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신영미

안철수, “기업 규제만 풀고 감시 안할까 두렵다”

Wed Apr 30 2008 00:1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미 유학 마치고 귀국 앞둔 안철수씨 현지 인터뷰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안철수연구소(안랩) 이사회의 안철수 의장이 30일 한국으로 돌아온다. 회사 설립 10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엠비에이(MBA) 과정에 입학한 지 꼭 2년 만이다. <한겨레>는 학위과정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안 의장을 미국 현지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5월부터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와 안랩 최고학습책임자(CLO: Chief Learning Officer)라는 직함으로 일을 할 예정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그리고 밤잠을 설치며 아프게 깨우쳤던 것들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10년을 목표로 중소·벤처기업의 전문인력을 육성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지난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난 안 의장은 불과 이틀 전 녹록치 않은 학위과정을 마쳤다고 토로하면서도, 귀국 준비에 분주해 보였다. 평소 중소·벤처기업 육성 방안 제시와 문제점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이날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일로 ‘시장 감시 기능 강화’를 꼽았다. 그는 “감시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2천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소·벤처기업이 힘들어져,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국민들의 국외 이탈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시장감시 기능 죽으면 벤처·중소기업 힘들어 결국 빈부격차 심화대기업 거래관행 감시 잘못한 기업 일벌백계중기 인재풀 10년목표 전문인력 꾸준히 키울것 -얼마 전 카이스트 쪽에서 임용 소식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말부터 이야기 된 것이다. 업계 전체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 MBA를 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고. 경영자 과정을 맘 편히 들을 때랑 학위 과정을 해보면 교수님들 눈빛부터 달라진다. 학생들 잡으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시험도 치고, 프로젝트도 하고 괴롭힌다. 3년 전 퇴임 때 <한겨레>와 인터뷰를 보니 지난 3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동안 잘 한 것 같다. 친한 사람들한테 말하니 3년 동안 공부했으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예전 인터뷰를 보니, 지배구조와 벤처 육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미국에 왔다고 들었다. “연대기순으로 설명드리면 안랩 설립 9년째가 됐을 때, 그 해 연말이 되면 순이익이 100억원 돌파 하겠더라. 그 때 고민이 세가지 있었다. 첫번째가 기업지배구조이다. 민주주의 발전사를 보면 도덕적이고 실력있는 한 사람의 지도자으로 인해 (사회가) 빠른 발전하고 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라는 게 나약하고 부패하기 쉬워 3권 분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장법인도 CEO나 개인 자산이 아니고, 스테이크 홀더들이 많으면 견제가 돼야 한다. CEO 혼자서 마음대로 하다보면 부패하기 쉽고, 이사회라는 게 견제하게 해서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게 조직 발전에 좋다. 재벌의 경우, 오너가 이사회도 같이 장악하다 보니까 이사회가 유명무실했다. 사실은 그런 제도가 아니다. 기업의 그 다음 발전단계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처 기업도 코스닥 상장법인이 되면 그런 능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CEO 계속 하더라도 이사회 구성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배구조 개선은) 그전에, 미국와서 새롭게 한 건 아니다. 두번째가 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70년 역사를 지닌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것 창조하는 지식이 사회 자산화가 되는 것이 부러웠다. 대기업에 인수합병되면, 대기업 임원되면서 활동하고 벤처 캐피털리스트, 정치가가 되고 다양한 경험들이 사회 곳곳으로 파급돼서 사회적 자산으로 선순환이 된다. 한국 역사가 짧은 점도 있겠지만, 기업 무너지면 실패한 자산 경험을 제대로 못살린다. 세번째로는 안랩 뿐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5년 3월에 CEO 그만뒀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업계를 위해 도움을 주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 (란 의문이 들었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어서 성공시켰지만 이를 일반화 시킬 수 없다. 저변이 넓어져야 좋은 조언자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미국에 와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싶었다. “노 페인 노 게인.” 괴롭게 고생하지 않으면 실력 늘 수 없다. 연구원으로 가면 고생해서 공부 안할 것 같더라. 시험도 보고, MBA 과정에 들어갔다. 예전에 대학생 때, 잡지사에 전화해서 글 쓰고 싶다고 하고 원고 마감 날짜를 받아 놓았다 . 그런데 모르는 분야라 밤을 세워서 했다. 학위과정에 들어가야 제대로 하겠더라 싶었다. 학위 과정을 밟고 고생을 하니 지식이 쌓인 것 같다.” -그럼, 학생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나? “두 살 많은 친구가 있었다. 미국의 70 넘은 교수들한테는 나는 아직 어려 보인다.” -공부를 마친 소회는? “2년동안 공부를 하다보니까, 잘 한 것 같더라. 공부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 진정한 자기 실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썰물이 빠지면서 갯벌의 모양이 드러나듯이. 10년 동안 직접 경영을 해봤으니까 많은 부분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떤 부분은 배울 필요없단 생각 드는 분야도 있었고, 형편없는 분야도 있었다.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다른 벤처 근무자도 같으니까.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부분이 그렇게 형편없었나? “예를 들어 전략을 짜는 부분, 파이낸스, 마케팅 부분들. 기업 처음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몰랐더라.” -CLO로 돌아온다.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니 CLO더라. 직업으로 정의를 내리는 게 맞지 어떤 감투를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들을 가르쳐주는 것은 당히 의미있는 일이다. 안랩 내부에서도 실력에 대한 갈구가 많았다. 대학의 경우 전임교수나 초빙교수를 생각했었는데, 여러 대학에서 풀타임 교수 제안을 많이 했다. 대학원장 자리도 있었는데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의대, 경영대, 공대도 있었다. 요즘같이 전반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이 있고, 가치사슬의 처음 부분이 망가지는 데 나까지 의대나 경영대 가면 안될 것 같더라. 그래서 카이스트를 가기로 결정했다.” -카이스트에서 가르치게 되는 management of technology가 낯설다. “아이비리그 중에 펜실베이니아대(유펜)는 학풍이 틀리다. 다른 곳은 아카데믹한데 여기는 매우 실용적인 학풍이다. 전세계 비즈니스 스쿨 중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와튼스쿨이다. 거기 가서 보니까 공대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허브였다. 공대가 법대와, 비즈니스 스쿨과 연계된다. 인문대와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대학들이 경계가 분명하다. 엔지니어가 경영하려면, 파이낸스, 전략 등 의사소통 돼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일을 해야 한다. 엔지니어지만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경영자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언젠가 구글 취재에서 인상 깊었던 게 프로덕트 매니저의 경우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둘다 공부한 사람을 선호하더라. “아이팟을 보면 온오프 스위치가 없다. 그래도 한번 쓰면 메뉴얼도 필요없이 너무나 편리하게 다 된다. 엔지니어링 기술이 뼈속 깊숙이 있어야 그런 디자인 나온다. 현대에서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가 디자인이 아니라, 어떻게 동작하느냐가 디자인이다. 기술을 알아야 소비자들 마음에 맞는 게 나온다. 학문 융합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안랩에서 만들어낸 A자형 인재론과 비슷한 논리다. 어떻게 성과가 좀 나왔나?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는 거 아니냐란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꿈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달성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나 조직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가 지듯이 물러설 수 없는 경계선을 마련해준다. 여기에 의미가 있다.” -삼성 사태도 있었고, 지배구조에 관심이 있으시므로 할 말이 있으실 것 같다. “포스코 사외이사 하면서 많이 배웠다.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가 많이 배웠다. 또 대학가서 배웠다. 안랩 지배구조 개선하면서 사외이사 구성 비율을 50%, 감사위원회는 100% 사외이사로만 돼 있다. 그런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삼성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우리나라가 한번 바뀌면 매우 빨리 바뀐다. 북쪽보다 못살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가 없다. 삼성 사태 제목만 보고 전문 보지는 못해 자세한 판단은 힘들지만. 변화의 큰 계기가 될 것 같다. 다른 기업도 긴장하지 않겠는가” -전에 경영의 위기, 시장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 등 3가지 벤처 위기를 제시하셨다. “업계가 노력해도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외부환경이 있으므로. 그렇다고 외부 탓만 할 수 없다. 업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 나부터 해보자. 실리콘밸리에는 참 부러운 점이 많은데, 가장 큰 장점을 하나만 들자면,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엔지니어들이 많다. 초보 CEO는 실수들을 많이 한다. 엔지니어가 실수해도 마케팅, 파이낸스 등 각 분야에 전문가가 포진해 다른 데는 안 흔들린다. 한국은 CEO뿐만 아니라 다른 쪽도 깊이가 없다. 중소기업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데가 없다. 독학으로, 노력으로 실력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 경험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같이 실수하는 거다. 그래서 실패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바꿀 수 있게, 각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사람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10년 정도 보고 있다. CLO로서 활동해 인재풀 점차 늘어나면 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구체적인 교육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나? “교육 방법이나 시간들이 문제가 많다. 중소기업 사장들도 교육에 관심 많다. 큰 마음먹고, 교육 보내도 효용 있지 않은 게 제도권 교육이 대기업 위주의 교육이다. 단기간이라고 해도 3개월인데. 벤처는 (역할) 백업이 안되므로 단기 교육조차 보낼 수가 없다. 또 강의를 들은 뒤 (실생활에) 적용이 안된다. 큰 마음 먹고 교육 보냈는데 달라지는 게 없으면 안 보낸다. 결국 실력 안늘고 악순환이다. 가장 기본이 전략이다. 신입사원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생각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략이라는 게 뭐고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짜는지 감이 안온다. 시키는 사람도 잘 모른다. MBA 과정에서 이를 매우 오래 배운다. 내가 꼽아보니 필요한 것은 사흘 풀로 하면 되겠더라. 일주일에 하루해서 3주. 지금까지 기존 교육들이 이론만 가르치다 보니까 적용이 안됐다. 3분의 1 나눠서, 이론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엔 사례를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자기 일에 적용해 보는 것다. 한국 오가면서 안랩 직원들한테 교육을 시켜봤다. 컨셉트 테스트를 해보니까 되더라.” -그런 부분을 다른 회사 직원들도 들을 수 있나? “저는 대전에 있으니까. 학교 내에서 가능한지 아직 모르겠다. 또 3년 정도 떠나 있으니 국내 벤처 상황을 모른다. 가서 보고 해볼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하셨는데, 육성할 벤처나 웹서비스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참, 답답한 게, 미국같은 경우, 끊임없이 새 서비스 계속 생긴다. 한국에는 떠오르는 CEO가 없다. 5년 전에는 NHN, 다음 등 싹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5년 후가 안보인다고 이야기 했는데 전세계 경쟁 치열한 가운데서 어떤 아이템으로 이길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고. 나같은 경우 5년 전 있었던 싹이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민이다. 2천만명의 일자리를 주는 중소 및 벤처들이 건실해야 하는데, 그것이 국가에서 걱정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국가에서 걱정 안해도 잘 큰다.” -중소 기업, 벤처 기업 어려움 왜 심해졌을까? “벤처기업이 실패하는 원인은 경영의 위기처럼, 벤처기업 경영자와 각 분야 실무자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두번째,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 자본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 등이 있는데 이들이 부실하다. 대표자 연대보증 같은 제1금융권의 금융관행, 정부제도, 전문성 있는 아웃소싱 같은 게 그런 게 다 부실하다. 벤처기업은 조그만데 다 잘해야 한다. 세번째가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수익 창출해서 R&D 투자하고 그런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에서 공기업에서 (일거리) 다 가져간다. (벤처는) 부가가치 고려하지 않고 인건비만 계산받는 인력 파견 업체가 돼버린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런 구조는) 큰 덩치들이 잘 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네들에도 안좋다. 2천만명이 못 벌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어릴 때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해결될 기미가 안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가 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대기업들이) 비효율적이라도 인력고용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을 못하게 된 것이다. IMF 쇼크 이후로, 사회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 더 심해진 것 같다. 돈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게 매우 슬픈 현실이다. 감시자가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예전에 정부 고위 공직자 만났더니, 정부가 할 일은 산 중턱에 좋은 터 있으면 닦아서 평지로 만들고 도로 내고 청소원들 청소시키고 경찰로 하여금 감시시키고, 그러면 자기 돈 가지고 사람들이 들어와 장사를 해서 잘 된다. 그런데 (현실은) 창업 지원 자금만 빌려준다. 도로도 없고, 청소부 없어서 지저분하고, 깡패만 들끓으니 망하고 만다. 그게 참 좋은 표현이다라고 생각한다.” -기업인들 만나면, 규제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시장 감시기능이 제대로 안돌아가는 것 같은데? “작은 정부가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은,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규제 대신 감시 기능 강화하는 것이다. 정말 잘못한 애들한테는 일벌 백계를 해야 한다. 자유롭게 공명정대하게. 참여정부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규제 철폐가 감시 기능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감시라는 게 생색이 안난다. 실적이 안나타나는 것이다. 감시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 것에서 많이 힘들다 보니까 오히려, 규제 많이 해놓는 것 같다.” -어떤 분야에 감시가 필요한가? “대기업·공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행, 주식 시장에서의 시장 감시 기능. 코스닥 거의 형편없지 않나. 그런 게 최우선 순위다. 금융권에서의 리스크 관리 노하우, 리스크 관리 실력 등 금융권이 가장 중요하다. 대표자 연대 보증제도의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할지 모르고 기업가에 전가를 하게 되면 부담이 없어지는 거 아니냐. 감시하는 대신 규제 많은 것은 편하게 일하는 방식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게 (사회 발전에) 발목잡는다. 사회발전이 하향 평준화된다.국가도 그런 거 잘 못하면 사람들 다 해외로 갈 것. 국내에서 살게 하는 유인책 필요하다. 동기들이 한국 간다 그러면 안믿는다.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데 왜 굳이 갈라고 하냐. 그렇게 작정하고 온 거고, 그렇게 약속하고 온 거라 하루도 소비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다.” -여길 떠나기 싫지 않았냐? “여기 살면 편하긴 하겠지만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 제일 편한 선택은 안랩 경영하는 것이다.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게 만드는 드라이빙 포스는 세가지다. 의미있는 일, 그 자체 재미있는 일, 세번째가 잘 할 수 있는 일. 의사 그만둘 때도, 컴퓨터 바이러스쪽 분야는 저밖에 없으니까 정말 의미있는 일이었고 재밌는 일이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잘 할 가능성은 있었다. 한국사회는 워킹 모델이 매우 중요한 사회다. 한국 사람들은 개개인이 똑똑하다. 누가 하면 성공사례 많이 생긴다. 튀는 거 싫어한다. 대신 워킹 모델 만들면 의미있는 일 같다. 안랩 소프트웨어 성공 모델이 아니라 워킹 모델 만든 것 같다. 제가 존재함으로써 죽고 나서도, 제가 없을 때와는 뭔가 다른 면이 남았으면 한다. 제 이름이 남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삶의 흔적이 남았으면. 스파이더맨은 파워를 원하진 않았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한사람 두사람, 소문나서 사람들이 보고 있고 기대를 해 책임감도 생긴다. 제가 원하지 않는 책임감이지만 그게 싫으면 파워도 버려야 하고.” -소프트웨어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요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예전에 디지털 전도사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명을 만났는데 인터넷이나 디지털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 진짜 모르더라. 그런데 내용을 아는 거라고 생각한다. 용어만 안다고 아는 거라 생각한다.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면 안듣는다. 의사결정권자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줄 모른다. 하드웨어 중심이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다른 나라 아이티 구조와 다르다. SI쪽 보면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게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자리 못잡게 만드는 거다.” -안랩에서 제품도 서둘러 발표하고, 구조개편도 있었다. 경영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결과 나온 다음에 이야기하는 게 낫다. 우리나라는 말이 너무 많은 나라라서 나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잇따른 보안 사고에 할 말이 많으실 것 같다. “마이크로 레벨로는 안보이는 게 매크로 레벨에선 피해갈 수 없다. 그게 통계의 무서움이다. 사람도 차도 서로 안 무서워한다. 주변에 보면 아무도 다친 사람 없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발생 세계 몇 위다. 보안은 아이티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필수 비용이다. 우리나라는 보안 예산 전체의 1% 안된다. 마이크로 하게는 사고가 안난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1천만명 정보유출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대기업 편향의 정부를 우려하셨는데, 혹시 새 정부에 강력하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 “보수, 진보도 웃기는 거 아닌가. 누구 편도 아니다. 작은 정부라고 하면 규제 풀고 감시 강화하는 것이다. 혹시나 규제만 풀고 감시는 안할까봐 그게 두렵다. 그러면 또 이야기 해야 한다. 가장 두려운 게, 잘 돼나 봐라 5년 후에 보자 이러면, 국민만 피곤한 거다.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고. 국민이 살아야 하니까. 내 주장 계속 이야기한다. 99년에 벤처기업 95% 망한다고 말해서, 벤처하는 사람이 후배들 고생시킨다고 욕도 많이 들었다. 99년엔 벤처는 성공의 보증수표라는 생각 있었다. 미국은 1%만 성공한다는데. 걱정이 많이 됐다. 경고하면 투자 신중히 할 것 아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했는데 평생 들을 욕을 다 먹었다. 또 주가가 상승해서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3개월 뒤부터 주가가 무너졌다. 당시 인터뷰에서 2000년에 세가지 일 생길 거다라고 말했었다. 아직 풀텍스트 그대로 있다. 금융사범 생긴다. 투자자들 중에서 망하는 투자자 생긴다. 세번째는 코스닥이 하강 곡선을 그을 거다. 2003년, 이헌재 부총리가 주재한 회의 말미에 벤처기업 95%가 망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러더라. 나한테 욕했던 사람도 그에 맞장구쳤다. 그런데 누가 처음 이야기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 그래도 그때 보람을 느꼈다. 아,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 느리긴 하지만 조그만 힘으로 바뀔 수 있더라. 내 발언의 가치가 있더라.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은 워킹 모델 만드는 일과 사람 생각 바꾸는 일이다.” -지금 다급히 막고 싶은 게 있다면? “시장 감시기능 강화. 그래서 끊임없이 발언한다. 와이투케이, 99년 벤처 성공가능성 희박, 인터넷 소프트웨어 중요성 등 이야기 해왔다. 사람들은 밥그릇 지키기 위해 이런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발언은) 윗선 건드리는 거고. 그런 발언은 매출하고 상관없이 이야기 하는 거다.” -시장 감시기능이 안되면? “감시 기능 안되면, 중소벤처 더 힘들어지고 중산층 무너지고 빈부격차 심화된다. 국민들 더 좋은 조건의 나라들로 떠나고.” -여러가지 관행 중 대기업 위주 외에 부딪혔었던 문제는? “내부의 문제도 많다. 실력 기르는 일 힘들다. 내부에서 잘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외부 탓하면 안된다. 사업 시작할 때, 알고 들어온 건데. 이런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 기업은 인프라의 도움 바라기 이전에 서바이벌 하는 능력 기르는 게 필요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좀더 (시장이) 정상적이면 더 잘 될 텐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서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인상적이었다. 또 기대반 두려움반 자신의 경계선을 넘을지 고민한다는 이야기도. “매일매일 경계선에 있다. MBA프로젝트 다 해갈 수 있을까. 가면 잘 할 수 있을까. 도와준다고 이야기 했지만 잘 할 수 있을까. 도와주는 건 재미없다. 실제로 실행은 그쪽 경영자다. 판단을 도와줄 수 없다. 그게 맞을진 안해 봐서 모른다. 저 혼자서 선을 그어 놓는데 넘고 싶을 것 같다. 저도 글을 쓰다보니까, 사람은 죽어도 글을 남긴다. 그런 것을 보면 역사의식이 중요하다. 글도 그렇고 인터뷰도 마찬가지고. 역사의식을 가져야 나중에 부끄럽지가 않다. (교수직은)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제가 사업만 한 사람은 아니고 끊임없이 학교에 있었다. 초6년 중고6년 의대6년 박사과정5년 석사과정2년 MBA2년으로 합이 27년이다. 거의 학생으로 지냈다. 책도 쓰고, 아카데믹한 상태로 CEO를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카이스트였나? “(아까 말한대로) 의대나 경영대보다는 공대로 가야겠다 싶었다. 대전 쪽에 여러 기술이 많은데 상업화나 사업화에 시행착오 많다고 하기에 조금이나마 이를 줄이기 위해서다. 사실, 일하는 건 좋아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여러 자리 가야 할 곳이 있다. 대전과 서울 오고 갈 예정인데, 오라 그러면 대전에 있다고 할까 생각 중이다(웃음).”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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