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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연

새로운 황제들

Sun Aug 19 2007 10:3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새로운 황제들 “비행기가 지상에 정지해 있을 때는 정(正), 공중에서 비행할 때는 반(反), 지상에 다시 착륙하면 이는 반(反)의 반(反)이다.” 1957년 말, 볼세비키 혁명 제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러 베이징에서 모스크바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헤겔의 변증법을, 맑스의 유물론을누군가가 이렇게 비유했다. 그는 바로 순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 중국의 ‘새로운 황제’, 중국의 위대한 영도자, 중국 인민의 아버지 등등으로 알려진 모택동(마오, 1898-1976)이었다. 내가 마오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12월 31일, 새해를 맞으러 찾은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였다. 위엄 있는 대머리 아저씨. 내가 본 그의 첫인상은 그랬다. 선생님께서는 “사진 속 사람이 누군지 아니? 바로 이 사람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모택동씨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눈 내리는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와 나, 친구들은 함께 사진 찍었다. 마오와 나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 나는 현대 중국을, 마오를 더욱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동아리 선배는 ‘새로운 황제들’과 ‘관료의 나라 중국’, ‘대륙의 딸들’을 추천해 줬다. ‘관료의 나라 중국’은 아직 나에게 어려웠고 ‘새로운 황제들’은 너무 두꺼워서 읽기에 지루했다. 그나마 ‘대륙의 딸들’이 자서전 형식이어서 재밌게 읽었다. 1년이 지나고 중국의 언어, 문화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나는 중국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들’에 도전하기로 맘먹었다. ‘대륙의 딸들’에서 본 현대 중국을 되살리면서 책을 한 장씩 넘겨나갔다. 이 책의 저자인 솔즈베리는 왜 책의 제목을 ‘새로운 황제들’이라고 붙였을까?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이지 왕이 존재하는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책에서 제목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중국은 하, 상 시대부터 청나라까지 황제가 다스리는 관료제 국가였다. 황제와 그를 보필하는 관료들에게 백성은 보살펴야 할 존재였다. 중국에서 황제의 개념은 용의 개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데 중국의 용은 어질고 백성을 보호하지만 폭군처럼 백성을 공격할 수도 있다. 용은 바로 마오의 모습이었다. 중국의 역사학자 장쯔는 마오에 대해 “그는 6백년 만에 최초의 농민 왕조를 창건해 황제가 됐다”고 말했다. 마오는 중국 인민을 사랑했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문화대혁명 등을 일으켜 인민들을 다치게 했다. 마오 연구가 리루이는 “마오는 누군가를 자신의 후계자로 부상시킨 바로 그 순간에 그를 실각시킬 수단을 비밀리에 강구한다”고 전했다. 이는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적을 제거했던 수많은 중국의 황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지도자, 영도인이라기보다는 황제에 가까웠다. 중국의 황제, 마오쩌둥을 주변 국가에서도 심상치 않게 생각했다. 그 중 마오에게 가장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국공내전 때부터 마오쩌둥의 정적 장제스를 도와주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장제스보다는 같은 공산주의자인 마오쩌둥을 도와줄 것 같다 생각되지만, 스탈린은 장제스가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을 알고 자신이 더 많이 도와줌으로써 미국을 견제, 장제스를 소련 편으로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려고 했다. 또 장제스가 현명한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는 척 하며 장차 중국을 소련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결국 국공내전에서 마오가 이끄는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었고 스탈린이 꺼리던 마오가 지도자가 되었다. 스탈린은 마오를 제거할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공산국가의 맹주인 소련의 위치가 마오의 중국으로 위험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런지도 모른다. 바로 그 이면에 한국전쟁이 있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한국전쟁은 남한과 미국, 북한과 중국의 싸움이라고 배웠다. 그 이면에 스탈린의 음모가 있을 줄이야. 스탈린은 중국을 미국과의 전쟁 속에 몰아넣으려고 했다. 솔즈베리가 파헤친 스탈린의 음모에 따르면 북한의 남침은 마오에게 사전통보 없이 시작됐으며, 마오가 북한을 원조하기로 결정하고 중국군이 압록강을 향해 출병하자마자 스탈린은 사전에 약속했던 공군원조를 철회시켜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만에 남한과 북한이 휴전을 맺음으로써 스탈린의 음모는 물거품이 돼 버렸다. 학교에서 통일이 되지 못한 것은 중국의 인해전술 때문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중국을 이유 없이 미워했었다. 내가 마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나도 마오처럼 미국보다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선택했을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다행스럽게 스탈린은 곧 세상을 떠났고, 마오는 거대한 중국을 이끌어 나가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자치통감’과 ‘24사’를 읽었다. 고대 중국의 황제들의 통치방식을 익히려 애쓴 것이다. 이를 통해 마오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중국 고유의 통치방식이 합쳐진 독특한 사상, 마오이즘을 만들어냈다. 솔즈베리는 그를 진시황과 마르크스가 반반씩 결합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학자 더크 보데(Derk Bodd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에서는 아마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더 과거에 대한 지식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 마오는 아마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같다. 전공 중 ‘한국역사정치학’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한국의 현재 정치 상황을 과거 정치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려 시도하는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들으면서 ‘현재와 과거는 시대적 배경, 사회적 상황 등 모든 것이 다 다른데 왜 교수님은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강조를 하실까. 과연 이 과목은 배울 필요가 있을까’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자치통감’을 읽으며 중국을 다스려 나간 마오를 보며 이는 우문이라고 생각했다. 고전은 옛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지 않은가. 상황은 매일 매일 변하는데 옛 서적만을 읽어서 무엇할 것인가. 과거 조상들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 시대에 대한 인식을 공고히 다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마오는 이 점이 부족했다. 마오가 외국에 나간 적이 소련 방문을 두 번 한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물 안 개구리’ 마오의 사고를 잘 알 수 있다. 마오는 중국에는 정통했지만 자본주의와 서양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경제에도 무지했다. 그의 무지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불러일으켰다. 생활환경, 산업환경이 변하면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는 더욱 느린 법이다. 농민들의 의식, 사상 개조도 부족하고 기반 산업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대약진운동은 실패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흉년까지 들어 대약진운동을 통해 농업생산량을 늘리려 했던 마오의 기대는 무너졌다. 이로써 대약진 운동의 실패는 그의 실권을 가져왔고, 실권을 두려워한 마오의 마지막 발악은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문화대혁명은 겉으로는 4구(舊,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를 타파하자는 취지의 운동이었지만 마오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마오는 정적인 류샤오치를 제거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많은 지식인이 이유 없이 농촌으로 쫓겨 가야 했고 청소년들은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청춘을 뺏겨야 했다.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아야한다는 주장 아래 화장도 하지 못하고 치마도 입지 못했다. 머리는 짧은 단발을 유지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마오는 인민들에게 자아비판, 공개비판을 하도록 했다. 혹자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중국 현대인의 특성이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겠냐고 주장한다. 소설 ‘대륙의 딸들’의 주인공, 장융의 아버지는 청렴한 고위 공산당원이었으나 모함으로 한 순간에 ‘주자파(자본주의자)’로 몰려 자아비판을 해야 했고 홍위병들에게 고된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 여파로 장융의 아버지는 반미치광이가 됐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20년 뒤로 후퇴시켰다. 폭군 용이 백성을 공격할 수 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한 사람의 권력욕이 10억 남짓의 거대한 중국을 퇴보시킨 것이다. 일찍이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극도로 발전해야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말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마오는 그의 경제에 대한 무지-대약진 운동의 실시-로 인해 중국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막았다. 자본주의 사회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꿈꾸는 바람직한 공산주의 사회가 올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각하지 못하고 황제의 헛된 꿈만 꾸고 있었다. 사회의 동량 지식인을 시골로 보내거나 죽이고, 공부해야 할 학생들을 반동분자를 잡으러 다니는 ‘홍위병’이나 만들고 마오는 반미치광이가 틀림없었다. 책에서는 문화대혁명의 예로 라오서와 강철인간 왕의 일화를 들고 있는데, 강철인간 왕의 일화는 왜 굳이 저자가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또 문화대혁명의 폐해로 탕산시 일화가 나오는데 이 역시 저자가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문화대혁명이 10년 만에 그 막을 내리고 중국은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덩샤오핑(1904-1997). 류샤오치, 주은래와 함께 마오의 후계자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마오는 권력욕이 강해 정적을 제거하기 일쑤였고 실제로 류샤오치는 희생당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오는 덩에게만은 친절했다. 덩이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볼세비키 혁명 제 40주년 기념 때 연설을 잘해서 였을까. 이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덩은 4개 현대화(농업, 공업, 과학기술, 국방)를 부르짖으며 개혁, 개방 정책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덩은 확실히 마오보다는 깨어 있었다. 잠자던 용 중국이 이제야 기지개를 편 것이다. 덩은 한국을 모델로 경제 특구 등을 세우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치체제는 철저히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했다. 흔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함께 수반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래왔고, 무리하게 자본주의를 채택한 구소련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잘 버무리고 있는 중국. 전례도 없었고 성장률 또한 높기 때문에 세계는 모두 중국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중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은 어떻게 상충된 두 체제를 잘 담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경제적 발전은 항상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 그랬고 제 3세계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76년 마오가 죽고 나서 덩은 ‘민주의 벽’이라 이름 붙인 자유 언론의 장을 열어두었다. 날이 갈수록 ‘당’에 대한 비판적인 벽보가 붙었다. 개혁, 개방으로 조금조금 잘 살게 되자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가장 웅변적인 벽보를 붙인 웨이징성이 잡혀 가고, 덩샤오핑은 1979년 미국방문길 후 바로 ‘민주의 벽’을 막아버렸다. 등소평은 어쩔 수 없는 공산주의자였다. 덩이 자본주의를 채택해 개방을 하고 중국의 경제를 살리자 나는 그가 민주주의 역시 조금씩 도입하리라 생각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한 묶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공산당이라는 사실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일평생 쌓아온 공산당의 사상을 떨쳐 버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기반 위에 다만 자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뿐이었다. 풍선에 계속 숨을 불어 넣으면 터지듯이, 압력을 주면 폭발하듯이 덩샤오핑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더욱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커지게 했다. 그 중심에 바로 ‘천안문 사태’가 있다. ‘천안문 사태’는 정치의 민주화를 꿈꾸는 학생들과 교수들, 지식인들이 시위를 일으킨 중국의 ‘광주 민주화 항쟁’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실패로 끝났듯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조직적이지 못하고 운동의 동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주모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덩은 이를 유혈로 진압함으로써 서방 국가들의 원성을 샀다. 덩이 유혈로 진압할 때 우리 나라의 ‘광주항쟁’ 진압을 모델로 했다니. 우리 역시 반성할 일이다. ‘천안문 사태’의 실패로 인해 중국은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천안문 사태’의 무수한 희생양들은 서방국가들이 중국을 비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여기서 우리는 마오의 정적제거를 통한 권력욕이 똑같이 덩에게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덩이 ‘천안문 사태’를 무력진압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덩은 ‘천안문 사태’로 인해 인민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덩에게도 ‘황제’의 면모가 존재했다. 덩은 ‘천안문 사태’를 철저히 숨기려 했다. 하지만 루쉰이 말했던가. 잉크로 씌어진 거짓말은 피로 씌어진 진실을 어쩌지 못한다고. ‘천안문 사태’는 당시 고르바초프의 방중으로 인해 중국에 들어와 있던 여러 통신사의 제보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이로 인해 중국은 여러 서방 국가에게 비난 뿐 아니라 경제 지원까지 받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덩은 평소에 마오처럼 책을 많이 읽었다. 그가 즐겨 읽는 책은 마오와 마찬가지로 ‘자치통감’이었다. 아마도 덩은 이 ‘자치통감’에서 ‘천안문 사태’의 유혈진압을 생각해 냈는지도 모르겠다. 마오가 ‘문화대혁명’을 생각해 낸 것처럼. 그는 현대 중국의 제 2대 황제였으며 ‘자치통감’에서 제시하는 원칙에 따라 중국을 다스렸다. 하지만 그는 마오보다 훨씬 더 시대에 맞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대단한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 사상의 자유를 막음으로써 중세적이고 폐쇄적인, 용의 사상을 가진 제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198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하상은 중국의 이런 점을 잘 꼬집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이 의회제도와 언론, 사상의 자유가 대중에게 허용되는 근대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원인을 황허와 중국인의 황허 숭배 탓으로 돌렸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푸른 바다를 항해하면서 세계를 발견하고 있을 때, 중국은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리기 보다는 자신을 낳은 황허의 누런 물길을 따라 노를 젓고 있었다. 마오쩌둥의 해외경험이 많지 않았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리장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랑캐들을 막기 위해 수십억의 자금과 수백만의 목숨을 희생시킨 만리장성은 실제로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베이징을 둘러 싼 성벽은 중국인들을 그 안에 가두었고, 사람들 역시 집 주위와 마음에 벽을 쌓았다. 외부 사상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국인의 폐쇄성을 잘 드러낸다. 프로그램은 중국인의 ‘용’ 사상도 비판했다. 용은 천명에 의해 중국을 다스리는 전능한 황제의 상징이었다. 중국 사회에서 용의 역할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존재했다. 덩의 시대까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사람만 이끌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잘잘못도 잘 가릴 수가 없었다. 말하는 순간 나는 숙청돼 버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적으로 중국의 역사가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상’은 매우 혁명적인 인식론이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오의 문화대혁명과 비슷한 목적을 지닌다.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인의 유산을 지배해 왔던 철학과 허상으로부터 중국을 해방시키는 것. 단 마오는 곤봉과 횃불로 무장한 십대들을 내보내 공포를 통해 인민들에게 깨달음을 주려 했다면, ‘하상’의 작가들은 중국을 순수한 이성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자 했다. ‘하상’의 이야기를 굳이 하려는 이유는 덩샤오핑까지 2000년이 넘게 내려온 중국의 ‘황제’ 사상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파헤쳤기 때문이다. 또 언론의 자유를 막은 중국 대륙에서 이렇게까지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린 다큐멘터리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가슴 속에 각인시키고 싶었다. 현대 중국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마오와 덩 등 새로운 황제들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잘 다스려 왔고, 그 뒤를 이은 장쩌민, 후진타오 역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세계에서 중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중국을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국공내전에서 천안문사태까지)을 생생하게,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인도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중국의 상황을, 중국 지도자의 사생활을 비교적 객관적인 필체로 담담하게 스케치해 나간다. 내가 직접 중국 현대사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이 책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스스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다 보니 이것저것 섞여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물별이나 시대별로 분류를 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또 두 황제들 중에서 덩샤오핑보다는 마오쩌둥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개인적으로 ‘덩’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많이 아쉬웠다. ‘새로운 황제들’은 현재 중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전공 ‘외교정책론’ 시간에 중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 많은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오와 덩의 세계를 보는 시각을 통해서 나도 현재 이 세계화 시대에 한국을 그리고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을 정립하게 됐다. 중국은 아직도 ‘황제’의 나라다. ‘하상’에서 지적되었던 점이 아직까지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오가 항상 말했던 것처럼 중국은 ‘순간의 기회’를 잘 포착하는 국가이다. 지금까지 사회주의를 잘 고수하면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제는 중국을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새로운 황제 후진타오의 영도 아래 얼마나 발전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민초 4기 이화여대 l 문경연 mky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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