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신영미

예술로 승화된 보헤미안의 恨…집시문화의 힘- 경향신문

Thu Jul 31 2008 00:2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여주인공 카르멘은 집시 여인이다. 그녀는 남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의 전형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 역시 팜므 파탈 형의 집시 여인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 유럽인이 집시, 특히 집시 여성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서구의 역사는 집시를 ‘악의 근원’이라고 설명하면서 ‘다가가서는 안될 매혹’이라고 했다. 집시 여성에는 요부와 창녀의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 생존을 위해 갖가지 천대받는 일을 하다보니, 이런 관념이 자리잡은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 ‘집시 여성=팜므 파탈’이라는 인식의 이면에는 유럽인들이 본능적으로 집시의 매력에 끌린 부분도 있어 보인다. 이는 집시들이 보여준 춤과 음악의 재능에서 기인한다. 유랑과 탄압의 역사를 겪으면서 그들이 품은 분노와 절망은 예술로 승화됐다. 현실의 속박은 그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을 절실하게 만들었다. 집시 하면 연상되는 또다른 이미지인 ‘자유’는 실상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는 15세기 프랑스에서 집시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이 집시들의 집단 거주지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 춤 ‘플라멩코’는 집시가 그 기원이다. 15세기 스페인 남부에 정착한 집시들은 북아프리카에서부터 그리스, 인도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버무려 플라멩코를 만들어냈다. 융합된 문화의 원적은 이곳에 정착한 집시들의 이동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집시 음악의 특징은 즉흥성과 화려한 기교다. 현실의 고통에서 비롯된 자유에 대한 갈증,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집시 음악의 탄생 배경이다. 작곡가 리스트는 ‘헝가리안 랩소디’에서 집시들의 연주 스타일과 치고이너 단조를 사용했는데, 치고이너는 독일어권에서 집시를 부르는 말이다.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곡 ‘치고이네르바이젠’도 ‘집시의 노래’라는 의미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은 스페인 집시들 사이에 전해지는 각종 무곡을 소재로 다양한 기법을 구현하도록 만든 바이올린 독주곡이다. 여기에도 집시들의 자유분방함이 묻어있다. 제대로 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각기 거주하는 땅에서 차별받던 집시들에게는 음악과 춤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집시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뒤 공동체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으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표 단체를 구성했다. 체코 프라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로마니 연합(IRU)이다. IRU는 1986년부터 유니세프와 유네스코에 회원 자격으로 참여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헝가리의 집시 여성인 리비아 야로카는 2004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집시들은 일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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