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대법관 오코너와 김지형

신영미

#2003년 6월23일. 미 연방 대법원은 미시간대 로스쿨에 지원했다 떨어진 백인들이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정책)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미시간대의 조치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자신을 뺀 나머지 대법관 8명의 의견이 4 대 4로 갈렸을 때 합헌 쪽에 손을 들었다. #2008년 4월11일. 대법원 1부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 대한 항소심의 사회봉사명령이 부적절하다며 양형을 다시 결정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9월 항소심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8400억원 출연과 강연·기고를 사회봉사명령으로 부과했다. 상고심 주심인 김지형 대법관은 사회봉사는 ‘일 또는 근로 활동’의 의미인 만큼, 금원(돈) 출연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유쾌, 상쾌, 통쾌. 5년간의 시간 차, 태평양을 사이에 둔 거리 차는 있지만 두 판결은 ‘못 가진 자’들의 가슴 속 막힌 곳을 뚫어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비주류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데서도 그렇다. - ‘비주류의 힘’ 유감없이 보여줘 - 1981년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에 임명된 오코너는 2005년 은퇴할 때까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불렸다. 그러나 법조인으로서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스탠퍼드대 로스쿨 졸업 후 로펌 취직에 번번이 실패했다. 변호사가 아닌 법률담당 비서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법관으로서 오코너는 온건보수 성향으로 평가받았지만 낙태와 어퍼머티브 액션 등의 사안에서는 사회적 약자 입장을 대변했다. 소수자·비주류로 살아온 삶의 궤적이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정몽구 회장 사건의 주심을 맡은 김지형 대법관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판결로 노동법의 새로운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법관이다. ‘기업이 이직을 막기 위해 부당한 조건을 제시해 근로계약을 맺었다면 무효’라는 판결 등이 그것이다. 김 대법관도 오코너와 마찬가지로 주류는 아니었다. 그는 대법관 14명 중 유일한 비 서울대(원광대) 출신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질의도 받았다. 스스로 “법원에서 두드러지지 못하는 쪽이었다. 힘이 부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이 된 후 비주류의 힘을 보여줬다. 2006년 주심을 맡은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변경을 허용했다. 성전환자에게도 행복 추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판결 취지였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김현철씨의 사면 정보를 공개하라고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사면권 남용을 견제할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며 민변의 손을 들어줬다. - 대법관들 ‘다양성의 힘’ 기대 - 김 대법관이 정 회장에 대해 내린 판결은 특별히 상찬받을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이미 ‘황당한’ 사회봉사명령이 나왔을 때부터 ‘재벌 봐주기’ 논란이 거셌던 터다. 법률가들의 법리 논쟁을 넘어 시민적 상식의 문제가 됐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의 판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정치권·재벌·법조계가 구축한 기득권의 성채가 워낙 견고하기 때문이다. 김 대법관이 주류 기득권에 포섭되는 안락한 길 대신, 고독하되 자유로운 비주류의 길을 택한 데 경의를 표한다. 최근 몇 해 간의 대법관 교체로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등 그 길을 함께 걷는 대법관들이 늘었다는 소식도 반갑다. 비주류의 힘을 넘어서는 ‘다양성의 힘’을 기대한다.- 경향신문 김민아 국제부차장 (2008.4.14)

Mon Apr 14 2008 02:2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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