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정상미

이별에 대한 변론

Wed Jul 02 2008 04:1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퐁-. 매일아침, 뱃속에 오롯이어쩌면포근히품어 두던 물질들과 뜨거운 안녕을 나눕니다. 철컥, 우르르 쏴아- 녀석들은 눈부시게 하얀 갱도를 따라 운명의 인력에 딸려 사라지고 이제다시는 만나질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매일 겪어내야 하는 어떤 헤어짐, 나도 당신도. 아아, 이별은 뜻밖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질지 모르나 나는 터져나가지 않고 예 이렇게 서서 또 다른 녀석들을 뱃속에 품는 것이지요. 그렇게이별은 계속됩니다.물론 그것은 만남이 계속된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ㄴ' 자판과 수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순간바로 '이 순간 이었던 순간'과의 숨소리와 이별을 하고, 이 순간 내 몸속 세포 하나와 또 이별을 하니 아아 여기 나는 눈물을 아니 떨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기억과도, 멍청이 앉아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물 한모금 마시던 시절들과도 나는 비로소 이별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쓸어내리고, 또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혹은 당신과 새로이만나 새로운 기억의 직물을 짜내고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끼익끼익 덜컹 끽 끼리릭 페달을 밟고 언덕을 넘고나는 다시 페달을 밟고- 살고 살고또 그렇게 살아내고 저기요! 하지만 여기서 손을 들고조용히 질문해봅니다. 헤어지고 또 헤어지고 그래요 다시는 만나질 수 없게, 아니보다 더 정확히는 '지금같이는' 다시 만나질 수 없게되는데 슬픈가요?소월이 옵빠가 그러했듯, 나는 지붕 위에 난짝! 뛰어올라가 당신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불러야 할까요?1) 이제 모든 것은 끝나버린 걸까요... 어쩌면 이별은 18종문학자습서들이 깝쪽대며 일러주듯소멸과 사그라듦의 문제가 아니라'새로이 태어남'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나는 여기서 이별을'진보'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일단은 '진보'를 믿고 싶을 뿐 믿지는 않는데다가,매번의 헤어짐을 매번의 나아짐과 동치시킨다는 건 또한당신과의 만남이라는 '시절'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지금의 나의 시간들보다 열등한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일이 되어 버릴테니까.혹은 는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기만하는 일이 되어버릴테니까.나는 그렇게 없었던 것을없었던 걸로, 있었던 것을 있었던 걸로 두고 싶을 뿐이니까. 당신과의 시절들은, 비록 내가 당신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시간이 와도 그 창연함을 잃지 않으니까. 내가 또 다른 창연한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해도.소급하여 역사를 폐기하거나 폄훼하거나, 혹은뤽상부르 공원에 로베스피에르를 순장하고 나폴레옹 팔짱을 끼고유유히 떠나간 요염한다비드2)가 될 수는 없으니까. 이런 말 다비드에게는 실례가 되겠죠. 미안해요. 실례합니다.익스큐즈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별을 기점으로 과거를 폐기하고현재를 격상시키는 행위는이 순간내 베겟잇에 전해오는 새로운 당신의 숨소리마저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릴테니까. 왜? 나는 다시 새로운 현재를 격상시키느라 그즈음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당신과의 현재를 폐기하게 될 테니까. 나는 정녕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것은 결국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종국의'그러할 나'를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테니까요.나는 정녕 그럴 수가 없으니까.물론'그러할 나'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임에도. 그니깐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별' 이란 그 무엇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구요. 매순간과 이별하고 또 매순간을 주머니에 꽁꽁 넣어둡니다.그리고 이별이라는 거한다고 해도 뭐그리대단한 '영원한 종말'이 아닌 '새로이 태어남'의 문제라구요.자전거 바퀴가 굴러 굴러, 저 지면과는 한 뼘 멀어지고 다시 새로운 지면을 밟아내는 중이라는 어떤 증명.그리고 그에 따라 나는 이렇게 변하고 또 변하고...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흔적.나는 세상 오만가지 것들과, 심지어매순간 세포분열을 거듭하며 새로운 부조리를 머리에 담는 이 '나라는 물상'과 또한 이별하면서 이렇게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전혀 억겁의 무게를 가진파토스를 뱉어내며 엉엉 울며 땅바닥을 데골데골 구르지는 않아도 될지 모른다구요. 단지 나는 태어나고 있어요. 억만개의 '나라는 물상'으로. 그러니 그렇게들 '이별'이라느 단어 앞에긴장할 게 아니라구요.이 순간 당신은 또 무엇과 이별하고 있는지- 끼익끼익 덜컹 끽 끼리릭 페달을 밟고 언덕을 넘고나는 다시 페달을 밟고- 살고 살고또 그렇게 살아내고 ps.1 "얘 애인이랑 깨졌구나! 안됐다..ㅉㅉㅉ..." 이 글을 다 읽고난 당신도 이렇게 주억거리나요? 아, 진짜 위에서 그렇게 '이별'의 의미에 대해 '설교 아닌 설교'를 해댔음에도 당신은 저렇게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이거죠? ㅋㄷㅋㄷ! 역시 인간은계몽가능성이 전혀 없는 족속이야=ㅂ=!별다른 생각없이 개인 홈페이지에 '이별의 계절'이라는단어를 새겨두었다가 주위로부터 온갖 걱정과 격려를 들었던 경험을 되살려 적어 봅니다.이 때 생각하고 있던 '이별'은 전혀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음에도 반응이 열렬했죠. ㅋㄷㅋㄷㅋㄷ 당신에게 이별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일단, 저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엔. 물론 두렵죠.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지만, 그렇다는 건 곧, 내가 이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이 되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니까요. ps.2 우리 이쁜이 편집장님 6기 은영이가또 다른 은영이가 되려고현재의 은영이와 '이별'하고우리와도 '이별'합니다. 이로써은영이와의 만남도 또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게' 되겠지요? 서로의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어요.새로운 '만남의 탄생'을 고대하며! 은영아 잘 다녀와=ㅂ= *생뚱맞지만 주석풀이?! 1) 김소월의 시 '초혼'(시집 "진달래꽃"(1925)에 수록)을 참조 2) 화가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자코뱅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자코뱅 일파가 처형당하게 되었을 때 새 정부는 다비드의 재능을 높이 사서 충성을 결의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한다. 이 때 다비드가 '전향(?)'의 증거로 그린 그림이 '뤽상부르 공원의풍경'이다.이후 다시 나폴레옹이 실권을 장악하자 다비드는 '궁정수석 화가'로 복무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책 찾아 보세용! 아힝. 3) 첨부된 그림은 Edvard Munch의 이별(Separarion,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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