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이야기

친구

우보연

친구 밤이 늦은 시간, K는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철봉에 매달려 있다. 자신의 키보다 작은 철봉에 무릎을 잔뜩 구부린 불편한 자세로 대롱대롱 메달린 K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다가 건너편 시소에 앉아서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는 상대편을 상대로 열심히 시소질을 한다. 그리고는 한 눈에 봐도 작아 보이는 그네에 앉아 허공을 바라본다.뭔가 답답한 듯, 안타까워 보이는 K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나 역시 푹푹 찌는 열대야 속에서 아스라이 녹아내린다. K는 누렇게 낡은 책의 한 페이지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한 쪽 모서리가 반으로 접혀있고, 고리타분한 낡은 감성이 묻어있는 글들이 인쇄되어 있을지라도 언제든지 꺼내어 읽어볼 수 있는, K의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는, 낡은 책의 한 페이지 말이다.그런데 오랜만에 펼친 그 페이지는 하얗게 날이 서 있었다. 글들도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 차 있었다.K는 여름휴가를 얻어 고향에 내려왔다. 물론 많은 휴가계획이 있었지만, K는 사람들로 붐비는 바닷가와 계곡보다는 조용한 고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오늘, 여기 K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오기 몇 시간 전에 그는 친구들을 만났다. 오늘의 만남은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K가 고향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은 H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까지 한 K를 약간은 부러움으로 바라보던 친구였다. 작년 민수의 결혼식 때 본 Y와 E,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보는 P, 그리고 자리를 마련한 H까지 4명의 친구와 함께 K는 술자리를 가졌다. K를 포함한 다섯 명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K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의 옛 모습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버린 것인지, 아니면 친구들이 흘러버린 것인지, 그들은 좀처럼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수줍음을 많이 탔던 Y는 어느새 음담패설을 일삼는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그에게 초등학교 때의 순진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고 귀여웠던 E도 아줌마가 되어 Y의 음담패설에 동참하며 떠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본 P는 몇 달 후에 있을 결혼날짜를 잡고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열심히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서울로 이직을 하고 싶다는 H는 K의 연봉과 서울의 아파트 값, 서울생활비는 얼마나 되는지 K에게 물으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K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반장이 누구였는지, 그 때 K는 어떤 아이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궁금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묻지 않았다. 그들 또한 대답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K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리고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서 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서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로 향했다. 여전히 K는 작은 그네에 꾸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그리고는 피식 웃는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인다.자신에게 맞지 않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그네를 타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K는 정말 너무나 우스워 보인다.그렇다. K와 그의 친구들은 더 이상 초등학생이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K와 친구들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렇다.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한다. 글 l 우보연 cinewoo@naver.com

Fri Aug 31 2007 12:5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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