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메데이아

정상미

Ⅰ. 들어가며 당신도 악녀 ‘메데이아’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메데이아』는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재창조되면서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다. 신화 속의 메데이아를 무대 위로 끌어 올려 자식을 살해한 여인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던 작가로는 에우리피데스를 꼽을 수 있다. 비극 속의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친족을 살해하고 아버지의 왕국을 배신했으며 그 후 사랑에 배반당하자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 여인이다. 이처럼 그녀의 행위들 자체를 열거해 보았을 때, 그 명성답게 ’훌륭한‘ 악녀중의 악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행위 자체에 대한 평가만으로 그녀를 악녀로 단언할 수 있는가? 그리스 신화 속의 수많은 ’패륜형 인물‘들에 비해 그녀에게 내려진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Ⅱ. 희대의 악녀인가, 비극의 주인공인가 1. 배경신화 에우리피데스 비극 속의 메데이아를 논하기에 앞서 배경신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극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메데이아의 비극은 이아손의 모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이올코스의 왕위를 찬탈한 숙부 펠리아스를 찾아가 왕권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펠리아스는 금양모피를 찾아오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에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얻기 위해 아르고호를 타고 펠레우스, 페르세우스 등 유수의 영웅들과 함께 흑해의 콜키스에 이르게 되고 그곳의 왕녀인 메데이아를 만난다. 그러나 콜키스의 왕이자 메데이아의 아버지인 아이에테스는 이아손에게 이루기 힘든 과제들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그것들을 해결해야만 금양모피를 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아손에게 사랑을 느낀 메데이아는 자신의 마법을 이용하여 아버지 아이에테스가 이아손에게 부과하는 시련들로부터 이아손을 지켜준다. 급기야 그녀는 동생 아프쉬르토스를 죽여 시신을 토막 내어 바다에 던진다. 아이에테스의 주의를 돌려 금양모피를 가지고 안전하게 콜키스를 탈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험 끝에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펠리아스에게 가져다주지만 펠리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에 메데이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지략으로 펠리아스의 딸들이 그를 살해하게 유도한다. 이 사건을 이유로 메데이아 부부는 이올코스에서 추방되어 코린토스에 이르게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이 뒤부터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 배경신화에서 비극적 주인공으로서의 메데이아가 부각된다. 이방인으로서 궁핍하게 살아가던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크레온 왕의 눈에 들게 되고, 스스로도 공주 크레우사와 결혼할 마음을 품게 된다. 이 때문에 메데이아와 두 아이들은 버림받게 되고, 크레온 왕은 메데이아를 직접 찾아와 코린토스를 떠날 것을 요구한다. 메데이아는 크레온 왕에게 하루만 여유를 줄 것을 부탁하고, 이 하루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크레우사와 크레온 왕,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살해하게 된다. 메데이아는 뒤 늦게 아이들을 구하러 달려 온 이아손을 조롱한 뒤 그녀의 할아버지 태양신 헬리오스가 보내준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떠난다. 메데이아는 분명 자식들을 죽였다. 또한 그것은 과실에 의한 살해도 무지에 의한 살해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는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두 눈도 멀쩡하고, 다른 작품들처럼 복수의 여신들도 그녀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악녀’에게! 미안하지만 당신이 메데이아를 향해 던지는 힐난의 눈을 잠시 거두기를 부탁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공개수배 사건 25시’가 아니라 ‘비극’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그리고 아주 잠깐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해치지는 않을 테니 그녀 곁에 와 앉아도 좋다. 단, 당신이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면! 1. 왜 자식을 살해했나 - 부계사회에서 자식의 의미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결혼 잔칫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이아손 본인을 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고르고 골라’ 선택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자식이기도 한 이아손의 자식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왜 하필 자식을 살해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제시된 ‘자식’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남성, 이아손, 크레온, 아이게우스의 대사에서 우리는 자식의 의미, 특히 남성에게 있어 자식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메데이아 오오 조국이여, 지금 이 순간 네가 사무치도록 그립고나!크레온 내게도 그것은 내 자식들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것이오. 이아손 잘 알아 두시오. 내가 지금 아내로 맞는 왕녀와 결혼하는 것은 여색을 탐해서가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이, 그대를 구하고 내 자식들에게 왕가의 피를 받은 형제자매를 낳아 주어 우리 집안의 울이 되게 하려는 것이오. 아이게우스 포이보스의 오래된 신탁소를 떠나오는 길이오.메데이아 무슨 일로 그대는 예언하는 대지의 배꼽으로 가셨던가요?아이게우스 어떻게 하면 내게 자식이 생길까 물어 보려고요.메데이아 맙소사, 그렇다면 여태까지 자식도 없이 살아오셨단 말예요?아이게우스 그렇소, 나는 어떤 신의 숙명 때문에 자식이 없소. 생물학적으로 자식이란 부모 생명의 연장이다. 그러나 부계사회에서 자손이 번창하고 가문이 이어진다는 것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생명의 연장일 뿐 아니라 자신의 명예의 지속이며 바로 자기 자신의 영생과도 같다. 그러나 가문을 보존하는 문제에서 어머니, 즉 여성이란 ‘필수품’이기는 하나 ‘숙주’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이름에서 어머니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메데이아는 이아손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복수가 자손을 남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것은 가부장제의 속성을 역으로 이용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아손의 현존하는 자식은 물론, 크레우사를 살해함으로써 그가 앞으로 갖게 될 자식까지 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이아손이라는 남성을 ‘거세’하여 그의 생명을 ‘한정’하고 역사로부터 ‘추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바로 이 점이 ‘그들만의 역사(History)’속에서 위협을 느낀 그(He)들로부터 그녀가 ‘희대의 악녀’로서 끊임없이 지목되어 온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메데이아 그러나 그 자도 이제 신의 도움으로 벌을 받게 될 거예요. 그 자는 앞으로 내가 낳아 준 자식들이 살아 있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고, 새 신부도 내 독에 의하여 고약한 여인으로서 고약한 죽음을 당해야 하니 그 자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할 테니까 말예요. 2. 메데이아의 갈등 - 비극성의 고조 자신의 복수를 위해 자식을 살해한 메데이아지만 그녀에게도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메데이아』는 ‘비극’이 아니라 ‘사이코 잔혹극’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에서의 대립구도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갈등과 메데이아 자신의 내적 갈등이다. 남편이 배신한 상황에서 부부의 갈등이란 오늘날의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며 당연한 인과관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비극답게’ 만드는 갈등은 바로 복수 계획을 앞에 두고 벌이는 메데이아 자신의 내적 갈등-모성애와 복수 의지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극 중 메데이아는 그 명민함과 지혜로움을 인정받은 여인이며 모성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살해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을 때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은 상당한 것이었다. 복수를 위해 코로스의 만류를 강하게 거부하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메데이아는 자신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려는 목소리와 사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목소리를 동시에 드러낸다. 메데이아 나는 이아손의 집을 송두리째 허물 것이며, 가장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나서 사랑하는 자식들을 죽인 죄를 피해 이 나라를 떠날 거예요. 원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친구들이여! 메데이아 아아 어떡하지? 얘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까 나는 용기가 꺾이는구려, 여인들이여! 나는 못하겠어! 이전의 계획들은 사라져 버려라! 나는 내 자식들을 이 나라에서 데리고 나갈거야. 왜 나는 얘들의 불행으로 얘들의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려다가 나 자신이 그 두 배의 불행을 당해야 하나? 그건 안 돼! 그 계획들은 사라져 버려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메데이아가 자식들을 의식적으로 죽인다는 점을 주요한 결점으로 꼽고 있다. 그는 살인이나 이와 유사한 비극적 사건이 친근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비극적 상황이라고 본다. 이때 비극적 사건들을 올바로 취급하는 방법을 다시 ‘인식’과 ‘실행’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메데이아와 같이 알고 행하는 경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적을 멸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 바로 자기 자신을 멸하는 최악의 방법임을 스스로가 ‘알면서도’, ‘행해야 하며’, 결국 ‘행하고 마는’ 인물의 상황에서야말로 그 비극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인물이 선택의 순간에 겪어야 하는 고뇌와 갈등이야말로 그 인물을 가장 심각한 고통에 몰아넣는 것 중에 하나이다. 그녀의 상황에서 적과 나는 같은 곳에 있다. 따라서 적을 궤멸하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이 모든 것을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이것을 행하고 만다는 것이다. 3. 왜 처벌받지 않는가 - 결자해지의 인간관 『메데이아』가 충격적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녀가 그런 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다는 점이다. 어째서 복수의 여신들은, 에우리피데스는, 그녀를 ‘처벌’하지 않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에우리피데스 비극의 특성에서 찾고자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신들은 이미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의 비극들에 나오는 신들이 아니며, 인간들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고 모든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능동성이 극대화 되면서 극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은 신들의 판단이나 운명과 같은 초월적인 것에 있기 보다는 바로 등장인물들 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에 있다. 『메데이아』에서도 사건은 오직 이아손과 메데이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문제이며 초월적 존재의 개입은 미미하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별도의 초월적 존재로부터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아이들의 원혼들이 그녀를 따라다는 것이며, 복수의 여신들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저주를 퍼붓지만 메데이아는 의기양양하다. 이아손 하지만 그대는 애들의 복수의 여신과 살인을 응징하는 디케 여신이 죽이게 되기를!메데이아 하지만 거짓 맹세를 하고 친구를 속인 그대에게 신이든 신령이든 누가 귀를 기울이겠어요? 처벌받지 않는 메데이아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라는 세계관이다. 복수의 여신들에 의한 별도의 응징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바로 직접 고통을 당한 메데이아 자신이 이아손의 배신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응징할 수 있는 복수의 여신이기 때문은 아닐까? Ⅲ. ‘마녀사냥’에서 벗어나 ‘비극’을 보라 아직도 당신에게 메데이아는 납량특집의 주인공인가? 메데이아를 싸고도는(!) 듯한 필자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메데이아를 감쌀 의도는 없다. 다만 ‘악녀’ 메데이아를 ‘용의자’가 아니라 ‘비극의 주인공’ 그 자체로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극’은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모습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하나의 ‘사고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의 배신 앞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살의와 복수심을 의인화 한 것에 불과하다.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딸을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이 ‘희대의 악한’으로 손꼽히기 보다는 ‘그리스 비극이니까’라는 넓은 아량의 수혜자가 된 반면에 메데이아가 처한 비극적 상황은 삭제되고 악녀로서 비난만 받는 현실을 볼 때 이러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아가멤논의 살인이 남성연대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한 ‘희생’에 해당된다면 메데이아의 살인은 공고한 가부장제와 국가이데올로기라는 ‘당신들의 천국’을 위협한 불온한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껏 ‘그래도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는 쫌…….’이라고 눈살을 찌푸려왔던 당신, 당신 역시 무색무취의 ‘객관’을 가장하여 이 위대한 마녀사냥에 가담해 온 것은 아닌지? 메데이아 다른 길은 없어요. 그대의 충고를 나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대는 내가 당한 것과 같은 불행을 당해 보지 않았어요. ※ 출처 및 주석이 달린 원본은 웹진기자단 게시판(http://cafe.mincho.or.kr/emincho/default.asp?cmd=pds_view&page=0&number=5631&keyfield=&key=#5631)에서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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