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이야기

죽음

우보연

죽음 K는 지금 몇 년 전 아울렛 매장에서 산 검정색 정장을 옷장에서 꺼내고 있다. 세일에 세일을 해서 정가의 20%도 안 되는 가격에 산, 무난한 스타일의 검정색 정장을 K는 장례식에 갈 때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샀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이 세상을 떠나는 이시기에 무난한 스타일의 검정색 정장 한 벌쯤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이다. K는 조금 전 친구 B의 죽음을 알린 G의 전화를 받았다. B의 전화가 왔을 때 K는 받지 않으려고 했었다. 취업을 못해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G가 또 돈을 꿔달라고 전화를 했을까 싶어서 K는 처음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을 때, 이번에는 받을까 말까 조금은 망설였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지금까지 G에게 꿔준 돈이 자신의 한달 월급에 맞먹는다는 사실을 속으로 다시 되새기면서 말이다. 근데 전화벨은 또 울렸다. K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신 약간은 방어적인 목소리로, 돈이 없다는 것을 먼저 선수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근데 뜻밖에 G는 친구 B의 죽음을 알렸다. 에엥 B가 죽었다니? 왜?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가지고 나오다가 죽었어. 자세한건 와서 설명할게. 빨리 여기로 와라.G는 B의 죽음에 대해서 삼각김밥이라는 힌트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K는 가만히 B를 추억해보았다. 고시공부한다고 몇 년동안 고시원에 틀어박혀 친구들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던 B를 얼마 전에 1차에 합격했다며 친구들 앞에 나타났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2차만 합격하면 돼’ 라며 의기양양했던 B의 미소도 기억해낸다. 근데 죽음이라니. 뭔가 석역치 않다. 더군다나 삼각김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장례식장에 도착해서 K가 먼저 생각한건 검정색 정장을 잘 샀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이 하나같이 검정색 잠바나, 검정색 자켓을 겨우 껴입고 온데 반해 자신은 검정색 정장으로 깔끔하게 입고 온 것이 장례식장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B의 영정 앞에 절을 하고, 조의금을 내고 난 뒤, K는 무엇인가 의혹에 둘러싸여 있는 B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G에게 들을 수 있었다.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던 B는 점심때를 한참 넘겨서 자신을 원망하는 위장의 신호를 듣고 고시원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하나를 샀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가려고 나서다가 마침 옥상에서 뛰어내린 남자에게 깔렸던 것이다. K는 궁금해졌다. B를 깔아뭉게고, 살아남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하필 그 때 왜 그 남자가 뛰어내렸던 것일까? 그 남자는 B의 장례식장이 있는 같은 병원에 멀쩡히 살아서 입원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짜고짜 K는 그 남자의 병실로 향했다. 솔직히 K는 그 남자가 반쯤은 죽어있을 줄 알았다. 한쪽 다리가 없어졌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반쯤은 죽은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근데 그 남자는 멀쩡히 눈을 크게 뜨고는 병실에 있는 TV를 보고있었다. TV속에서는 동물의 왕국이 방송되고 있었다. K는 약간 화가 났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 남자에게 말했다. 제 친구 B가 당신의 죽음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괜찮습니다.몸은 괜찮습니까?보시는 봐와 같이 아주 멀쩡합니다.근데 왜 그 때 뛰어내렸습니까?.........죽으려고요.죽으려고요?..........예.K는 뭔가 울컥 올라왔다. 그러나 숨죽이고 다시 물었다.그럼 제 친구 B가 방해한 일을 언제 다시 할 건가요?남자는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아니 왜요?두렵기 때문입니다.무엇이 두렵습니까?죽음. 죽음이 두렵습니다.K는 다시 묻지 않았다. 남자는 멍하니 계속 TV를 보고 있었다. TV속에서는 얼룩말을 사냥하고 배를 채우려는 사자에게 총을 겨누는 사냥꾼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K는 남자가 바라보던 TV에서 시선을 돌려 거울 속에 비쳐지는 자신의 검정색 정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나올 때는 위를 잘 봐야 되겠다고 말이다. 죽음은 두렵기 때문에... 글 l 우보연 cinewoo@naver.com

Wed Oct 31 2007 18:1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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