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신영미

마스카라야 ? 만년필이야? [중앙일보]

Wed Jul 30 2008 01:3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J-style] 마스카라야 ? 만년필이야? [중앙일보] 젊은 여성들의 새 패션코드 …“깜찍해서 좋아요” 1921년 미국의 필기구 전문 제조업체인 ‘파커’는 빨간색 만년필을 내놓았다. ‘듀오폴드’라는 이름의 이 만년필은 검은색과 갈색뿐이었던 기존의 만년필과 180도 다른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요즘이야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예쁜 필기구가 워낙 많아 이 정도의 변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 미국 시장에선 파커의 혁신적인 실험이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가격도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7달러(※192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1200%나 올랐다)의 고가였고 13.8㎝에 이르는 큰 사이즈에 빨간색 고무로 된 디자인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이다. 듀오폴드’는 이런 예측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경영학자 사이에 ‘최초의 색깔 마케팅’으로 기억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까지도 같은 이름의 시리즈가 나올 만큼 기념비적인 모델이 됐다. ‘권위적인 남성 필기구’로만 여겨졌던 만년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확 바꿔 놓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만년필 매니어들이 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인이 ‘예쁜 만년필’을 보고 즐거워했던 것처럼 점점 더 아름다운 만년필의 매력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전통’ ‘장인정신’ ‘품위’를 중시하는 장년층뿐만 아니라 더욱 개성 있고, 더욱 멋진 스타일을 찾는 젊은 층에게도 만년필이 ‘머스트 해브’(필수품)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디지로그의 가치가 만년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사람의 온기만 한 것은 없다. #젊은 여성을 위한 만년필 화려한 꽃무늬의 핑크색 몸체, 뚜껑을 열어 펜촉을 확인하기 전까진 영락없는 마스카라다. 프랑스 필기구 업체인 워터맨의 이 만년필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성을 위한 디자인이라 만년필을 주머니에 꽂을 수 있게 하는 ‘클립’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대신 따로 만년필을 넣어 다닐 수 있도록 푸른색과 핑크색이 조화를 이룬 전용 주머니를 만들었다. 고급 필기류의 대명사였던 만년필이 최근 30대 남성 직장인들의 패션으로 옮겨 가더니, 요즘에는 10~20대 여성과 중고생들도 애용할 만큼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예컨대 수업 내용을 대부분 만년필로 필기한다는 정유진(18·인천외고3)양은 만년필만 서너 개 갖고 있다. “요즘 만년필 광고를 보면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만년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손에 쥔 멋진 만년필이 내 스타일을 말해주는 거죠. 만년필로 쓸 때의 아날로그 느낌이 특히 좋아요. 왠지 편지는 만년필로 써야 할 것 같아요.” 영어강사 서연주(35·여)씨는 스타일 때문에 만년필을 찾는다. 그는 “예전부터 만년필을 썼지만 지금처럼 예쁜 디자인이 나오기 전엔 다 남자들 것 같아서 별로였다. 하지만 요즘 만년필은 디자인이 다양해서 ‘나의 상징’처럼 들고 다닐 수 있다. 내 패션과 스타일에 맞는 만년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필기구 도매업체 비젠의 이지윤 팀장은 “만년필은 상류층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요즘 들어 젊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찾고 있다”며 “소비층이 넓어지면서 디자인과 용도, 가격대도 다양해졌다”고 밝혔다. #디자인을 사는 시대 ‘만년필 르네상스’를 타고 수입 만년필 브랜드가 늘어나고 디자인도 강화되는 추세다. 독일 브랜드인 펠리칸은 젊은 층이 모이는 대형 서점에서 시필 행사를 열고, 온라인 홍보도 강화했다. 펠리칸을 수입하는 신한커머스의 이재욱 이사는 “본래 브랜드의 특색인 줄무늬의 기존 디자인보다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춘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몸체도 더 날씬해진 것이 최근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특히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 인기다. 일본 브랜드인 ‘플래티넘’이나 독일 브랜드인 ‘라미’가 대표적이다. 라미는 국내에 수입된 지 3년 밖에 안된 신생 브랜드지만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배나 늘었을 만큼 인기다.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된 라미 만년필은 3만~9만원 정도다. 라미에선 어린이용 만년필도 내놓고 있다. 플래티넘은 파스텔톤의 화사한 색상으로 여성 고객을 노리고 있다. 4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오병권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장의 분석이 재미있다. “어떤 집이든 그냥 굴러다니는 볼펜이 백 자루는 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 볼펜을 산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볼펜이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사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옷이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을 넘어서 패션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필기구도 패션이 됐다. 하물며 필기구의 ‘제왕’ 만년필은 어떻겠는가.” -중앙일보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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