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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연

불륜, 신경숙의 마술로 엮어내다

Sun Jun 24 2007 01:4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불륜, 신경숙의 마술로 엮어내다 풍금을 놓아두었던 그 자리/붉은 눈썹을 젖히며 그는 /성큼거린다 버드나무숲의 그 벤취 삐걱/거리며 그는 뛰어오르고 또/엎드리며 눕는다 오래 남은 그의 낡은 팔뒤꿈치/는 해질대로 해져서/어느덧 황혼처럼 아름다웠다 엄승화,?풍금을 놓아두었던 그 자리?(1987) ‘풍금’은 흔히 우리 문학 세계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로 쓰인다. 몇 년 전, 흥행했던 영화 ‘내 마음 속의 풍금’에서도, 그 원작 하근찬의 「여제자」에서도 그렇다. 특히, 이들에게서 ‘풍금’은 어린 시절의 추억 뿐 아니라, 시골 초등학교에서 도회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젊은 여선생님이다.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도 제목에 ‘풍금’이 등장한다. 풍금이 있‘던’자리라는 것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풍금’은 소설 앞의 오리의 각인과 맞물려, 주인공의 유년 시절 추억을 상징한다. 그 유년 시절 중, 미워할 수 없었던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유난히 뽀얗던 ‘그 여자’는 주인공에게 시골 초등학교에서 도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여선생의 이미지로, ‘풍금’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주인공은 부인과 아이가 있는 -‘불륜’관계에 있는- 애인의 떠나자는 말을 듣고,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가는 스포츠센터 강사다. 그리고 그는 애인에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쓴다. 신경숙은 이렇게 식상할지도 모르는 ‘불륜’ 이야기를 서간체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왜 그는 ‘불륜’의 상황을 서간체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을까 주인공의 편지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자신’만의 일기와 같다. 애인에게 쓰는 편지지만, 그 사랑을 선택할 수 없으므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과 소설을 읽는 독자만이 존재한다. 독자는 주인공이 마음의 고민을 자신에게만 털어놓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청자가 독자뿐이므로 인물의 내면을 진솔하고도 직접적으로 잘 느낄 수 있다. 또, 주인공과 비밀을 공유하면서,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나도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감대를 느끼기도 한다.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처럼 말이다. 독자는 서간체를 통해 함께 ‘불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신경숙의 마술은 여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막 봄이 와서, 여기저기 참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푸르고 … 푸름 사이로 분홍 진달래가 … 그 사이… 또… 때때로 노랑 물감을 뭉개 놓은 듯, 개나리가 막 섞여서는… 환히 다 환했습니다."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경숙은 독자를 주인공의 추억 속으로 이끌면서 마을 풍경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게 한다. 주인공의 편지는 마치 시처럼 운율이 느껴지고 심상이 느껴진다. “숨을… 깊은… 숨을… , 초여름, 여름. 짙어, 짙어져서는 초록이, 진초록이…" 와 같은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어나 구들의 반복에 의해서 운율을 형성하여 그 정황의 느낌을 배가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설 후반부에서도 역시 새잡이를 하러 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데'의 반복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버진 털이 보숭보숭하고 각이 진 밤색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갈색 가디건에 검정 목티를 받쳐입고 계셨는데, 헐렁한 상아색 골덴 바지에 벨트를 꽉 조인 차림이셨는데,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계셨는데." 이 부분에서 '~데'는 시의 각운처럼 운율감을 느끼게 한다. 소설에서 가끔씩 보이는 말줄임표는 주인공이 얼마나 힘든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사랑은 사회에서 축복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애인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편지를 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은 미워할 수 없었던 ‘그 여자’와 동일시되면서,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닌 풍금이 있‘던’ 자리가 되면서, 사랑을 과거로 접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공지영의 「사랑하는 당신께」의 주인공처럼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자신의 사랑을 선택하지 못할 만큼 사회의 평가, 또는 애인의 가족들이 입을 상처가 두려웠나 등-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단순히 주인공의 행위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90년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주인공의 사랑에 ‘불륜’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회의 잣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사랑 없이 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남성이나 여성이 비로소 사랑을 느끼고 그 상대와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 사랑을 ‘결혼’이라는 족쇄와 함께 ‘불륜’이라고 단정지어버리지는 않는가. 마음보다는 어떤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족쇄를 사랑하는 사회의 편견에 편승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가는 결국 ‘불륜’을 선택하지 않은 주인공을 통해 90년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려는 것은 아닐까. 사랑할 때는 분명 ‘낭만적’이었지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이중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와 더불어, 사회가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무자비한 획일화의 횡포를 독자에게 알리고, 독자들이 수정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며 나 자신은 ‘불륜’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민초 4기 이화여대l문경연 mky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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