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작가 이외수 “한심한 정치가 자꾸 날 원고지 밖으로 끌어냅니다”

신영미

춘천에는 호수와 막국수, 그리고 이외수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춘천3절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이외수는 도드라지는 존재다. 먼저 특이한 외모와 습벽이 그를 기인으로 불리게 한다. 방문에 못질해 스스로를 몇달씩 가둬놓고 죽기살기로 글을 쓴다. ‘열혈독자만 40만명’이라는 얘기는 이런 그의 치열함의 소산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정치색을 찾기는 어렵다. 초지일관 정신과 영혼의 문제를 소재로 삼아왔다.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고, 그 내면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는 그렸다. 현실과 물질에만 집착하는 때일수록 정신과 영혼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화활동이 사회활동이 되어서는 안된다거나, 문학이 순수성을 잃으면 안된다는 그의 지론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 문명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특히 정치와는 담을 쌓을 것 같은 이외수가 지금 정치 토론장에서 뜨고 있다. 그것도 인터넷을 통해서다. 지난해 대선 이후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설 어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에 대해 ‘수치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무식을 갑옷처럼 착용하고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나’ 등으로 표현한 그의 어록이 네티즌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인터넷상에서 ‘꽃노털 옵하’(‘꽃미남처럼 아름답게 늙은 오빠’란 뜻)로 불린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세월에 풍화되지 않고 영원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그가 왜 그토록 이번 정부에 날카로운 화살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 그는 “차분히 본업에만 몰두하고 싶지만 한심한 정치가 자꾸 원고지 밖으로 나를 끌어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은 크레파스 색깔 그대로의 하늘빛이고, 나무는 진초록으로 마냥 푸른 곳,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로 그는 집을 옮겼다. 소설가 이외수는 이렇게 천국 같은 곳에 살아도 어지러운 정치가 마음속에 지옥불을 지피게 한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자판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 작가의 정치풍자가 화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계속 비판하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합니까. “최초로 질타의 글을 올린 것은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사·국어까지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정책발표를 보고서였습니다. 일반인이 아닌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의 발언이라 충격이 더욱 컸죠. 그건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전혀 없고, 한글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그 무렵 유엔에서는 세계적 언어학자들의 4년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말은 있어도 글은 없는 나라에 가장 배우기 쉽고 실용적이며 과학적인 언어를 찾아내 선물하겠다는 취지의 연구였는데 한글이 가장 이성적인 언어로 뽑혀 그 우수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축복받은 민족이라고 하고 미국의 한 언어학자가 한글날 자기 아파트에 태극기를 걸어 인류 최고의 언어에 경배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최대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푸대접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죠. 교육이 뭔지 안다면 그걸 실제 활용할 때 얼마나 문제점이 큰지 알 겁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고’를 어떻게 영어로 가르칩니까. 한글의 풍부하게 발달한 수사, 관용어, 의태어 등은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시원하다, 서늘하다, 쌀쌀하다, 선선하다, 써늘하다 등 각각 느낌이 다른 말도 이 영어에선 그저 Cool 하나로 해결되는데…. 난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한 걸 기자들이 과장되게 기사화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즉흥이 아니라 진심이고 진짜 시행하려해서 기분이 더 나빴습니다.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억울했죠. 영어보다 먼저 한글을 사랑하고, 우대하고 투자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어 못하면 인격적으로 문제 있고, 영어 잘하는 게 지성의 척도인가요. 우리나라 최고 어른으로 먼저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투자한 다음, 영어에 집중해도 되는데 대통령부터가 한글을 무시하고 천시하니 기분이 나쁜 겁니다.”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비호감’이었습니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정치와 무관했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정치 비판이 아니라 한글 비하에만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실망입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영어는 그렇게 강조하고 자주 쓰면서 매번 맞춤법을 틀립니까. 물론 그 연세면 틀릴 수도 있죠. 글밥 먹고 사는 문인들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상습적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틀리면 국가나 국민의 격이 떨어집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고쳐야 하는데 시종일관 틀리는 게 문제입니다. 방명록에 쓰기 전에 미리 물어보든지, 주위에서도 조언해주는 것이 옳죠. 또 주위에서 잘못을 지적해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충고와 조언을 하는 분들이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가도 모릅니다. 쓴소리하고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죠.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주변이 더 문제더군요. 국민들이 이렇게 화가 나있고 실망하는데 그걸 수용할 생각도 않을 뿐 아니라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아요. 자기들 방식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불도저식이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부드럽게 빗자루를 들고 때론 먼지떨이개로 털기도 해야 하는데 유리창 닦을 때도 불도저를 쓰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관료들은 대통령 앞에선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작가의 양심을 갖고 불의나 한심한 정책에 질타를 할 뿐이죠.”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합니까.“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국민 다수가 선택했지만 다수가 반드시 옳고 정의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라 정부에 바라는 것을 집회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진화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촛불로 평화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하면 안되죠. 비록 피켓에 과격한 구호들이 적혀 있고 일부에서 자극적 발언을 하더라도 감정 대응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사랑과 포용의 정신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위 참가자들도 갈수록 비폭력적 평화적이 되려 하는데 왜 강공일변도로 대응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약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면 무슨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까. “뭐 만날 일도 없고 내가 얘기한다고 들을 분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분 지지자들은 나보고 ‘정신병원에 가라’ ‘좌빨(좌익빨갱이)’ 등 원색적 비난을 하더군요. 어쨌건 그분이 대한민국이 상류층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 우리의 건국과 교육이념이 홍익인간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모든 정책과 발언에 숙고를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자고 주장하는데 그건 국민이 일치단결했을 때 가능한거고 국민은 정부 지시를 따르면 죽는 걸로 받아들이는데 혼자 정해놓고 그 속으로 무조건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독재의 냄새까지 풍깁니다. 제발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숙고하고 논의를 거친 후에 제시하길 바랍니다. 대운하도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창안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 진짜 실현하려는 것 같아 억지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촌철살인의 정부 비판 덕분에 인터넷짱으로 등극하셨던데, 언제 인터넷을 시작했습니까.“10년 전까진 엎드려서 글을 쓰는 재래식 가내수공업자였죠. 배게 끼고 알 품 듯 글을 썼습니다. 자세가 나쁘니 척추에 무리가 가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글쓰는 자세부터 바꾸라더군요. 어떻게 하면 허리를 펴고 글을 쓸까 고민했는데 둘째 아들이 컴퓨터로 쓰라고 권유하기에 무조건 컴퓨터를 샀죠. 처음엔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너무 답답하고 막막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도대체 ‘ㄱ’이 어디 있고 ‘ㅏ’가 어디 있나 자판만 살피고 ‘안녕!’을 치는 데만 30분 걸리고, 표현도 안떠오르고…. 이러다 글을 못쓰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더군요. 아들이 채팅하면 타자속도가 빨라진다고해서 채팅을 시작했죠. 한번 어디 빠지면 열중·집중하는 천성 덕분에 불굴의 탐구정신으로 야동사이트를 들쑤시고 다니며 하루 10여시간을 계속 채팅한 결과 인터넷 세상에 눈을 떴고 독수리 타법으로 1분에 300타를 칩니다. 한때는 천리안에서 너무 많이 채팅한다고 건강에 주의하라고 전화올 정도였죠.” “과거엔 가슴 아리는 글 썼지만, 이젠 행복 주는 글 쓰고싶다”-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소설가이면서 한글을 파괴한다고 비난받는 인터넷 용어를 자주 쓰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언어가 갖춰야 할 기본을 갖춘 신선한 인터넷 표현에는 감동합니다. 자연계도 항상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낡은 것이 멸종하듯 언어도 기존의 것이 위협받기도 하고 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화롭게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으로 쓴 감탄사 ‘하악하악’ 등의 표현은 즐기지만 자음만 나열하는 것이나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것, 품격 없는 말들은 쓰지 않습니다. 줄임말도 안 쓰는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더군요. 우리 젊은이들은 놀랄 만큼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우리 교육제도가 그걸 못살려줍니다. 인생에선 창의력이 가장 중요해요. 찍어낸듯한 인생, 남의 것을 흉내낸 인생으로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자기 인생을 창조하려면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능력을 키우는데 관심과 투자가 선행되어야하는데 그게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어 답답하죠. 인터넷용어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말이 많아 긍정적 효과가 큽니다.” -책의 독자들도 홈페이지 회원들도 대부분 젊은층인데 62세의 어르신이 그들과 소통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수시로 채팅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에 관심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언어를 쓰는지 공부합니다. 요즘은 초딩(초등학생)과도 대화가 통해요. 초딩은 정말 판독하기 상당히 어려운 세대예요. 똑똑한 애들은 대학생보다 더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표현합니다. 물론 막 나갈 때는 저항할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대략난감!(하하)”-인터넷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 뭡니까.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거죠. 나한테 안티가 있다는 것도 인터넷 악플을 통해 알았어요. 그건 내가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의외로 골수독자도 많더군요. 운동선수들이 계속 끝없이 연습을 하고 피아니스트도 매일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듯 작가도 매일 석줄이라도 써야 언어감각이 녹슬지 않습니다. 젊은이들과 계속 접하고 놀아야 그들이 읽을 글을 쓸 수 있어요. 처음엔 젊은층과 대화하는 것이 쑥스럽고 화도 나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합니다. 첫째며느리도 인터넷에서 발굴(?)했습니다. 나의 골수독자로 내 홈페이지를 24시간 지키는데 자기가 바쁘면 친구라도 대신 자리를 지키게 만들 만큼 열성이더군요. 방송작가 출신인데 글솜씨가 탄력있어요. 큰아들이 보고 호감을 느껴 만나더니 결혼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집사람과 죽이 잘 맞아 떨어져선 죽고 못살아요. 모르는 음식도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하고, 아들이 영화감독 수업 중인데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신경 안 쓰고 명랑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어른 역할을 하나요.“악의적 악플이나 치졸한 댓글에는 야단을 칩니다. 반항하는 쪽도 있고 반성하는 쪽도 있죠. 반항하는 애들은 반성할 때까지 글로 팹니다. 감정을 갖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충고, 질타를 하면 대개는 알아들어요. 제대로, 바르게 꾸짖으면 변화를 일으키죠. 그래도 반항하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나서서 나무라며 자정 역할을 해요. 젊은층은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 미래도 희망적으로 봅니다.”-‘감성마을 촌장’을 자임한다는데 이곳엔 언제 왔습니까. “춘천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집 주변에 공사가 많아지면서 천식이 심해졌어요. 매일 기침을 하고 숨쉬기도 어려우니 글이 안 써지더군요. 그런데 화천군수가 무조건 그냥 와서 작품생활에만 전념하라며 계획서를 갖고 왔어요. 국내 생존작가 최초로 화천군에서 작가를 위한 마을단지를 조성해 준거죠. 화천군이 군부대밖에 없어 열악한 환경이니 강원도에서 오랜 산 나를 초대해 문화단지로 살려보라는 겁니다.” -2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걸로 아는데 화천군에는 어떤 도움을 드립니까.“자칭 감성마을 촌장으로 ‘화천지역 법질서 확립과 경제살리기 홍보대사’를 맡아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을 느낍니다. 지역문제를 다루는 군민 공청회에도 참가하고, 부대 내 관심 사병을 찾아가 감성교육도 합니다. 어린 사병들에게 군대가 너희를 보석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군생활을 가치 있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워낙 힘겹게 군대생활을 해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또 각 단체나 기업체에서 강의 요청을 받아도 난 갈 수 없으니 이곳에 와서 받으라고 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모월당’에서 문학연수를 하는데 한달간 머물며 창작수업을 합니다. 난 무료로 지도하지만 숙식은 화천군 다목리에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강의를 듣건, 방문을 하건 날 찾아오는 이들이 이 동네 가게에서 음료수 한 병씩 사지 않겠습니까. 1년에 4000여명이 나를 보러 온 덕분에 신문에 감성마을의 경제효과란 기사도 났더군요. 다행히 성공사례로 평가되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겠다며 자문을 하러 옵니다. 황석영, 임동창씨 등을 모셔갈 계획이라던가요.” -직접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지런히, 성실하게 사시네요. “내가 참 오해를 많이 받아요. 머리랑 수염 기르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생김새만으로 보편적 모범에선 벗어날 것이란 편견을 갖는 이들이 많죠. 가정을 안 돌볼거다, 세상을 무질서하게 살 거다, 내멋대로 사람을 함부로 대할 것으로 여겨지나봐요. 하지만 난 기본을 매우 중시하며 질서를 지나치게 신경써서 지킵니다. 과거 술많이 먹었을 때는 술김에 인사불성이 되어 약간의 경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늘 규범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물론 가난했을 때는 목욕탕에 갈 돈도 없어 잘 씻지 않았어요. 내 발뒤꿈치가 너무 새카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어 맨발인데도 김성동씨가 그게 구두굽인 줄 알고 자꾸 구두벗으라고 했던 일화가 아직까지 전해질 정도죠. 요즘은 자주 씻습니다. 가족관계도 매우 화목한 편입니다. 내가 무명 시절, 춥고 배고플 때 가족들을 너무 고생시켜 이제는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려 합니다. 문학사에 남는 작가들을 보면 자식들이 아버지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죠. 예술한다며 가정을 내팽개쳤다고 원망합니다. 보통사람이건 예술가건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입니다. 가정 및 사회생활의 기본을 지키고 예술의 업적을 찾아야 그게 훌륭한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외수씨를 가장 저평가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대중에겐 매우 사랑받는 작가인데 쓴 책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뭘까요.“내가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그냥 대충 쓴 게 아니라 갈고 닦아 쓴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보는 거죠. 노력을 기울이면 신뢰를 얻습니다. 이외수 책을 집어들면 후회하지 않는다란 확실한 믿음을 갖는 독자들이 많으니 고맙죠. 그것 역시 내가 평소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습작한 결과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 연습을 열심히 해야지 고흐처럼 자기 귀를 먼저 자른다고 위대한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좌절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쓰는 속담을 볼 때 그래요. 다양한 수사법, 절묘한 비유어가 다양하게 구현된 속담을 보면 과연 내 책의 몇 구절이 수십년이 지나도 몇 개가 될까 싶습니다. 작가로서 직접 체험도 하지만, 문장 하나로 반성과 개선의 역할, 에너지의 놀라운 효용성을 가진 속담을 공부하면서 문장을 가다듬습니다. 글을 쓸 때 인위적인 것은 가급적 피합니다. 기교를 부린 문장은 10년만 지나도 낡아보여요. 대체물이 나오거나 사회가 발달해 이미지 자체가 달라지기 떄문이죠. 그래서 변함없는 자연을 가져와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꿈꾸는 식물, 들개 등의 작품은 20년이 흘러 다시 출간했어도 독자들로부터 신작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들어 기쁩니다.” -감성마을에 와서 40년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면서요. “하루 8갑까지 피웠는데 호흡곤란이 느껴져 끊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에 혼자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겠구나란 공포감을 느꼈어요. 평생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다양하게 살았으니 언제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제일 속상한 건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소설만 20여 작품을 썼는데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게 없더군요. 건강해야 대표작을 쓸 것 같아 담배를 끊었습니다. 100일까지는 호흡곤란, 그치지 않는 기침, 내장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고름 등 금단현상과 사투를 벌였어요.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데 인내심과 절제력을 보여줘야죠. 이젠 내 세포와 의식들이 모두 세척된 것 같아요. 몸을 리모델링한거죠.”-건강해지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작가로서 대표작으로 남길 작품을 써야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읽을 때 즐겁고 행복하고 책을 덮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래 가는 겁니다. 과거 내 작품들은 모두 가슴이 아리고 허망해지는 것들만 써서 책을 읽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어요. 이젠 독자들이 행복해지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내 경우 ‘자기 앞의 생’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 정치가 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 아름다운 감성마을에서 즐겁게 창작에만 몰두해 독자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나눠드리고 싶은데, 이 정치가 자꾸 날 원고지 밖으로 끌어냅니다. 세상사에 흥분하지 않고 좋은 글만 쓰고 싶은데….” 1976년 소설데뷔 ‘깎은듯한 언어’ 정평열혈독자 40만명…화천 감성마을 촌장작가 이외수는 기인으로 불리지만 그의 생활은 의외로 모범적이다. 미모에 손님들에게 밥인심이 후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지극히 정상적이고 화목하게 살고 있다. 부인의 생일엔 직접 미역국을 끓인다.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었다. 76년 ‘세대’에 중편소설 ‘훈장’으로 데뷔,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칼’ ‘괴물’ 등의 소설을 썼다. 30여년이 지난 최근 다시 초기 작품을 재발간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 외에도 우화집, 에세이집, 시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고 그림 그리기와 작곡에도 남다른 실력을 보여준다. 대학 중퇴 후 시골 초등학교 분교에서 수위로 생활할 때 월급으로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이 많다. 그의 홈페이지 작가 약력엔 초등학교 교사가 아니라 ‘초등학교 고용인’ 노릇을 했다고 적혀 있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이 너무 커서 정부가 지정한 공휴일이 아님에도 한글날은 혼자 무조건 쉰다.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에서 ‘부패’가 아니라 잘 ‘발효’한 어른이 되기 위해 끝없이 감성을 훈련하며 독자들과 책·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경향신문- 유인경 선임기자>

Thu Jun 05 2008 01:5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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