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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에게 배우는 공부 방법

문경연

조상들에게 배우는 공부 방법 25일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말한다. 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교육’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것임을 천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현 시대가 붕괴된 교육 현실을 지니고 있으며, 공부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자신과 세상을 위해 어떻게 공부했을까. 그들이 한 권의 책을 천번, 만 번 읽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책읽기만은 멈추지 않았던 옛사람들, 그들이 생각한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정리한 책이 있다. 바로 김건우 씨가 지은 ‘옛사람 59인의 공부 산책(도원미디어)’이 그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선인들의 ‘공부’ 에 대한 생각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정여창에게 배우는 겸허한 자세 나는 자질이 남보다 못하니, 만약 전심전력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털끝 만한 효험이라도 얻겠는가. 비유하면 학문이란 밭에 곡식을 심는 것과 같으니, 척박한 밭에는 좋은 벼가 무성하지 않고, 기름진 땅에는 잡초가 자라기 쉽다. 만약 곡식을 가꿀 적에 심고 북돋우고 호미질하며 잡초를 제거하는 공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밭이 있어도 어찌 유익하겠는가. 서경덕에게 배우는 사색하는 방법 하나의 사물을 궁리하여 깨우친 뒤에 비로소 다시 다른 사물을 궁리했다. 만일 미처 깨우치지 못하면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르고, 길을 나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했다. 더러는 며칠 동안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눈을 감았다가 꿈속에서 깨닫기도 하였다. 이렇게 공부한지 5,6년 만에 사물 가운데 이치를 궁구하지 못한 것이 없게 되었다. 퇴계에서 배우는 독서법 책이란 정신을 차려서 수없이 반복해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두 번 읽어 보고 뜻을 대충 알았다고 해서 책을 그냥 덮어버리면 그것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간직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알고 난 뒤에도 그것을 자기 몸에 배도록 공부를 더 해야만 비로소 마음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학문의 참된 뜻을 체험하여 마음에 흐뭇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유희춘에게 배우는 여섯 가지 독서법 내가 전에 독서할 때 여섯 가지 필요한 절목을 세워 독서를 하였다. 첫째 부지런히 글을 읽을 것, 둘쨰 잘 기억할 것, 셋째 정밀히 생각할 것, 넷째 분명히 분변할 것, 다섯쨰 잘 기술할 것, 여섯째, 독실히 행할 것이다. 율곡에게 배우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 오래도록 내버려 두었던 마음을 하루아침에 거두어들이는 일은 그런 힘을 얻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마음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힘이 완성되기 전에는 마음의 요동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마치 잡념이 분잡하게 일어날 때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싫어해서 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분잡해지는 것과 같다. 금방 일어났다가 금방 없어졌다가 하여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 같은 것이 마음이다. 가령 잡념을 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 '끊어야겠다는 마음'은 내 가슴에 가로질러 있으니, 이것 또한 망령된 잡념이다. 분잡한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마땅히 정신을 수렴하여 집착없이 그것을 살필 일이지 그 생각들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오래도록 공부해 나가면 마음이 반드시 고요하게 안정되는 때가 있게 될 것이다. 일을 할 때에 전일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이다. 송시열에게 배우는 반성 내 나이 열네 살 때 맹자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뜻이 쉬워 기뻐하면서 날마다 공부했다. 그런데 호연장에 이르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보면 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나무토막 같았고, 때로는 이마에 진땀이 나기도 했으며 짜증도 나기도 했다. 열일곱살이 되자, 글이 어렵고 쉬운 것이 아니라 나의 공력이 이르지 못한 데가 있는 줄 알고 탄식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500번이나 읽어 글이 입에 쉽게 붙었다. 그러나 그 의리는 끝내 깨달을 수 없다. 안정복에게 배우는 다독의 이유 성현의 글은 만 번쯤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비근한 일을 들어 비유하자면, 백 아름되는 나무를 베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큰 도끼로 찍어야만 벨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현의 말씀으로 말하자면 그 의리의 심오함이 어찌 큰 나무에 비교할 정도이겠는가. 반드시 많이 읽은 다음이라야 대강이나마 그 의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두 번 훑어보고는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니, 뜻을 터득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이것이야말로 조그만한 낫으로 큰 나무를 베다가 겨우 껍질이나 조금 벗기는데 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여창에게 배우는 겸허한 자세 나는 자질이 남보다 못하니, 만약 전심전력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털끝 만한 효험이라도 얻겠는가. 비유하면 학문이란 밭에 곡식을 심는 것과 같으니, 척박한 밭에는 좋은 벼가 무성하지 않고, 기름진 땅에는 잡초가 자라기 쉽다. 만약 곡식을 가꿀 적에 심고 북돋우고 호미질하며 잡초를 제거하는 공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밭이 있어도 어찌 유익하겠는가. 서경덕에게 배우는 사색하는 방법 하나의 사물을 궁리하여 깨우친 뒤에 비로소 다시 다른 사물을 궁리했다. 만일 미처 깨우치지 못하면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르고, 길을 나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했다. 더러는 며칠 동안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눈을 감았다가 꿈속에서 깨닫기도 하였다. 이렇게 공부한지 5,6년 만에 사물 가운데 이치를 궁구하지 못한 것이 없게 되었다. 퇴계에서 배우는 독서법 책이란 정신을 차려서 수없이 반복해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두 번 읽어 보고 뜻을 대충 알았다고 해서 책을 그냥 덮어버리면 그것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간직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알고 난 뒤에도 그것을 자기 몸에 배도록 공부를 더 해야만 비로소 마음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학문의 참된 뜻을 체험하여 마음에 흐뭇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유희춘에게 배우는 여섯 가지 독서법 내가 전에 독서할 때 여섯 가지 필요한 절목을 세워 독서를 하였다. 첫째 부지런히 글을 읽을 것, 둘쨰 잘 기억할 것, 셋째 정밀히 생각할 것, 넷째 분명히 분변할 것, 다섯쨰 잘 기술할 것, 여섯째, 독실히 행할 것이다. 율곡에게 배우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 오래도록 내버려 두었던 마음을 하루아침에 거두어들이는 일은 그런 힘을 얻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마음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힘이 완성되기 전에는 마음의 요동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마치 잡념이 분잡하게 일어날 때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싫어해서 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분잡해지는 것과 같다. 금방 일어났다가 금방 없어졌다가 하여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 같은 것이 마음이다. 가령 잡념을 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 '끊어야겠다는 마음'은 내 가슴에 가로질러 있으니, 이것 또한 망령된 잡념이다. 분잡한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마땅히 정신을 수렴하여 집착없이 그것을 살필 일이지 그 생각들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오래도록 공부해 나가면 마음이 반드시 고요하게 안정되는 때가 있게 될 것이다. 일을 할 때에 전일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이다. 송시열에게 배우는 반성 내 나이 열네 살 때 맹자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뜻이 쉬워 기뻐하면서 날마다 공부했다. 그런데 호연장에 이르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보면 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나무토막 같았고, 때로는 이마에 진땀이 나기도 했으며 짜증도 나기도 했다. 열일곱살이 되자, 글이 어렵고 쉬운 것이 아니라 나의 공력이 이르지 못한 데가 있는 줄 알고 탄식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500번이나 읽어 글이 입에 쉽게 붙었다. 그러나 그 의리는 끝내 깨달을 수 없다. 안정복에게 배우는 다독의 이유 성현의 글은 만 번쯤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비근한 일을 들어 비유하자면, 백 아름되는 나무를 베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큰 도끼로 찍어야만 벨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현의 말씀으로 말하지면 그 의리의 심오함이 어찌 큰 나무에 비교할 정도이겠는가. 반드시 많이 읽은 다음이라야 대강이나마 그 의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두 번 훑어보고는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니, 뜻을 터득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이것이야말로 조그만한 낫으로 큰 나무를 베다가 겨우 껍질이나 조금 벗기는데 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장자- 출세할 생각으로 공부한다면 공부에 해가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견강부회하게 되므로 문제를 일으킨다. 과거의 사람들 경험을 통해서, 우리도 공부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그들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학습했던 것처럼, 우리 장학재단 사람들도 자신과 세상을 위해 멋진 앨트웰리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민초 4기 서울대 인류학과 l문경연 gangs3114@snu.ac.kr

Wed Apr 30 2008 15:03: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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