의외로 덤덤할지, 그 시점을 찾느라? 그러기를 고대하느라? 그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어쨌든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갔다. 활을 맞은 그 다음은? 만약 죽게 되면? 그럼 그 끝엔?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초조함에 체리맛사탕은 더 빠른 속도로 됴그마해졌다. 체리맛사탕을 다 먹고 나면 소녀는 죽고 동화는 끝이 날까? 그러니까 지금 이걸 뱉어야 하는건가? 체리맛 사탕이 앵두만큼 작아졌을 때 아이는 뒤적거리기를 멈췄다. 책갈피를 꽂아둔 페이지를 다시 펼쳐본다. 여길 봐! 그 페이지의 그림 속에서 주근깨 소녀는 늘 입던 민트색 파자마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두발을 떡-벌리고 서서 뗏목을 다 차지한 채로. 뗏목 위에는 딸기바구니, 박하향 베개, 고양이 제롬, 그리고 제롬이 피우는 초코맛 담배. 바다 너머 숲은 여전히 푸르렀고 나무들 사이로 올빼미는 하품을 했다. 근데,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테야? 소녀는 건강하게 가뭇해진 얼굴로 책 밖의 계집애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화살을 맞을 순간만 고대하기에는 지금 이 페이지의 모든 것들, 이를테면 물빛 바람도, 새들과의 수다도, 제롬과의 뽀뽀도 너무 무성하게 눈이 부시다고. 그러니까 내 심장이 짓이겨지기에는, 내 여행을 끝내버리기에는, 내 끈을 잘라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나는 여전히 여기 살아 눈을 깜빡이고, 코를 벌름대고, 입속엔 산딸기가 한가득이라고. 그리고...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을테지만, 나는 그래도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무채색 도화지에 여기저기 색을 입은 물상들이 나를 향해 흘러오고, 또 흘러간다고, 너를 향해. ……. 납작코 계집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만히 창가로 걸어가본다. 끼릭- 창문을 열고 가만히 손을 밖으로 내밀어 본다. 가만히 눈을 깜빡, 코를 킁킁, 혀를 내밀어 팔랑팔랑. 후앗차-! 창틀에서 뛰어내린다. 계집애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민트색 파자마 소녀가 뛰노는 페이지를 펼쳐둔 채로. 덧. 그림은 요시모토 나라(Yoshimoto Nara)작품인데 제목을 몰라요... 저작권문제때문에 다른 그림 올릴까 하다가 너무 느낌이 좋아서-_ㅠ... 제목 아시는 분 립흘부탁>_

Tue Aug 26 2008 02:4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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