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정상미

도넛은 알고 있다!

Wed Oct 31 2007 06:2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도넛은 알고 있다! 바쁜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어깨 위로 달빛이 와 닿는다. 누렇고 투박하게 내려앉은 것으로 보아 그것은 어쩌면 가로등 불빛인지도 몰랐다. 그래, 달빛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리고 그 빛은 그녀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손에 들린 작은 상자 끝에 부서진다. 작은 상자에는 은근한 달빛 따위는 부럽지도 않을 법한, 알록달록 예쁜 글씨가 새겨져있다. 그 내용물을 익히 짐작하게 만드는 그 글씨는, ‘커피? 도넛!’을 판다는, 도넛으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의 이름이다. 날은 제법 쌀쌀하다. 그녀의 입가에는 훈훈한 미소가 걸려있다. 바람이 싸늘해지면 돌아오는 것은 붕어빵만이 아니다. 나도 당신도 그녀도 겪어낸 대학 입시철이 함께 돌아온다. 실상 누군가는 수험생으로, 누군가는 수험생의 부모로, 학교선생으로, 학원강사로, 수험생 욹어먹는 과외선생으로, 독서실 주인으로, ‘전국민 입시 올인 총동원 체제’가 일상인 이 땅에 입시철 아닌 시절이 언제겠냐만 지금은 입시라는 단어의 싸늘함이 바람의 싸늘함보다 더 매섭게 다가오는 그런 계절인 것이다. 입시를 이미 치러낸 그녀에겐 올해에 입시를 치러야 하는 남동생이 있다. 내일은 녀석의 수시전형 시험이 있는 날이다. 내일 시험을 볼 녀석을 위해 그녀는 무엇을 주면 그가 좋아할까를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 알록달록 도넛상자를 선택한 것이다. 집에 도착한 그녀가 상자를 내밀며, “시험 잘 봐! 이거 먹고 힘내! 내일 가져가서 같이 시험 보는 친구들이랑 나눠 먹고.”라고 이야기한다. 알록달록 상자를 받아든 동생의 입가엔 훈훈한 미소가 걸려있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까지 읽다보면 당신의 입가에도 훈훈한 미소가 걸릴 것이다. ‘꽤나 다정다감한 오누이로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글쓴이를 향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이렇게 외치겠지, “So What?” 이게 대체 어쨌다는 말인가? 글쓴이는 도넛을 싫어하나? 글쓴이는 입시생 시절에 도넛 하나 받지 못했나? 글쓴이에겐 도넛을 줄 언니나 누나가 없나? 아니, 그보다도 사실 글쓴이는 이번 달 기사감을 도저히 찾지 못해 허벅지를 쑤시다가 이 따위 평범하기 그지없는 상황으로 지면을 메우려는 건가? -오~ 요거 요거, 묘한 설득력 있네!- 당신이 이런 물음표들을 달기 전에-아니, 물음표는커녕 당신은 여기쯤 읽고 다른 메뉴를 클릭할지도. 안녕. 다음 호에 만나요~ 그땐 더 상콤한 글을 쓰도록 할게요! 잇힝!-왜 그녀가 입시생 동생을 응원하는 선물로 그 알록달록 도넛을 선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물음표를 달아봤으면 한다. 그 선택이 행해진 것은 도넛이 간단한 간식거리로도 좋고, 동생이 나름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가게가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더 심오한 이유라는 건, 어쩌면 ‘구색’에 있는 게 아닐까? 오누이의 미담 앞에 웬 ‘구색’이라는 척박한 단어? 당신은 지하철이나 사거리에서 본적이 있을 것이다. 흔한 말로 ‘짝퉁’이라 일컬어지는 이 프랜차이즈의 ‘유사 도넛’을. 그것은 비슷한 알록달록 상자에 담겨 'donuts'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한 머쓱한 이름을 달고-흡사 언뜻 보면 ‘커피? 도넛!’을 파는 ‘원래 도넛’ 프랜차이즈 상표처럼 보인다.- 반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원래 도넛’ 가게가 있었던 것처럼 ‘유사 도넛’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음식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그 도넛도 간단한 간식거리이며 동생이 나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유사 도넛’을 들고 걸어가는 그녀의 입가에도 똑같이 훈훈한 미소가 걸릴 수 있었을까? 과연 동생에게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건네 준 ‘유사 도넛’ 상자를 받아든 그녀의 동생 역시 과연 매양 기쁘고 훈훈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한번쯤 상자와 누나를 번갈아보며, ‘누나는 내가 내일 시험 본다는데……. 차라리 그냥 사오지를 말지.’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유사 도넛’ 한 상자에 그녀가 동생에 대해 갖는 ‘애정의 진정성’이 의심받지는 않았을까? 역으로, ‘원래 도넛’ 한 상자가 ‘애정의 진정성’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딱히, 그녀의 남동생이 ‘된장남’ 이거나 막 되먹은 인간이라서가 아니고, 그녀가 지나치게 소심해서도 아니고, 이 오누이가 ‘유사 도넛’ 따위에는 눈길 한 번 안 줄만큼 잘 사는 사람들이라서도 아니다. 당신이 그녀라도 혹은 그녀의 남동생이라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단지 그들은 가슴 속 훈훈함마저도 거대 프랜차이즈 자본의 알록달록 상자에 담아 전해야 하는, 그래야 구색에 맞는, 그렇지 않으면 그 훈훈함을 시험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도 당신의 누나도 당신의 남동생도 그녀고 그녀의 남동생이다. ‘얼래? 이거 뭐 ‘달빛이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해서 전혀 신기할 것 없는 미담을 쏟아놓더니 이젠 뭐 거대 자본이 어쩌구 어째? 이러다가 무덤 속 마르크스 영감이라도 살아 나오갔구만! 소련 망한지가 언젠데!‘ 라는 생각을 그대가 하신다면 걱정은 접어두시길. 마르크스 영감님에 대해서는 이 자가 잘 알지 못하여 그대에게 그의 긴 말을 전할 수는 없을 거이외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선택권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양식이라는 것은 과연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우리의 수많은 행위들, 연인에게 전하는 사랑의 속삭임은, 부모님께 보일 수 있는 사람구실은, 입원한 친구에게 보일 수 있는 성의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무엇으로, 더 정확히는 ‘어떤 기업의 무슨 상품’으로 외화 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자본에서 저 자본으로 저 자본에서 이 자본으로 뛰어다니는 일일 뿐이다. 그나마도 각종 ‘마일리지 카드’, ‘제휴 할인 카드’들의 존재로 우리의 선택은 더 제한되고 보다 더 끼리끼리 기업들이 더 친해지고 함께 잘 살게 될 수 있게 하는 사랑의 메신져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그대들의 절반정도가 아까 남은 일그러진 표정을 더 강렬히 쏟아낸 뒤 컴퓨터를 꺼버릴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의 문제제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할 필요조차 없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일상이 이런 형태로, 이러한 자본과 자본 사이의 뜀박질로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자본에 포위당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 프랜차이즈의 도넛으로 수험생 동생을 응원한다고 해서, 거대 기업의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부모님께 한 턱 낸다고 해서,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언제부턴가 캠퍼스의 한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한 유명 브랜드의 커피를 사 마신다고 해서 일일이 반성문을 쓸 필요는 없는 세상이다. 그런 일들에 대해 반성문을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많은 양을 써야 할 뿐더러, 이제는 ‘고작’ 그런 일들로 반성문을 쓸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이런 삶의 양식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내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마음을 시험당하기까지 하는 현실인 것이다. 도넛은 알고 있다. 무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내 사랑의 진정성을! 물론, 자본과 단절된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당신도 나도 돈을 벌고 돈을 쓴다. 자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생활에 대해 상상해 보자면 헐벗은 채로 땅바닥을 구르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자본주의 타도!를 외칠 수도 없고 아마 외치는 사람도 딱히 없을 것이다. 필요한 건 거대자본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아니라, 왜 이럴 수밖에 없는가? 왜 당장 돈을 내지 않으면 이 싸늘한 날씨에 가서 앉을 곳조차 없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것은 왜일까. 하루에도 수없이 이름 있는 자본이 선사하는 ‘구색’에 따라 나의 ‘진정성’을 ‘조절’하면서, 또한 타인의 ‘진정성’을 ‘평가’하면서, 오가는 상품들 사이로 자타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 일상 속에서 저 알록달록 도너츠 상자가 과히 예뻐 보이지만은 않는 것을 어째야 할까. 그리고 앞서 던진 질문들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 걸까. 더 혼탁한 헛소리들이 기어 나오기 전에 와구와구, 바바리안 크림 필드를 입속에 구겨 넣는다. 여기서 돌발 퀴즈! 방금 입속에 구겨 넣은 이 도넛은 ‘알록달록 도나스’일까? ‘길거리표 유사 도넛’일까? 후후후, 도넛은 알고 있다. ps. 이번 기사는 미천한 소견을 ‘구색’에 맞게 포장질하다 보니 유독 우왕좌왕 어설프네용. 기자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하신다면...그대에게 살포시 전하고픈 건 ‘알록달록 도나스’ 한 상자? 키득키득. 결론은 태클 대환영이라는 겁니다. 도나스도 대 환영! 키득키득. 민초7기 서울대l 정상미 aporia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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