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오성홍기와 쇠고기 사이, 貞洞에서

신동민

오성홍기와 쇠고기 사이, 貞洞에서 덕수궁 돌담길에 닿아있는 정동(貞洞)은 구한말 조선,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지였다. 러시아 공사관이 위치했던 곳도 정동이오, 박정양, 홍영식 등 대한제국 외교관들이 활약했던 곳도 이곳이다. 그 때문에 ‘정동구락부’라는 말이 아직도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연인들의 고즈넉한 도심의 산책코스로 자리잡았지만. 이런 역사의 정동도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았다. 돌담길 지나 정동교회에도,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터, 구 배재학당 자리에도 신록은 돋아나고, 가지각생의 꽃들이 화사하다. 그러나 이 계절의 여왕의 시기에도 정동 넘어 광화문, 청와대 나라 안팎은 아직도 잔인한 4월의 악몽이 계속되는 듯 보인다. 특히 이번엔 밖이, 그것도 우리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밖, 중국과 미국발 쇼크가 대한민국의 중심부와 국민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강타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중국인들의 시청 앞 광장 집회과정에서 노출된 폭력 문제와 광우병과 관련, 각종 인체 질병 유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더 큰 문제의 내포 문제는 비단 상기 두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단순 그 단일 사건의 의미만으로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의 문제는 한중간의 외교적 대립, 민족주의가 동반된 양국간 국민감정대립으로 점화되고 있는 상태다. 후자의 사안은 원래 FTA와 관련, 쇠고기 수입 문제라는 원래의 통상의제를 넘어, 이명박 정부의 한미관계 설정 방식, 그리고 정부의 책임 있는 대국민 태도 부재라는 보다 복잡한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시청 앞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치 여기가 제2의 베이징인양 일사불란하게 오성홍기가 휘날렸던 모습이, 그리고 일단 보도 상으로는 미국에 사는 수지와 잭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도 먹지 않는다는 쇠고기를 우리 국민이 먹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전개될, 그리고 지난 약 100여 년 전 전개된 한국의 험난한 국제정치환경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는 점이다. 이른바 국제정치 약소 중진국의 고난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난의 국제정치, 약소국 국제정치사를 보다보면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수많은 약소국들의 고통과 수난, 반면 지혜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유럽대륙의 강대국 러시아와 독일의 전신 프러시아 사이에 위치했던 폴란드는 수많은 분할과 피지배의 역사를 반복했으며, 통일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도 19세기 중후반까지 프랑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열강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이 처참한 폐허 속에서 음악을 찾았던 곳이 바로 2차대전기 폴란드였으며, 청년 장교 수천명이 적군에 의해 생매장 당한 나라도 다름 아닌 2차대전기 폴란드다. 강대국들은 약소국에 영토 분할을 요구하거나 자국과의 동맹을 강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투사한다. 상대국 약소국은 자신의 안전,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이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시 약육강식의 세계와 같던 권력정치의 장을 지금의 한국에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한국을 약소국으로 분류하는 것도 무리는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신흥강국 중국과, 21세기 실질적 제국이라할 수 있는 미국의 힘과 잠재력이 원체 압도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비교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과 미국, 오성홍기와 쇠고기가 단지 그것이 아니다 근래 들어 중국의 호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 높다. 티베트 사태야 중국인들의 주장대로 중국의 국내문제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인정해 보자. 하지만 그 진압과정에서 전해지는 잔인성이나, 그 사태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배외주의적 공격적 민족주의는 성장하는 중국이, 동북아의 진정한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으로 자리잡았을 때, 주변국에 어떤 방식으로 투사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일사불란하게 하루의 성화 봉송 행사를 위해 수천명이 동원될 수 있는, 그리고 남의 나라 수도에서 2008년 4월 백주 대낮에 폭력시위까지 벌일 수 있는 대단한 잠재력을 갖춘 나라이기에, 2020년에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대중국 무역의존도 1위국가이며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정치적, 군사적 관련성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쇠고기 협상과 같은 시기에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는 가치, 전략, 평화추구라는 한미 새로운 동맹의 독트린이 제시되었다. 동맹의 원칙대로라면 한국군의 작전범위는 확대되고, 한국과 미국의 동맹은 테러제거 이면의 미국적 질서 구축에 더 크게 참여하게 된다. 당장 PSI, MD 참여 문제가 제시될 것이고, 북핵문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사이 다른 입장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큰 고민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100여년전 정동의 5월도 잔인했을까? 부동산도, 대운하도 중요하다. 그러나 잔인한 달 4월의 흩날린 오성홍기 밑에서의 쇠고기 협상은 마치 100여년전 갑신정변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청일전쟁이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처했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관파천의 슬픈 역사가 남아있는 정동에서, 2008년 4월 펄럭인 오성홍기와 쇠고기 수입 문제가 가벼이만 여겨질 수 없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덕수궁 돌담길의, 정동의 아픈 추억이 회상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약소국의 국제정치는 지도자의 지혜(prudence)가 발현되지 않는 한, 언제나 잔인한 계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졸업생 l 신동민 stoocom@nate.com

Sat Apr 19 2008 16:3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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