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해외통신

손은혜

내 책상 서랍속의 동화-3기 손은헤

Mon Nov 01 2004 02:2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내 책상 서랍속의 동화-3기 손은헤 - 젊은 날의 diary in Ghana- "야, 하나도 안 탔네. 가서 뭐하다 왔어?" 한국에 돌아온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왜 하나도 안 탔냐는 말. 정말 하나도 그을리지 않은 건가. 거울 앞에 서서 이리 저리 얼굴을 살펴본다. 하긴, 그렇게 양산을 쓰고 다녔으니, 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가만 생각해 보면, 참 쑥스러운 일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날 동안 하루도 양산을 손에서 떼 놓은 일이 없었으니. 복잡한 시장 통로를 지날 때조차 양산을 쓰고 있었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니, 내가 한 일이지만 참 심했다 싶다. 어쨌든 나는 그 덕분에 하얀 피부를 그대로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복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 나는 오브로니도, 컴퓨터 학교 선생님도, 주일학교 선생님도 아닌, 한국에 있는 23살의 대학생, 우리 집의 막내딸로 돌아왔다. 적응력 좋기로 말하자면 둘째라면 서러워할 나이긴 하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얼떨떨했다. 복잡한 거리도, 지나치게 흰 사람들의 피부색도, 휘황찬란한 거리의 네온싸인도… 처음엔 너무 많이 낯설고 신기했었으니까. 가나라... 내가 정말 가나에서 5개월 동안 살다 오긴 한 건가. 바로 몇 주 전의 일인데 가나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거리를 돌아다니던 염소들은 어디에 있는 건지. 그 많던 흑인들은 어디로 간 건지. 흙바닥 초라한 가나의 학교 건물들은 어디로 간 건지. 나는 아직도 한국 사회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너 사실은 아프리카 갔다 온 거 아니지?' 흰 피부를 보며 어디 갔다 온 거냐고 놀리는 친구들의 말에 정말 꿈을 꾼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가나에서 쓴 일기장, 거기서 찍었던 사진들. 정말 열심히 생활했던 것 같긴 한데. 일기장을 이리 저리 뒤적이며 나는 다시 가나를 생각해 본다. 내가 주연을 맡은 '손은혜의 인생' 이라는 짧고도 긴 드라마 한 편, 그 속에서 가나는 작고 특별한 단막극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3주째. 나는 컴퓨터 앞에서 그 단막극을 다시 재생시켜 본다. 『가기로 결정한 이상,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 일진데, 자꾸만 왜 가느냐, 안가면 안 되느냐 묻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그로 인해 잠시나마 흔들리는... 내가 한심하다 -3월 2일』 학교를 휴학하고 국제자원활동을 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도대체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느냐 묻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취업 준비를 하든, 고시 준비를 하든, 영어 공부를 하든. 뭔가 '실질적으로 네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충고와 함께... 자원활동지가 아프리카로 결정된 이후에는, 처음엔 내 결정에 찬성하던 친구들까지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입장이었다. '이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데…' 라는 말로 말꼬리를 흐리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딱히 내 마음을 설명할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볼수록 나는 정말 가나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아프리카라는 공간은... 어찌됐든 지구상에서 가장 못 사는 대륙이므로, 그 만큼 나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디를 가든, 나의 희소가치가 높은 곳에 가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 곳에는 분명히 나 같은 허접한 자원봉사자라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을 텐데. 좀 더 고생을 한다 하더라도 한번쯤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론, 복잡한 서울과 그 속에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들, 고민스러운 여러 일들, 직접 실천하는 것 보다 책상머리에서 앉아, 책 읽고 입으로만 토론하기에 익숙한 나라는 사람의 가식으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나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나는 그렇게 도망치는 마음 반, 아프리카에 이끌리는 마음 반으로 가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교재 만들고, 접수받고, 채점하고, 졸업식 준비하고... 나는 작은 학교의 말단 행정직원이 된 기분이다. 어서 빨리 내가 가르칠 학생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4월 27일』 찌는 듯한 더위와 거리를 가득 메운 흑인들. 지저분한 거리와 그 속을 헤매는 염소떼들. 가나에 처음 왔을 때의 낯설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낫지 않느냐 스스로를 위로하려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론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똑같은 거라며 애써 두려움을 없애보려 했지만, 말라리아며, 찌는 듯한 더위. 상상만 했던 것들이 내 눈앞에 와있다는 사실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는 나를 다시금 긴장하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인간의 적응력은 실로 위대한 것인 것 같다. 도저히 익숙해 질 것 같지 않던 불볕 더위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던 가나 음식들도, 거리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오랫동안 보아온 것처럼 익숙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아프리카, 가나에서의 삶... 언제나 특별하고 새로운 일들로 가득할 것이라 믿었던 이 곳에서의 삶 또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일상들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있는 SAM 컴퓨터 학교에서 한국인 자원 봉사자로서의 일상을 살아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9학기가 중반을 지나 마무리 단계에 와있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100여명의 학생들이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었고, 우리는 5월부터 시작하는 10학기 째부터 직접 수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여러 종류의 잡다한 학교 일들을 하며 지냈다. 9기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다음 학기 접수를 받고, 교재를 만들고, 9학기 졸업식과 10학기 입학식 준비를 하는 등. 작은 학교의 행정직원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약간은 지루한 4월을 보내면서, 나는 항상 다음 학기에 내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곤 했었다. 어떤 사람들일까,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있을까. 정말 잘해줘야지.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가 친구가 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테다. 뭐 이런 유의 결심들을 하게 될 때면 나는 항상 내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즐거운 예감에 설레곤 했었다. 이런 저런 계획들을 마음속에 그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 어서 학생들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 반, 조금이라도 더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이 더디게 갔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4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5월 3일. 10학기의 입학식과 함께 나는 정식으로 이 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하루 종일 수업을 하니까 이제는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다. 휴,,. 무지하게 힘들구만.. 내가 아프리카까지 와서 뭐하고 있는 거지. 허허. 이 사람들 때문에 웃고, 이 사람들 때문에 우는 나를 본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6월 23일』 처음에는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영어로 말하는 것도, 컴퓨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학생들이 다들 나이가 나보다 한참은 더 많다는 사실도. 하루에 네 타임이나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는 왜 그리도 떨리고 자신이 없었는지...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떠나온 자원활동인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지... 긴장된 모습으로 하루하루 식은땀을 흘리며 수업을 '헤쳐 나가고' 있는 나를 학생들은 늘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누가 학생인지, 누가 선생님인지 얼핏 봐서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교실. 난생 처음 컴퓨터를 배우는 학생들과, 역시 난생 처음 컴퓨터를 가르쳐 보는 외국인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 그렇게 함께 웃고, 울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하루 공부해 나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학생들과 나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SAM 컴퓨터 학교의 작은 교실. 그 속에서 50명의 학생들과 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워드며 엑셀이며 파워포인트며.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는 학생들 앞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안고 쓰러지는 흉내를 내는 나에게, 학생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곤 했었다. 컴퓨터 화면 앞에서 마우스를 잡고 땀 흘리며 씨름해 나가면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들이 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다. 더블클릭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던 학생이 멋진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의 감동이란!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 내가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정말 행복했다. 학생들과 웃으며 수다 떠느라 한 시간 내내 수업도 안하고 함께 놀았던 기억. 시험 문제가 어려웠다며 화내는 학생들 때문에 수업 중간에 울음을 터뜨린 나를 보고는 다같이 울음을 터뜨려 눈물바다로 수업이 끝난 날의 기억. 가르치며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외국인 선생님과 가나인 학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밥 먹고, 산이랑 바다로 소풍도 가고, 옷이랑 신발을 사러 시장에 가기도 하고, 책이 너무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함께 도서관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정이 드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는데... 속으로 불안하게 되뇌이면서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제어하고 싶지 않았다. 휴일마다 마음에 드는 학생들에게 '이번 주에는 이런 곳에 가보고 싶은데..' 은근슬쩍 말꼬리를 흐리며 목적지에 동행해주기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다가서거나, 사랑을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다가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SAM학교에서의 한 학기를 학생들과 함께 즐거이 보내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도, 학생들도 조금씩 커나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졸업식, 정신적 공황상태. 정말 바쁘다. 이제 정말 끝이 나가고 있는 것일까. -8월13』 그리고 드디어 학기말이 되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채점을 하고, 졸업장을 만들고, 졸업식 준비도 하고. 몇몇 학생들과 함께 가나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여기 저기 가나에서 만났던 한인들에게 인사도 하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계속되었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가야할 곳들도 많아졌다. 이미 내게 있어 참 많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여러 친구들에게 후일을 기약하기 힘든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때로 참 많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마무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한 명씩 올라와 졸업장을 받는 것을 보는데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내가 가르쳤어요, 내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 우리 계속 연락하자고... 이런 저런 약속들과 다짐들로 졸업식은 정신없이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4일, 나는 바로 가나를 떠났다. 이별의 과정은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가나를 떠나는 건가. 3월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순간. 그 모든 날들이 합쳐져 가나에서의 나의 날들이 되었다......떠나기 싫다, 떠나고 싶다.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절대 다시는 아프리카에서의 컴퓨터 선생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화이트 보드 앞에서 울고 웃었던 그 시간들이 이제 다시 내 인생에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느끼며 온 몸으로 세상을 안아보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삶으로의 여행. 나는 그 속에서 현명한 여행자였을까... -8월14일 남아공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에 앉아. 』 나는 그렇게 14일 날 가나를 떠났다. 공항에 나와 있던 몇몇 학생들과, 선교사님과 인사를 하는데, 차마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정말 헤어지는 거구나... 정말... 아크라 공항에서 남아공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오랫동안 듣기 힘들 가나 방송을 MP3를 통해 들어보았다. 언제나처럼 레게 음악으로 가득한 가나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의 주파수를 이리 저리 돌려 가며 들으면서, 이제 한참 동안은 이 방송을 들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가나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그렇게 또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가나를 떠난 후엔 남아공과 홍콩을 각각 3,4일씩 여행했다.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나라들을 잠깐씩이나마 둘러보고 싶은 욕심에 며칠간의 스탑오버 기간을 둔 것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시차적응 해가며 무리하게 여행을 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특히, 나의 의식 모드가 전 근대화된 사회에서 근대화된 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있었던 홍콩에서의 여행은 가히 문화적인 충격이었다고 할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갑작스레 나타난(!) 전철과 밤이 되어도 네온사인 불빛으로 환한 거리. 커다란 쇼핑몰. 그 사이에서 나는 몇 번씩이나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정신없어 해야 했으니 말이다. 전기며, 수도며..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많은 곳에 살다가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으로 오니... 오히려 이것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가나에서 얼마나 지냈다고 이러는 것인지.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긴장되는 가운데 남아공과 홍콩에서의 여정이 지나갔다. 『나는 지금, 대만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약간의 흥분, 그리고 설레임.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 속에 있어보는 것. 참 오래간만인 것 같다. 3월 25일날 출국했으니, 딱 5개월 만에 한국에 들어가는 셈이다. 조금은 두렵고 떨리고... 돌아가서는 다시 손은혜로, 한국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어젯밤에는 돌아가 만날 내 삶에 대한 기대와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5개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 것 같다. 아프리카, 동양, 서양. 그 모든 여러 나라들을 오가며 느낀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요즘 생각하게 되는... 내 삶의 중요한 한 가지 결론.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든 간에 이 세상 모든 고통 받는 자, 힘없고 병든 자, 슬프고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일 것이라는 점.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이 몇 년 정도 될까. 별탈 없이만 산다면 50년에서 60년 정도 더 살게 되겠지. 내게 주어진 인생, 값지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살아있는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야지. 그 속에서 나도 행복하고, 다른 이들도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한국에서 또 다른 행복을 위한 여행을 시작해야겠다. -8월 23일.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 이렇게 나는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손은혜라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덤벙대고 이기적이며 실수도 많고, 툭하면 잘 우는, 부끄러운 손은혜. 손은혜의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이 전처럼 싫지만은 않다. 부족하나마 나의 모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폭과 깊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조금은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을 느낄 때면, 나는 내게 다가왔던 모든 기회들과 여러 경험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곤 한다. 가나에 있는 학생들이 물었었다. 언제 다시 올 거냐고, 우리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냐고, 그 때 나는 말했다. 2010년에 다시 가나에 가겠다고, 그 때 꼭 다시 만나자고 말이다. 2010년에는 남아공에서 월드컵을 한다. 알다시피 월드컵을 하면 그 나라를 취재하러 전 세계 각지의 기자들이 그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들을 취재하러 개최국에 모여들곤 하지 않는가. 그 때까지 나도 기자가 된 후에 취재하러 남아공에 갈 것이고, 그 때 아프리카 대륙에 간 김에 가나에도 갈 테니, 2010년에 꼭 다시 만나자는 것이 가나 친구들에 대한 나의 약속이자, 미래의 계획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다짐이었다. 23살의 아프리카 여행과 함께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섰다. 이 곳의 내 생활과는 너무 달라서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가나에서의 일들을 내 마음 속 깊이 소중하게 잘 간직해 둬야겠다. 그리고 2004년 8월, 비행기 안에 혼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적었던 내 일기 속의 글귀들처럼.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간에 이 세상 억압받는, 힘없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0년에 기자가 되어 가나에 다시 가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 아직은 너무도 부족한 나이기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2010년 가을에 나는 또 어떤 일기를 쓰고 있게 될까. 그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오늘 쓰고 있는 일기들은 내일 내가 쓸 일기의 초안이 되는 거겠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조금씩 조금씩 무르익어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는 글과 함께 가나에서의 추억을 잠시 내 기억의 한 쪽으로 접어두려 한다. 그리고 2010년 이 맘 때쯤, 다시 이 일기장을 펴고, 더 나은 내가 되어 가나를 기억하리라 다짐해 본다. l 손은혜 unhasu12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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