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통신원

신영미

다큐멘터리 ‘식코’의 교훈 

Mon Apr 14 2008 02:21: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미국의 백수청년 아담은 사고를 당해 무릎이 10㎝쯤 찢어졌다. 그는 실과 바늘을 들고 자신의 벌어진 살을 직접 꿰맸다. 높은 병원 문턱을 넘어설 수 없었던 탓이다. 목수 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목재 절단기에 왼손 중지와 약지의 마지막 마디가 잘려 나갔다. 중지를 봉합하는 데 드는 비용은 6만달러, 약지는 1만2000달러. 결국 릭은 약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개 다 봉합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美 의료시스템 어두운 현실 포착 - 열흘 전 국내에서 개봉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에 등장하는 사례들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미국 의료시스템의 어두운 현실을 생생하게 비쳐준다. 무어의 카메라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은 비단 실업자와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이른바 중산층이라 불릴 만한 이들 중에서도 순식간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래리와 도나 부부가 그렇다. 남편 래리는 엔지니어, 아내 도나는 지역신문 편집장. 이 정도면 그래도 웬만큼 사는 축에 들 법하다. 부부는 자식 여섯을 낳아 대학까지 가르친 다음 결혼과 동시에 분가시켰다. 하지만 래리가 심장병에, 도나가 암에 걸리면서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쇄도하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부부는 결국 직장을 잃고 집을 날린다. 남은 것은 승용차 두 대에 옮겨 실은 ‘가난한’ 이삿짐뿐. 콜로라도 덴버의 딸네 집에 더부살이하러 들어온 날, 아내 도나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식코’는 돈이 없어 치료받을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막대한 치료비에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만 카메라에 담아내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감상적 다큐’의 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다. 무어의 시선은 ‘왜 이렇게 됐는가’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두 개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혹자들이 비판하는 ‘정치적 선동’의 차원에 도달하며, 반대편에 선 이들로부터 ‘악의적’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음모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영화는 1971년 2월17일 백악관의 닉슨 부통령 집무실을 보여준다. 흑백 화면이다. 닉슨은 책상 위에 두 다리를 턱 올려놓고 내무담당 보좌관 에일 리크먼(그는 나중에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수감됐다)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내용인즉, 민영기업이 운영하는 새로운 의료제도에 대한 것. “의료정책에 관심없다”며 심드렁해 하던 닉슨은 ‘기업의 이윤 창출’이라는 대목에 바짝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다음날 새로운 의료정책의 ‘비전’을 선포한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민간의료보험의 출발이다. 이후의 과정은 정치권력과 보험회사의 결탁이었다. 보험회사는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정치인들에게 거금을 뿌려댔고, ‘검은 돈’을 챙긴 이들은 법안을 강화해주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은밀한 손길이 정치권력에만 뻗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의료 전문가’들을 고용해 보험금 지급거절 통지서에 서명하게 했고, 실적이 우수한 전문가들에게는 두둑한 보너스를 던져줬다. 수십년에 걸쳐 비리가 구조화되는 동안 가끔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빈 자리는 또 다른 전문가에 의해 순식간에 채워졌다. 우리는 어떤가. 다행히도 한국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국민의료보험’에 가입하며, 한국에 개설된 모든 의료기관들도 가입하게 돼 있다. 이 ‘당연지정제’ 덕택에 국민들은 어떤 병원과 약국에서든 똑같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 우리 의료제도의 갈길은 어딜까 - 한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9일 선거에서 승리해 ‘과반’의 모양새를 갖췄으며, 국회는 보수의 손에 장악됐다. 또 같은 날 보험업계는 국민들이 민영 의보를 오해하고 있다며 해명에 나섰다. 뭔가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분위기다. 과연 우리가 갈 길은 의료제도의 ‘우향우’일까. 미국식 의료제도에 절망한 무어의 카메라는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와 쿠바의 의료시스템에 앵글을 맞춘다. 그는 거기서 병든 자를 자본과 권력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는 ‘사회주의적 미덕’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탄한다. “과연 우리는 뭐가 잘못 됐기에 저러지 못할까”라고. - 경향신문 문학수 문화1부장 (2008.4.14)

(06143)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322, 9층  TEL. 02-508-2168 FAX. 02-3452-2439 

COPYRIGHT 2019 ALTWELL MINCHO SCHOLARSHIP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